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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25. 2021

기숙사 조교의 고통 Vol.2: 움직이는 카페트

Ant Attack

밀린 숙제를 몰아 하느라 바쁘던 일요일 저녁,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열려있어요, 들어오세요!”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다니. 아마도 내 담당 학생일 것이라 짐작한 나는 기숙사 조교 (UGA)에 어울리게 한껏 친절한 목소리로 소리친 뒤 방문객을 맞으러 나갔다. 


“모튼 (Morton) 1, 2층 담당 UGA되시죠?”

1층에 사는 운동부 소속 남학생이었다. 내 담당 학생이었지만 그를 실제로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고학년 담당 UGA는 사생을 만날 일이 많지 않다. 서로 일정이 바쁘기도 하고, 고학년 층은 1학년 층과 달리 일주일에 한 번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모임이 없기 때문이다. 1학년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UGA에게 쪼르르 달려와 물어보며 학교 생활 전반에 있어 많이 의지하는 반면, 학교 생활에 이미 충분히 적응한 고학년 학생들은 거의 UGA를 찾아오지 않는다. 평소 전혀 왕래가 없던 학생이 찾아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미리 사진을 통해 학생들의 얼굴을 익혀둔 덕에 친근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하고는 제법 능숙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네, 맞아요! 잠깐 들어오실래요? 방이 좀 지저분하긴 한데, 앉아서 얘기할 정도는 될 거에요. 아니면 어디 조용한 카페로 갈까요?” 그는 내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 후, 잠깐 1층에 내려와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제 방 앞에 웬 개미 떼가 있어요.”

그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가서 보니 개미들이 줄지어 복도의 카펫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카펫에 원래 있던 무늬가 움직이는 듯 했다. 그는 카펫의 움직이는 곳을 손으로 가리킨 뒤 자신의 방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개미 떼를 유심히 보니 바깥에서부터 내게 와서 제보를 한 학생의 앞 방 문틈까지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개미 대군이 들어가고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려보니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일주일간 합숙으로 진행되는 UGA 훈련 중 받은 교육 매뉴얼에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학생에 대한 대처 방안은 있었지만, 이런 일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나는 멘붕이 왔다. 어쨌든 방역 문제이니 시설 관리 팀에 연락을 해야겠다 싶어 핸드폰으로 시설 관리 팀 연락처를 급히 찾았다. 전화를 해보니 역시 주말이라 그런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 어쩐다...' 고민 끝에 다양한 캠퍼스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보안팀에 연락을 했다. 보안팀은 일 년 내내 24시간 근무를 하니 아마도 연락은 닿으리라. 몇 번의 연결음 끝에 전화를 받은 보안팀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보안요원은 매우 귀찮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시설 관리 팀에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시설 관리 팀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는 본인도 딱히 해결책이 없으니 내일 오전, 시설 관리 팀이 출근하면 다시 연락해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복도 카펫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개미떼가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내일 아침까지 기다린다는 말인가!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답변이었다. 나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문제의 방문을 따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다시 보안 팀에 전화를 걸었다.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다시 지루한 연결음을 들으며 나는 문제의 방 손잡이를 돌렸다. 덜컥. 문이 그냥 열렸다. 워낙 깡촌이라 안전하기로 유명하다 보니 기숙사 문을 열어두고 다니는 것은 다트머스 학생들의 흔한 버릇이다. 보안요원이 또 다시 짜증을 내기 전에 황급히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방 불을 켜보니, 개미 떼가 쓰레기통에 놓여 있는 피자 박스로 향하고 있었다.


방 바닥에는 양말이며 옷이 널부러져 있었고, 쓰레기통은 이미 꽉 찬지 오래라 피자 박스는 아슬아슬하게 쓰레기통 위에 얹혀져 있다시피 했다.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숨을 참고 피자 박스 뚜껑을 열었다. 박스 안에는 먹다 남은 피자 두 조각이 있었는데, 피자 조각 위를 까만 개미떼가 완전히 덮고 있어 흰 치즈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웩! 나는 몰려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황급히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의 끝부분, 가장 최소한의 손가락 면적을 이용해 피자 박스를 들어다 기숙사 밖 자전거 거치대 쪽으로 내버렸다. 피자 박스 처리의 마무리와 방역은 내일 오전 시설 관리 팀에게 다시 한 번 얘기하면 될 터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어쩐지 불안한 마음에 이후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1층으로 내려가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유혹의 원천이 사라지니 카펫을 가득 덮고 있던 개미 떼도 점차 사라졌다.


과제를 하랴, 개미 떼의 상태를 체크하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설 관리 팀에 전화를 걸어 그간의 일을 알렸다. 시설 관리 팀이 연락이 닿지 않아 내 손으로 직접 개미가 잔뜩 붙은 피자 박스를 들어 옮겼음을 말할 때는 한껏 생색을 내기도 했다. 곧 작업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1층에 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방역을 한 뒤 자전거 거치대 한 켠에 놓여있던 피자 박스를 처리해 주었다.


방 문 개방 사실 안내
O월 O일 OO시, 개미 관련 민원으로 UGA가 임의로 방문을 개방하였음을 알림
쓰레기통 위에 있던 피자 박스 때문에 개미떼가 꼬여 박스를 버렸으니 참고 바람
앞으로는 먹고 남은 음식은 제 때 버리거나 냉장 보관 바람


나는 문제의 방 문 안쪽 면에 쪽지를 붙여놓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며칠 후, 문제의 방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역시 운동부 소속인 그는 다른 주에서 시합이 있어 몇 일간 기숙사를 비웠다고 한다. 바쁘게 떠나느라 피자 박스를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에게 마음 같아선 실컷 잔소리를 퍼붓고 싶었지만, UGA다운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음에는 이런 실수 하지 않으면 되죠, 뭐!”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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