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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방울 Dec 20. 2021

나는, 달릴 때 자유롭습니다.

달리기 이야기

지난 주말부터 다시 4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부스터 샷 접종도 마쳤겠다 연말이라 '모처럼' 만나려고 했던 몇몇 지인들과의 약속도 모두 취소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지난 2년간 많이 익숙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만스러움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보니 아직 아닌가 봅니다. ‘모처럼’이라는 말로 위로받으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다음을 기약합니다.




첫눈이 내려 동네가 온통 하얗습니다. 길도 미끄럽고, 어제 ‘모처럼’ 세차를 한 자동차는 다시 눈먼지를 뒤집어쓰고 지저분합니다. 다시 불만스러움이 하나 둘 올라옵니다.

그때, 아파트 바깥 주차장 언덕에서 삼삼오오 모여 눈썰매를 타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눈 예보를 미리 듣고 마침 많은 자동차들이 지하주차장으로 피신해 있어서 바깥 주차장 언덕이 ‘모처럼’ 한가하니 다행입니다.

아이 때 눈 오는 날이면 옷이 눈에 젖고 내복이 땀에 흠뻑 젖어도 모르도록 놀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처럼 마음껏 해보고 싶은 거 하고 있는 시간이 그립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지금 마음껏 할 수 있는 걸 해보라고 마음이 시킵니다.


주섬주섬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비니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운동화 끈을 묶습니다.

일요일 오후 4시, 아직 해가 지려면 한 시간여 남아있습니다. 

눈이 녹지 않은 산책로가 미끄럽습니다. 발끝에 더 힘이 들어갑니다.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군데군데 눈이 녹은 곳을 찾아 달립니다.

눈길 달리기는 부상 위험이 있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시간입니다.

빙판이 나오면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살금살금 조심조심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달립니다.


내 마음대로, 내 마음껏, 차가운 공기에 맞섭니다. 소양강 바람이 차갑게 귀를 스치지만, 귀엽고 오동통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시원하게 얼음물 속을 자맥질을 하는 겨울 오리와 물닭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겨울 철새들이 하얀 눈 속에서 더 신나 보입니다.

물닭은 뜸부기과의 겨울철새라고 합니다. 닭처럼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물 위를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온 세상을 덮은 하얀 눈 위에 내 맘대로 푹푹 발자국을 남기며 달리니 신이 납니다.

지금 이 길에서 나를 멈출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입니다.




구름 가득한 하늘 틈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보며 달리는데 저절로 ‘아!’ 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저편 하늘 끝이 불타는 듯 붉어집니다. 하얀 눈이 뒤덮인 세상을 비추는 노을의 아름다움에 산책을 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담습니다.

소양강 산책로 건너편 하늘 끝 구름 넘어 해가 집니다.


머리에 흐르는 땀과 열기가 차가운 강바람에 그 어떤 저항도 없이 모락모락 증기가 되어 공기 속으로 날아가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참 자유롭습니다. 


하늘, 산, 강의 조화로움에 오늘도 자꾸 멈추게 됩니다.

다행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막히고 멈추고 닫혀버려 내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려고 할 때, 달리기가 이제 나를 자유롭게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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