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기능 중 작업기억력이 낮은 아이
계획을 세우고, 집중하며, 필요한 행동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행기능 중 하나인 '작업 기억'이 부족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단계를 놓칠 수 있다.
영어 기초학습 부진 아이들은 영어를 읽지 못한다.
이 아이들을 위해 함께 세운 목표는 단 하나.
영어 문맹 탈출.
"얘들아, 영어에는 알파벳이 있지? A부터 Z까지 써볼게. 그리고 이 알파벳은 모두 가나다라마바사처럼 소리가 있어. 그중에서 이 다섯 개는 '모음'이라고 불러. 영어 모음은 몇 개라고?"
"5개!"
"a. e. i. o. u." 칠판에 다섯 개의 모음을 적어주고 다시 물었다.
"자, 영철아. 기억해. 영어 모음은? 아에이오우! 따라 해봐."
"아에이오우!"
"a. e. i. o. u. 자 5번 소리 내서 읽고 외워보자. 이따 물어볼 거야."
5분 후, 나는 영철이와 기훈이에게 물었다.
"자, 영어 모음 5개는 뭐라고?"
영철이는 머뭇거리며 다 씩 웃으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A...?"
"그리고?"
"y...?
"아니야~"
"아.. 분명히 아까는 기억이 났는데..."
"자, 그럼 기훈이가 말해볼까?"
"아에이오우. a. e. i. o. u."
"그렇지! 영철이 이따 다시 물어볼 거야. 외우고 있어~"
영훈이와 기훈이는 모두 영어 점수가 10점 내외였다. 10점 만점이냐고? 아니다. 100점 만점이다. 이 아이들의 기초학습부진의 이유는 중학생이 되어 정확히 어떤 것 때문인지는 밝혀내기 어려웠으나 둘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하나였다. 영훈이는 기훈이보다 '작업기억력'이 낮다는 것을 말이다.
앞의 글에서 말했듯, 집중력과 문해력이 부족해서거나 또는 지능이 낮아서 아이들이 학습을 어려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집중을 잘한다고 해도 우선순위를 모르고 하나에만 과몰입하는 경우도 있으며, 문해력이 좋다고 해도 본인이 계획을 세우고 학습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하는 데 서툴면 학습이 잘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행기능 중 하나인 '작업 기억력'이 부족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단계 건너뛰어 잘못된 학습 과정을 거칠 수도 있는 것이다.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 중에서도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란?
학습 자료를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유지하고 그것을 조작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마치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포스트잇으로 잠시 붙여놓는 단기 기억 같은 것이다. 필요할 때 보도록 그 기억을 얼마나 잠시 잘 유지하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작업 기억력이 낮은 영철이와 같은 아이들, 특히 ADHD 아이 세모와 같은 친구들은 대체 학습에서 어떤 부분이 어려워지는 걸까?
초등학교 3학년인 민지는 수학 시간에 교사로부터 두 단계로 이루어진 문제를 풀라는 지시를 받았다. "먼저, 7과 5를 더한 다음, 그 결과에 3을 곱하세요." 민수는 처음에 7과 5를 더해 12를 얻었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순간, 방금 더했던 숫자 12를 잊어버리고 멍해졌다. 결국, 두 번째 단계인 12에 3을 곱하는 과정을 수행하지 못하고 문제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처럼, 민지는 작업 기억이 약해서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유지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수학 문제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첫 번째 단계에서 나온 결과를 유지하고 조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연산이 복잡해지는 순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어려운 것이다.
작업 기억이 좋은 혜성이는 문제를 듣고 7과 5를 더한 후, 12라는 결과를 머릿속에 유지한다. 그다음 단계인 "12에 3을 곱한다"는 지시도 쉽게 기억해 36이라는 정답을 빠르게 도출해 낸다. 혜성이는 여러 단계를 거치는 수학 문제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며, 다음 단계로의 전환이 빠른 것이다.
사례 2.
중학교 2학년인 지현이는 영어 단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사가 "단어를 보면서 뜻을 외우고, 단어장을 덮고 나서 뜻을 적어보라"라고 했다. 지현이는 단어를 보고 뜻을 기억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단어장을 덮고 적으려고 할 때 그 단어의 뜻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에 두세 개의 단어를 외우는 것도 어려워서, 뜻을 기억하기 위해 반복해서 단어장을 다시 열어봐야만 그 단어가 다시 떠오른다.
영어 교사로서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작업기억력의 차이에서 오는 단어 시험 성적의 차이였다.
작업 기억이 좋은 서연이는 한 번 단어를 외우고 나면, 단어의 뜻을 머릿속에 쉽게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어장을 덮고도 단어의 의미를 기억해 시험에 활용하거나 문장 속에서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서연이는 여러 단어를 한꺼번에 외우고 이를 유지하면서 학습할 수 있어 암기 효율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작업 기억도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