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놀이터 지킴이가 되어야 하는 ADHD 부모

정글 같은 놀이터에서 버텨온 날들

by 이사비나

세모의 ADHD를 알기 전부터 나는 놀이터가 두려웠다. 행동이 크고,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가 다칠까 봐, 다른 아이가 다칠까 봐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아야 했다.


잠깐 옆에 있는 엄마와 수다라도 떠는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 있을 때도 많았다. 갑자기 아는 친구가 엄마랑 손잡고 지나가는 걸 봐도 "누구야! 어디가!" 하고 그 집 앞까지 쫓아가던 행동이 마치 소닉 같던 아이였으니까.


문제는 놀이터에서 아이가 주변을 살피지 않고 놀다 의도치 않게 친구랑 부딪히게 되거나 과도하게 몰입해서 큰 소리가 날 때였다.

ADHD 진단 시, 검사지에 이런 표현들이 있다.

"차례를 잘 기다리지 못한다."

"모터가 달린 듯 움직임이 빠르다." 등등.

상대 아이들도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대응하는 게 미숙한 5~7세 아이들이다. 그런데 차례를 잘 기다리지 못하는 ADHD 아이가 나타나면 다른 엄마들 역시 편하게 놀이터에 앉아있지 못하게 된다.

불편해지는 아이들은 연신 자신의 엄마들을 부른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의 전후를 챙기지 못했을 때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저 엄마 아이만 오면 자꾸 트러블이 생기네.'

'저 엄마는 애를 안 보고 뭐 하는 거야.'


그래서 더욱 열심히 놀이터 지킴이를 자처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 부모들은 나와 있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터에 나와 편하게 놀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그냥 좀 혼자 놀게 해 볼까?' 하며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몇 분 되지 않아 아이가 씩씩 대며 집에 들어오거나 울고 들어온 날도 있었다.

대부분 본인의 잘못은 없고 '억울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누구야 누가 우리 세모 울린 거야?' 하고 나가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세모 때문에 놀이가 제대로 안 된다는 형 같은 또래들의 민원을 받아야 했었다.


세모의 ADHD를 알고 나서, 약물 치료를 시작한 것이 초등학교 1학년 초였다. 약물치료가 다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약효가 끝나고 만나는 놀이터 친구들은 여전히 같은 학년이지만 형, 누나들 같았다.


ADHD 아이의 전두엽은 2~3년 늦게 발달한다고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타인에게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능력은 대부분 전두엽에서 담당을 한다. 즉, 높은 사회성은 전두엽 발달 정도와 분명 정비례한다 볼 수 있다.


세모는 초1, 초2 때에도 놀이터에 가면 늘 유치원 아이처럼 행동했다. 부모로서 많이 답답하고 화가 났었다. 후회한다.


ADHD에 대해 여러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아이에게 놀이터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던 그 시간들을 후회한다. 그동안 아이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고 아이를 '도덕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해 왔다.


영유아 검진을 하면 아이의 발달이 어느 정도 되는지 부모가 체크하게 되어 있다.

"간단한 가위질을 할 줄 안다."

"두 발로 점프를 할 수 있다."

아이가 그 개월수에 가위질을 할 줄 모르고 두 발로 점프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는 화내지 않는다. "언젠간 하겠지." "아직" 못하는 것이지.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보며, 그 걱정 많던 시기를 돌아보자. 우리의 아이는 그 당시 못할 것 같았던 것들을 언젠가는 다 발달해 성공적으로 그 과업을 클리어해 왔다.


그런데 전두엽 발달이 느린 ADHD 아이를 보며, 우리는 왜 못하냐고, 대체 몇 번을 가르쳐줘야 하냐고. 왜 배려를 안 하냐고. 왜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고를 치냐고 질책한다.

지나고 나니 그 힘든 시기를 지나는 ADHD 부모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언젠간 다 해요."


4학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는 세모를 보면,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다. 놀이터 지킴이를 좀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차례를 지킨다. 언제 그런 걱정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어울려 즐겁게 게임을 하고 있다.(이런 순간이 오긴 오네요.)


늘 놀이터 지킴이를 해야 하는 나의 '처지(?)'가 참 고단하고 지칠 때가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운다 생각하면 2~3년은 내가 '해야만 하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막 한 발짝 두 발짝 걷는 유아를 뛰어다니는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니, 아이의 발달 상황에 맞춰 좀 더 오래 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힘을 내자.

우리가 걱정하는 모든 문제들, 아이는 이미 그 씨앗을 갖고 있다. 아직 싹이 안 텄을 뿐. 언젠간 다 한다. 늘 그래왔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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