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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guevara Mar 25. 2021

간절한 이유

카파도키아

 터키의 동쪽으로 향했던 마음을 돌리기로 결정이 섰을 때 나의 나침반은 곧장 카파도키아를 향했다. 나름 힘들었던 메르신에서의 시간을 위로해준 터키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고마운 마음을 최대한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아끼고 아껴야 하는 배낭여행자는 항상 더 표현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안고 다음 도시로 떠나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카파도키아로 떠나는 길도 메르신으로 거쳐왔던 길 못지않게 멀었다. 오전에 탄 버스를 자정까지 타야 했고 허벅지가 저렸다. 터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날은 추워졌고 흔히 카파도키아라 부르는 괴레메는 너무 추웠다.


 버스에서 내려 몇 발 내딛자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졸음까지 정확히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휴대전화로 저장해 놓은 지도를 확대했다 줄였다를 반복하면서 길을 찾으며 걷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지금 온 거야?'

 '응. 방금 도착했어.'

 '춥지? 이거 한잔 마셔.'

 자신의 음식점 앞에서 장작태우고 있었고  위에 오래된 주전자를 달구고 있었다. 남자가 건넨 컵을 양손으로 쥐고 따뜻함을 느끼며 조심히  모금 들이켰다.

 '이거 뭐야? 차야?'

 '아니. 와인이야.'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맛은 샹그리아 같았지만 따뜻했다. 생각보다 좋았다.

 '레스토랑 닫은 거야? 나 너무 배고파.'

 남자는 씩 웃으면서 메뉴판을 보여줬고 지금은 케밥 종류와 햄버거 종류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햄버거를 주문했고 따뜻한 와인을 한 잔더 채웠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열기구를 탈 수 있느냐였다.

 '날씨가 너무 추운데 내가 열기구를 탈 수 있을까?'

 '오늘은 열기구가 뜨지 않았어. 이제는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 그래도 며칠 전에는 열기구 몇 대가 떴어.'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카파도키아에 아니 여기 괴레메에 온 이유는 딱한 가지 열기구였는데 그것도 미지수가 되어버렸다. 숙소로 가는 길 등에 업은 배낭과 손에 매달린 햄버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다음날, 자잘한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밖을 나가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정말 열기구를 못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마음이 급해져 숙소의 스텝에게 물어보고 씻지도 않은 채 괴레메의 투어 회사를 둘러봤다. 그런데 모두의 대답은 '한번 알아볼게.'였다. 갑자기 플랜 B가 필요해진 상황. 숙소의 와이파이로 온갖 사이트와 블로그를 뒤졌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에 위치한 기암 지대로 형성된 곳이 카파도키아다.  카파도키아는 화산으로 인해 겹겹이 쌓인 지층들이 기암 지대가 됐고 자연적으로 풍화되어 색이 다른 지층이 드러나며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깎아내기 쉬운 응회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종교적 박해를 피해 굴을 파서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색색의 기암 지대와 그 속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은 카파도키아를 지구 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비한 장소로 만들었고 지구 같지 않은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열기구를 탈 수 있는 곳도 카파도키아 뿐이었다. SNS 속 노랗게 떠오르는 해와 함께 하늘에 걸린 수십 개의 색색 열기구 사진은 누가 찍어도 인생 샷으로 볼만큼 멋졌고 앞에 말한 모든 것들이 오래전부터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며 일출 보기.'가 버킷리스트였던 이유, 지금 내가 열기구에 목메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가늘게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점심을 먹고 마시던 뜨거운 차이가 차갑게 식을 때쯤 숙소의 스탭이 나를 찾아왔다.

 '내일은 비도 오고 바람도 있어서 안 뜰 거 같아.'

 '그다음 날은?'

 '그다음 날은 가능해.'

 '그럼 이 방에서 하루 더 지낼 수 있을까?'

 '물론이지.'

 몇만 원의 숙소비? 아무리 가난하게 여행하지만 놓칠 수 없었다. 스태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열기구 투어를 예약하고 숙소비를 추가로 냈다. 수년을 기다려온 나에게 하루쯤은 더 지루해도 괜찮았다. 그리고 초조한 하루를 보내며 느꼈다.


내 것이 아닐 때, 더 간절해진다는 걸.


 90년대 중반 혼성 3인조로 힙합, 소울, 레게 다양한 음악으로 손꼽히는 미국의 힙합그룹 Fugees의 The Score라는 앨범의 곡. 이어폰을 끼고 듣다 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의 샘플링과 묵직한 드럼이 매력적인 곡 Ready or Not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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