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오늘은 ‘이카루스’라는 동작을 배웠다. 폴댄스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겠지 상상하던 바로 그 동작이다. 다만 내가 보았던 여러 영상들은 폴에 적어도 원 클라임, 투 클라임 정도의 높이 올라가 진행했는데, 아직은 미숙해서 클라임을 하지 않고 먼저 폴 아래서 반동을 주어 출발을 하며 동작을 익혀보았다.
처음에는 오른 오금을 걸고 팅커벨 동작으로 폴을 잡고 돌다가 왼손은 아래 오른손은 위로 폴 잡는 위치를 바꾸고 폴에 오른쪽 엘보를 건다. 왼손은 계속해서 폴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오른손을 허공에서 수영하듯이 폴 앞으로 우아하게 팔을 뻗다가 오른쪽 안쪽 허벅지에 손을 갖대 대고 돈다. 이 때 왼발을 뒤로 빵 찬다. 왼다리를 폴 앞에 발바닥을 대고 발끝을 포인해준 상태에서 오금이 걸려있는 오른 다리를 앞으로 삼각모양으로 다리를 접어 왼다리에 가져다댄다.
이제 제법 폴을 타봤다고 여유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주말이 지나고 며칠 폴수업을 쉬고 타니 컨디션이 좋아진 것인지, 왠일로 폴에서 오랫동안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작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나 여유가 없고 노하우가 없어서 동작을 너무 빨리 끝내려는 경향이 있었다. 찍힌 영상은 너무 짧아서 수업을 했던 그 어느 날보다 볼품없었다.
“천천히. 서영님, 제발 천천히”라는 말을 수업 때마다 듣는다. 폴도 성격대로 가는가보다. 동작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도조절이 정말 중요하다. 폴이 빨라지면 폴에 끌려가게 되고 동작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진다. 최대한 선생님의 지령에 맞춰서 동작을 천천히 하려고 했다.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빼줘야 하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줘야 한다. 엉덩이를 빼준다고 뺀 거 같은데 가슴을 최대한 앞으로 내민다고 내민 것 같은데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몸의 쉐입을 만들어주지 않아 폴과 몸 사이에 여백이 생기고 폴에서 미끄러지려고 했다. 동작을 할 때는 몰랐지만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중에 영상으로 찍힌 것을 보니 정말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처럼 어딘가로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고, 추락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실제로 추락을 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어쩜 저렇게 가볍게 폴을 탈까. 춤 선은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선생님의 폴동작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가볍고 정확하다. 근육이 많다는 것과 근력이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고, 근력이 있는 것과 근력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근육이 생겼다고 해서 혹은 근육이 많다고 해서 폴을 잘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게 힘을 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힘을 쓸 수 있을까? 폴댄스는 감각으로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다. 보통은 오금과 겨드랑이와 같이 컨택 포인트를 잘 걸어주기만 해도 힘 조절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걸어야 할 컨택포인트를 잘 걸기만 해도 동작을 하기 위한 힘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컨택포인트를 잘 걸지 않았을 때 힘을 발휘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동작과 동작을 연결 할 때 정확한 동작을 하도록 찰나에 집중해야 한다. 그 짧은 찰나가 쌓여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힘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이윽고 그 모든 것이 춤이 된다.
집에 돌아와보니 겨드랑이에 새빨간 멍이 들어있었다. 겨드랑이에 멍이 들 이유가 없는 동작이었는데 가슴을 더 앞으로 빼지 않아 생긴 멍 같았다. 지금까지는 몸에 난 멍이 훈장 같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몸 이곳저곳이 아픈데 아프지 말아야 할 부위가 아픈 것 같았다. 찍은 영상을 되감기하며 동작의 잘못된 부분을 살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