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끝나면 땡!
남편의 여름 휴가시즌, 땡!하자마자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탈 남편이 다음날 탈 기차 시간을 보다가 동료이야기를 했다. 어떤 동료가 공항으로 가는 기차타는 시간을 말하면서 어떻고저떻고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단다. 그러자 자기 옆에 있던 다른 동료가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기차예약을 하면서 "나는 저 기차 안 타야지!"라고 조용히 자기한테 말을 하더란다. 내가 그 둘이 사이가 안 좋아?라고 물으니 나쁘지 않다고 하길래 그런데 왜? 라고 물으니 "휴가잖아!"라고. 그때서야 이해했다. 아무리 나쁘지 않은 사이라고 할지라도 휴가의 첫날을 직장동료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심리라는 것을.
우리나라는 퇴근 후에도 카톡으로나 전화로나 어떤 방법으로든 근무연장의 형태가 많은 현실인데,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아는 지인만해도 근무용 휴대폰이 따로 지급되어서 직장동료는 지인의 휴대폰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단다. 그만큼 공과사의 구분이 명확하다. 학교만해도 그렇다.
부모들은 선생님의 연락처를 모른다. 학교로 전화한다해도 선생님들과 바로 통화로 이어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일주일에 한두번인 두어시간의 상담시간을 미리 예약하든지, 어쩌다 선생님방 전화번호로 전화했을 떄 그 선생님이 있든지 하는 경우밖에 없다. 아니면 이메일. 그것도 선생님의 근무시간에만 답장이 온다. 근무 후 회식도 없다. 1년에 한두차례 전체회식만 있다. 그것도 우리 남편 직장같은 경우는 각자부담이다. 병가의 경우도 병가 중인 사람에게는 절대 연락하지 않는다.
병가는 말 그대로 병가. 전적으로 쉰다. 게다가 어디가 아픈지도 동료들이 모른다. 사적인 것을 말해야하는 이유가 없다. 병가서에도 어디가 아픈지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두통만 있어도 병가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6주까지는 유급병가를 쓸 수 있고 7주부터는 의료보험회사에서 월급의 75퍼센트정도를 받으며 쉴 수 있다. 물론 이떄는 의료보험회사에 타당한 진단서를 제시해야한다.
어쨌든, 아주 친한 사람들끼리는 가족끼리도 친하고 왕래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동료사이는 어쩄든 선선하다. 그런데 직장 내에서는 또 그렇게 친하단다. 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직장다닐때, 어떤 회식날의 일기를 공유해본다.
직장동료들과의 수다 한페이지
저녁 6시 반에 만나기로 한 후, 나는 한 2 시간 정도면 집에 올 거라고 생각했다.
밥 먹고, 이야기해봤자 직장상사랑 뭐 그리 할 말이 있겠냐며. 게다가 신입인 Ev는 일주일 동안 깐깐한 An에게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실 오늘의 회식자리도 그다지 달갑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역시, 독일애들은 독일애들이다.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이 너무도 다른.
사적인 식사자리에서의 An은 그냥 평범한 서른 살의 여자애였다.
Ev의 남편이 언제 집에 오냐며 전화가 올 때까지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음식 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4시간까지 이어졌다.
외국어로 긴 수다를 떨다 보면, 단어의 고갈이 생긴다. 생각이 나지 않는 단어 때문에 결국 빨대까지 이용해서 설명을 하게 되었다. 중간에 번역기를 돌린다든지 구글을 검색한다는지 등의 행위는(?)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다. 중요한 건 정확한 단어가 아니라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도구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된다.
오늘의 주제 중 하나가 '출산'이 있었다. 내 글 중 '병원 이야기'에도 '출산'의 이야기나 나오는데, 그 글 중의 내 옆자리 산모보다 더한 이야기를 이날 들었다.
An의 직장 상사 이야기다. An의 직장상사인 Jan은 네 아이 중 3명을 집에서 혼자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낳았단다. 남편이 옆에 있었지만 아이를 받거나 하진 않았으니 혼자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2,3일 후 아기를 데리고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일을 시작했단다. 우리는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닌가? 동료인 Ev가 자기도 두 아이를 집 욕조에서 혼자 낳았단다. 그래도 그녀의 남편은 의사이니(산부인과 의사는 아니지만) 응급상황에서는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니 그렇다 쳐도, 아무튼 일반 욕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물을 받아 놓고 아기를 낳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데 An은 많이들 그렇게 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물론 독일은 아직도 아기를 산파가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산파가 집으로 가서 아기를 받는다고도 들었긴 하다. 나는 양수가 터지고 예정일이 지나도 아기가 안 나와서 둘을 다 병원에서 낳았지만, 병원에서도 산파가 옆에서 산후 케어를 해주고 아기를 돌봐주고 돌보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래도 아무도 없이 집에서 아기를 혼자서 낳는 것이 가능하다니... 독일 여자들은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어진 장례에 관한 이야기(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떻게 삶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를 하다가, An의 친척 할머니가 자기가 죽으면 화장해서 ALDI(독일의 슈퍼) 주차장 어딘가에 슬쩍 묻어달라고 했단다. 왜냐고 물으니, 아들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장 보러 올 거니까.라고 해서 웃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의 유머 넘치시는 센스. 부모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독일 사람들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 같아서 웃기지만 슬프기도 했다.
An은 우리말이 참 신기하다고 한다. 글씨를 쓰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단다. 글자를 외워서 그리는 거냐고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알파벳과 다름없는 그저 글자일 뿐인데 한 글자가 한 줄로 쭈욱 이어지지 않고 위아래, 옆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한국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늘 나오는 주제, 산낙지였다. 한국사람들은 다 산낙지를 먹느냐고 묻는다. 나는 산낙지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안 먹어봤고 다들 먹는 걸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해줬다.
맛있고 좋은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한국음식 이야기에는 산낙지가 먼저 나온다. 그래도 이 둘에게는 한국 음식을 먹여본 적이 있어서(?) 맛있다는 걸 안다. 우리 동네에 한국 음식점이 생기면 온 가족을 데리고 꼭 갈 거라고 다짐들을 하는 것을 보고 흐뭇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한 번도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수고로이 따로 해서 한국 음식을 먹인다. 그렇게 나로 인해 한식을 처음 먹어본 사람이, 족히 100명은 넘는다. 그렇다면 나는 한식의 세계화에 작은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지 않을까? 하고 혼자 뿌듯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