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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방울 Aug 20. 2020

게을러지고 싶으나

노을집, 춘천살다

끝나지 않을 거 같던 50여 일의 장마가 지나간 후 연일 30도를 훨씬 웃도는 뜨거운 더위에 노을집 앞마당은 점차 정글이 되어 간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씨앗들은 싹을 틔우기 무섭게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일 만큼 쑥쑥 자라고 있다. 틈만 나면 잡아 뽑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지치는 일상에 느긋한 휴식을 위해 노을집에 들어서지만, 어제와 달리 또 훅 자라난 풀들 덕분에 바로 빨간 장화를 갈아 신는다. 가위를 들고 마당을 나서면 곧 이 가위에 잘려나갈 풀들이 떨고 있는 듯 비장하기까지 하다. 몇 번 가위질에도 어느새 땀이 송글하다.

이제 삽질 정도는... 

작년 가을 마당 한 귀퉁이에 키가 크게 올라왔던 코스모스는 어느새 마당 한 바닥쯤 영토를 확장했다. 가을에 코스모스 꽃구경을 실컷 할 요량으로 안 뽑고 두었더니 마당 전체가 코스모스 밭이 될 판이다.


한 달 전쯤 울타리 아래 땅을 파고 심어 둔 세이지와 산수국도 높이 올라온 풀들 덕에 키가 작아진 듯하다.


그림을 그리려고 왔다가도 풀 조금 뽑고,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 내리고 나면, 이번엔 장마 내내 햇빛 구경 못한 목화솜 이불들이 방 한 구석에서 '우리도' 하고 아우성치는 듯하다. 이불에 햇빛 샤워라도 해주려고 서너 번 방과 마당을 들락날락하고 나면, 생각보다 더 녹아버린 얼음 덕분에 아이스커피는 벌컥벌컥 마셔도 될 만큼 적당히 싱겁게 시원하다. 벌써 지쳐버려 오늘도 그림 그리기는 시작도 못하겠다.


시끄러운 일상과 다시 시작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속이 더 들썩이다가도 저 무성한 잡풀을 잡아 뜯으면 잠시라도 부글거리며 시끄러웠던 속이 가라앉는다.


잡풀은 계속 자랄 것이고, 당분간 난 게으름 못 피우고 계속 잡아 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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