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말해준 한 문장
"아이가 캐나다 가면 단약도 해보지 그래?"
ADHD 아이와 함께 캐나다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니 주변에서는 캐나다는 좀 놀기도 하고 여유로우니 아이가 자유롭게 자신의 모습으로 약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25kg의 작은 체구의 아이가 밥을 못 먹는 것이 안타까워 캐나다에 가면 메디키넷 용량을 10mg만 먹어도 잘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ADHD 아이가 조절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발달이 느리다고는 하나, 발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나이가 들면서 10살인 세모는 어느새 훈육이나 공공장소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수월해지긴 했다. 유치원생이었던 세모를 어딘가 데려간다는 것이 두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라고 느껴진다.
9월,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캐나다의 학교는 늘 9월이 학년의 시작이다. 그렇게 세모는 첫날, 둘째 날, 셋째 날을 무난하게 잘 보냈다. 씩씩하게 들어가고 웃으며 나오는 아이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역시 적응력 하나는 최고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세모의 캐나다 담임선생님께 "세모는 어떻게 지내나요?"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에 내 얼굴엔 걱정이 가득해졌다.
He is o... kay.
영어에는 여러 가지 칭찬을 담을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fantastic! amazing! good! great! 등등. 그런데 okay라는 단어에는 우리말로 치면 '음... 뭐... 그냥저냥 괜찮은 것 같아~ 아직 좀 더 지켜보려고~'라는 뉘앙스인 것이다.
그날의 짧은 대화에서 나는 세모의 ADHD가 다시 또 열심히 세모의 뇌 속에서 활동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 세모의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에 팝콘을 와그작 씹어드셨고, 나는 선생님께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월요일에 할 말이 있으니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는 조심스러운 요청이었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계속 고민했다.
'오픈했다가 외국인인 세모를 차별하면 어쩌지? 오픈했다가 ADHD 아이는 여기서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면 어쩌지? 아니야. 캐나다잖아. 조금은 여기서는 인식이 다르겠지. 그래 말해보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세모의 선생님을 보며, 나는 세모의 ADHD 진단을 또 한 번 용기 내어 고백하기로 했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은 연습하면 할수록 덜 긴장되고 익숙해지니까. 앞으로 세모의 ADHD를 이해해주어야 할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하는 부모로서 나에게 이런 순간은 늘 '연습'의 기회라고 여기기로 했다.
"He's been diagnosed with ADHD."
세모는 ADHD 진단을 받았어요.
초2 선생님께 처음 말씀드렸던 ADHD, 그리고 초3 담임선생님. 이제는 캐나다 담임선생님에게까지. 그렇게 3번의 오픈하는 연습을 잘 해냈다. 막상 내뱉기 전에는 뭔가 거대한 걸 꺼내듯 비장하게 서론을 길게 준비하지만, 막상 "내 아이는 ADHD야."라고 말하고 나면 이런 느낌이 들었다. "내 아이는 ADHD야. 그냥 그렇게 태어났어. 그게 내 아이야."
세모의 캐나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Oh, now I get it." 이제야 알겠네요~
그 뒤로 나는 솔직한 내 마음을 다 쏟아냈다. 한국에서 ADHD는 'stigama'(낙인)이 있어서 늘 누군가에게 오픈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여기 캐나다 문화는 다를 거라는 믿음으로 말씀드려 본다고. 적극적으로 선생님을 돕고 싶고, 가능하시다면 피드백을 자주 주시면 한국의 있는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여 약물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아이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까지. 모두.
그리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 한 문장을 던지셨다.
"Okay. Now I can give him more grace."
'grace'라는 단어에 그녀의 마음이 모두 담겨있었다. grace는 은혜, 친절, 우아함까지 단 하나의 한국어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어단어다. 그녀가 말하고자 한 의미는 '관용'에 가까운 의미였다. "He knows it but he just can't control himself." 세모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냥 자신을 조절할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하시면서 되려 나에게 아이를 이렇게 바라보라고 가르쳐주셨다.
집에 돌아와 세모의 학교 생활을 듣고 화가 난 세모의 아빠는 아이를 엄하게 또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듣기 힘든 말이 있다.
"대체 왜 그러니? 엄마 아빠가 말했으면 거기서 기억하고 잘했어야지."
ADHD에게 이 문장은 의미가 없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ADHD 때문이고, 왜 기억하지 못하냐고 물으면, 그 또한 ADHD 때문이기에... 그리고 ADHD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에...
세모의 아빠에게 말했다.
"불과 세모를 일주일도 안 본 선생님께서도 grace를 주겠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부모잖아. 우리야말로 세모에게 더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이잖아.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아빠니까 그렇지."
우리는 또 한 번 그렇게 서로의 서글픔, 분노, 속상함, 뉘우침을 함께 나눴다. ADHD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남들은 겪지 않을 고백의 시간들, 또 한 번 아이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시간들, 그리고 서로 더욱 한 팀이 되어가는 시간들.
세모는 한껏 속상한 얼굴로 혼이 나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실에서 세모의 콧노래가 들린다.
어떤 상황도 과거는 과거로 묻고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 ADHD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다.
세모에게 나는 또 무한한 믿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