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_엄마

by 최서영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보다 손길이가 짧다. 그 남자는 그 손으로 글을 쓰고, 딸들과 아내를 다독여 줬다. 아내가 출산했을 때 그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었으며, 신장이식을 했을 때 간호를 해줬다. 그 여자의 손은 한여름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웠는데 남자는 가끔 여자가 그의 손을 잡을 때 난로가 되어준다. 그 남자의 손은 못 박기에 서툴렀지만 서재의 책 정리엔 꼼꼼했다. 딸들에게 그 손으로 마술을 보여주었으며, 딸들이 친정에 오는 날이면 집안 청소를 하느라 바빠진다. 얼마 전부터 직장에 다녀온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빨래를 옮기며, 서투나마 다 된 빨래를 개는 그 남자의 손이 아름답다.


기념일을 특별하게 지내는 것은 다른 날들을 소홀하게 여기는 일이라며 굳이 선물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던 남자. 어느 날 그 손으로 홈쇼핑에서 진주 목걸이를 주문한 남자. 기념일을 특별하게 지내지 않아도 별 말없이 살아온 아내에게 몹시 미안해진 남자. 일년 365일 동안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마음을 한꺼번에 전하고 싶었던 남자. 요즘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영랑호수를 산책하며 새로 구입한 사진기에 풍경을 담는 일이 아주 재미있는 남자. 아내가 찍은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보며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닮아 있다는 것에 입가에 웃음 짓는 남자.


<기념일>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진 나를 기념하는

참사람 부족

숨가쁘게 챙겨야 할 것 많아 허둥대는 세상 향해

일침을 가하는 기념일

춤, 사냥, 바느질, 연장 만드는 솜씨,

시간 재는 능력이 나아졌다고,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축하 꽃다발을 걸어준다네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더 나아짐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길로 걸어가는 걸

진심으로 축복해 주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건데

무슨 축하할 일이냐며,

바람이 잔잔한 날

겨드랑이 털이 자라는 기미를 눈치채며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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