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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백반 Aug 23. 2024

멋지게 사는거야. 의미있게..

어느 자가 면역질환자의 투병기

이제 정수리를 덮을 머리카락이 부족하다.

있는 힘껏 뒤통수쪽에 있는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가지고 와 덮는다. 빗질이 가능하지 않아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목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를 대하듯 소중하고 귀하게…. 그러다 거울에서 눈이 마주치고나면 마음이 스산하다. 정신차려… 지금이 얼마간 중에선 가장 머리카락이 많은 날이라구. 여기에서 의기소침하면 어떡하라구라며 나를 다독인다.


한의원에 갔다.

오늘은 담당선생님이 계시는 날.

그리고 그동안 먹었던 신약을 끊었다고 이야기 하는 날이라 뭔가 설레기도 했다. 그가 대학교 시절 건선으로 면역억제제와 스테로이드를 수개월 복용하고 중지하고 부작용으로 다리살이 벗겨져 피딱지가 붙은 사진은 내가 다니는 한의원의 홍보자료다. 한의학적으로 그는 건선을 다스리고 있고, 완치가 없는 질병은 몸에 흔적을 남겼다.

그런 그는 나에게 양약쪽 약을 중지하기를 여러번 권했다. 몸에 무리가 간다고, 자기도 해보아 그 결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해내야 한다고.

덕분에 낸 용기는 한주먹을 넘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칭찬이 받고 싶었다.

어려운 결정이지만 잘했다고, 그가 나의 편에서 성심껏 치료해줄테니 함께 힘을 내보자는 말을 기대했다.

그가 수십개의 침을 머리에 꽂고 난 이후 집에 가기전 잠깐 보자는 말을 했다. 나는 좀 더 본격적인 치료가 있나란 의구심에 그를 찾았으나 그는 다음주까지만 진료를 하고 같은 한의사인 아버지에게로 간다고 말했다.

쿨하게 웃으며 그의 미래를 응원했지만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마음이 조금은 허물어졌다.

다른 누군가보다 나의 마음을 잘 공감해주었던 그여서 의지가 되었구나를 그때 알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요가를 갔다.

오늘은 하타다. 좋아했던 하타전문 선생님 역시 지난 주 요가원을 그만두었다. 그녀는 허리가 직각으로 뒤로 접히는 묘기에 가까운 표본을 보여주었고 기를쓰고 자세를 잡으면 그 이후 아기자세나 다운 독으로 호흡을 고르는 것이 아닌 상위버전을 진행하여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게 하는 고수였다.

오늘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찾아오기도 전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같이 성당에 다니는 라파엘라라는 천사의 세례명을 가진 선생님. 올 초 머리에 생긴 무언가로 머리를 열어 세번을 수술하신, 그에 앞서 작년부터 아팠던 나에게 늘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기도를 위해 묵주를 만들어 선물해주었으며 치유의 샘물이라는 프랑스 성수를 누군가에게 빌려 나에게 듬뿍 발라주셨던 마음 예쁜 선생님.

하타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으로 그 역시 허리는 뒤로 90도 접히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자세인가를 여러차례. 보며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근육들을 느끼며 정적이지만 모든 동작이 수련과도 같았던 한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선생님~ 하며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니 또 웃으며 반겨주신다.

나도 모르게 신세한탄이 흘러나왔다.

훤하게 빈 정수리를 보여드리니 그가 놀라한다.

”나는 너 다 나은 줄 알았어. 그냥 보니 모르겠더라고..“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 누군가들은 나의 정수리만을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은 것 같아서…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묻지 못해 그저 수술의 여부와 재활에 관련된 소식만 알았던 나는 그제서야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들여다 보게 되었다.

50대에 입성한 그는 외고 출신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배움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성당에서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무료함보다는 진취와 성장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뇌 수술은 그런 그에게 쉼표를 주었다.

말하고 싶은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거나,

단기 기억이 이전보다는 촘촘하지 않았다.

배우고 싶었던 바이올린을 배우는데 악보를 보고 다시 돌아서면 그 악보가 새로워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전혀 쉼표가 없었다.

“ 아녜스.. 근데 그게 정말 신기해… 두달을 배웠는데 매번 까먹어서 정말 속상했거든. 근데 아주 조금씩 늘어. 아주 조금씩. 근데 그게 재밌어. 세상에, 그게 재밌더라구…난 그게 은총이라고 생각해…”

나는 이미 그의 좌절에 공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좌절에서 나의 좌절을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경험한 것에 더 반응하는지라 나의 쉼표와 그의 쉼표의 교점을 찾아 마음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들은 뜻밖의 이야기에 나는 진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 근데 그게 재밌어. 난 그게 은총이라고 생각해.”라는 말을 찾기까지 그가 했을 마음의 방황이 어림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일으켜세웠을, 그의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스쳤기 때문이다.


“ 사람 누구나 다 죽어. 그냥 우리는 지금 겪는거야.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다시 재발을 할지 아니면 잘 치료가 될지, 근데 우리 그동안 멋지게 살자. 의미있게.. 그럼 된거잖아.. ”

평소에도 멋진 패션과 남다른 스타일링으로 멋지다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을 그의 마인드는 정말 멋졌다.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지를 개척하는 사람은 멋지다. 설령 실천적이기까지 어렵다할지라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나를 일으켜세워 나를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있기까지 그만이 가졌을 괴물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 알수 있는 타인은 없으나, 자신은 안다. 그 괴물같은 시간을 견디어 나를 일으켜세웠다는 경험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나의 건강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건강한 나를 지키고 나에게 더 유의미한 행동을 하는 이들 역시 자유롭지 않다. 인생의 칼바람은 불시에 나타나 나의 싸대기를 날리기 때문에.

하지만 적어도. 결정은 가능하다.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것은.

언젠가 올 “고도”에 집중하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며“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아닐까? 그게 진정한 멋짐 아닐까?


선생님과 이야기 후 집에 돌아오며 나는 어깨를 폈다.

머리가 다른 이들과 달라 이상하게 보일 순 있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지.

그저 누군가와 다른 특이성으로 누군가를 다르게 보지 말아야지. 이 상황에서 정말 멋진건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나눠준 누군가처럼 멋지게 살아야지. 진짜 멋진 건 바로 그런거니까.

나의 인생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찾아왔다.


당신들의 멋짐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나의 질환덕분에 하나 깨닫게 되었다.

진리처럼 말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황에서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멋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당신들에게도 멋짐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멋짐을 잘 찾아 의미를 덧붙여 살아가길 응원한다.

언젠가 종료될 우리의 인생에서 서로의 응원 또한 멋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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