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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Jun 28. 2024

최고의 말 맛, "우리 여행 가자!"

나의  여행 이야기 1 : 준비도 나다움



다른 사람이 먼저 여행 가자고 제안할 때 가슴은 더 부풀어 오른다. 막상 가지 못하더라도 상상만으로 온몸에 생기가 돈다. 서로 얘기가 통하고 휴식의 리듬, 유머코드까지 잘 맞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반가운 말이다. 

 

지난 초봄, 남편에게 북미 여행 상품에 대한 얘기를 했다. 식사하며 가볍게 꺼낸 것이다. 수제비 맛집에서 쫄깃한 감자전을 곁들여 먹으며, 좀 전에 본 여행 정보가 생각나 평상시처럼 화제로 삼았다.

“가자, 여행.”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그 자리에서 제안했다. 


뜻밖의 반응이다. 휴일에도 바쁜 남편이라 당분간 장기간 해외여행은 생각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낼 수 있는지 확인을 자꾸 하니 업무를 조금 무리해서라도 잘 처리해 놓을 거라며 걱정 말라고 한다. 

“왠지 지금 안 가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 우리가 꼭 가고 싶다고 한 곳이기도 하고.”

라고 진지하게 덧붙인다. 


출발은 결혼기념일과 생일이 있는 6월로 정했다. ‘은근히 세심한 걸...’이라는 생각에 모처럼 흐뭇했다. 다음 날 뉴욕과 캐나다 여행 예약을 하고 나니 기대가 점점 커진다. 여느 때보다 더 신나게 놀며 둘만의 여유를 누리고 싶다. 여행 가기 전부터 나눌 얘기가 많아졌다. 갈 곳을 검색하며 먹거리 정보도 남편과 공유했다. 패션 또한 여행의 특별한 즐거움이라 옷장을 오랜만에 크게 열어젖혀 보았다.


이번 여행은 사실 걱정이 하나 있다. 몇 달간 지속된 허리통증이다. 집에서 꾸준히 도수 운동을 하는 중이다. 이 상태에서 여행을 가면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남편은 도와준답시고 내 캐리어까지 틈틈이 끌고 다닐 게 뻔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여행 이야말로 지극히 독립적이며 책임감이 필요한 행위다. 동행자의 자유로움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허리 상태에 각별히 신경이 쓰였다.


고심 끝에 하루 일과 중 건강관리를 최우선에 두었다. 허리 건강을 위해 당분간 노트북도 멀리 했다. 10년 이상 오전 시간은 특별한 약속과 일이 없는 한 무조건 독서시간이다. 오랫동안 나만의 황금 시간대다. 순서를 과감히 바꾸어 가장 쾌적한 기온의 오전 시간은 이번 여행을 대비한 운동시간으로 만들었다. 


장거리 비행, 많은 활동이 있을 장기간 해외여행 준비는 여권과 물품만이 아닌 체력 관리도 중요하다. 그것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1순위다. 준비도 개인 맞춤이 필요한 것이다. 


규칙적으로 공원에 오르기 시작했다. ‘가끔’ 갔던 곳을 ‘매일’ 가니 안 보이던 공간과 사물, 풍경이 눈에 더 들어온다. 운동기구는 별 관심 없이 하나의 설치물로만 스쳐 보았지만 지금은 사용설명까지 읽으며 시연을 하고 만져보았다. 저쪽에선 댕댕이들 야외학습이 있는 날인가 보다. 세 녀석 중 하나가 나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진다. 


긴 벤치그네가 보인다. ‘원래 있었지.’ 하며 갔다. 앉기도 전에 흔들려 중심을 잘 잡아 보았다. 하트모양의 아치로 지붕과 옆면이 있어서 쏙 들어간 느낌이다. 그늘이라 시원하고 아늑하다. 엄마의 품을 느끼게 한다. 몸을 흔들거리다가 발을 구르며 갈수록 그네에 속도를 내어 열정적으로 신나게 한참 쉬지 않고 탔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그네가 높이 올라가면 질겁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놀면서도 심심하고 허전했던 감정도 다시 느껴진다. 불쑥 떠오르는 그 기억을 떨치며 운동을 위해 일어났다. 공원의 풍경을 둘러보며 아담한 광장을 큰 원으로 힘차게 걸었다. 



이렇게 걷다 보니 올바른 걷기 자세에 대해 궁금해진다. 전문가의 영상을 검색하여 유심히 보고 익혔다. 이전에는 운동법을 그냥 흘려 봤는데, 이번에 제대로 익혔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 관절에 안 좋은 자세로 걸음을 걷는다고 한다. 오히려 무릎에 무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배운 대로 발목을 사용하며 가슴을 함께 올리는 방법으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자연스럽고 효과를 몰랐는데 매일 연습했더니 무릎에 힘이 덜 간다. 공부든 운동이든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려줘도 내가 필요하고 알고 싶은 ‘바로 그때’에 배워야 하나보다. 


운동하는 습관이 드디어 생겼다. 거의 '혁명'과 같은 변화다. 완전히 내 것이 되어 운동하는 맛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공원에서 다시 집으로 내려가기 싫은 정도로 그 시간은 좋은 에너지가 솟는다. 오감으로 운동하는 법도 터득했다. 독서하던 귀한 오전 시간에 운동하기로 결정한 것은 참 잘했다. 즐거운 혁명은 예전에도 오전 시간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해외여행 준비부터 큰 변화가 생겼다. 어떻게 해야 인생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를 작은 계기로 늘 발견하게 된다. 지난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알아가는 것은 ‘자기’에 대한 공부이기도 하다.


체력을 더 건강하게 키워 걱정도 훨씬 덜었다. 여행에 대한 예열은 끝났다. 짐가방에 하나씩 채워가니 더 설렌다. 책은 한 권도 넣지 않았다. 이번엔 노는데 일등이 되어볼까 한다. 눈을 통해 직접 담을 풍경을 상상하며, 온 감각을 이미 활짝 열어 두었다. 

“헤이 뉴욕, 내가 곧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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