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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찬 May 07. 2021

밀레니얼 판타지

Virgil Abloh

 ‘무엇이든 판매하는’ 아마존이 럭셔리 브랜드의 상품을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아마존은 작년 9월 명품 브랜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럭셔리 스토어(Luxury Store)' 플랫폼을 출시했는데, 그동안 아마존 입점을 기피했던 명품 브랜드들은 저조한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자세를 낮춰 하나 둘 아마존에 입점하고 있다. 이제 럭셔리 브랜드의 상품은 코카 콜라만큼이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기존에 패션이 가졌던 신비감은 사라지고 상품의 모든 정보가 수치화되어 일종의 데이터로서 거래된다.  

패션계는 언제나 모순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패션이 대중화되는 것을 꺼리면서도 브랜드의 수익성을 보장해줄 대중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가? 기술 매체의 발달은 대중들로 하여금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손쉬운 접근성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덕분에 브랜드는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있었다. 그러나 기술 매체는 동시에 패션계가 그토록 집착해오던 아우라 앗아가 버렸다. 디지털 기술이 가속화한 패션의 민주화 패션을 무미건조한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과거 크리스챤 디올과 위베르  지방시가 가질  있었던 특권은 사라졌다. '전지전능한' 그들이 구축해온 패션적 도덕절대적 아름다움은 강력한 패션 민주주의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사치와 위선이  뿐이다.  이상 패션에는 판타지가 존재할  없는 걸까? 아름다운 아우라를 내어준 대중 패션은 결국 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판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버질 아블로가 최근에 보여준 루이 비통 남성복 컬렉션은 판타지  자체였다. 그가 패션 영상을 통해 보여준 다양성과 창조성은 분명 관람자에게 영감을 주는 창의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판타지의 성격은 과거의 패션계가 이야기하는 방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버질의 루이 비통 슈트와 스니커즈는 여전히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자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판타지는 버질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비자로부터 나온 판타지였다. 그는 루이 비통의 럭셔리한 가방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그리고  나아가 연대 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길거리 위의 소비자들의 소망이자 판타지였다는 것이다. 버질은 길거리 위의 대중들에게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판타지를 정확히 읽어냈다. 그리고  판타지를 매력적으로 구현했다. 그것은 연대에 의한, 연대를 위한 판타지였다! 그가 밀레니세대의 ‘ 라거펠트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식의 연대적 창조성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지난 8-10년 동안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해 대화를 해왔습니다. 그것은 럭셔리 브랜드를 세대를 어우르는 것으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루이비통에서의 첫 남성복 컬렉션을 준비하며 “제가 첫 번째로 할 일은 새로운 코드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저의 뮤즈는 언제나 사람들이 실제로 입는 것이었으며, 저는 그것을 하이엔드 버전으로 만들 생각에 무척 기대됩니다.” -버질 아블로, 2018 뉴욕 타임스 인터뷰 (출처 : https://www.nytimes.com/2018/06/22/fashion/louis-vuitton-virgil-abloh-paris.html?searchResultPosition=16
루이 비통 2021 가을 남성복 컬렉션 (Photo credit : Runwaymagazines)


기존의 판타지는 또 다른 판타지로 대체되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판타지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민주적이다. 그 신화의 창조자는 소비자이며 디자이너는 그들의 판타지를 이미지적으로 구현시켜줄 뿐이다. 버질과 같은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꿈을 매력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밀레니엄 세대의 완벽한 디자이너인 것이다. 소비자들로부터 출발한 판타지라면 그들은 충분히 그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열광할 수 있다. 그것은 민주적 패션에 너무나 적합한 판타지이다.

소비자가 전지전능한 디자이너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자세를 낮추고 스튜디오 대신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길거리에는 온갖 꿈이 넘쳐흐른다. 다양한 사람들의 가지각색 꿈과 판타지들이!


오늘날의 패션은 현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현대 예술 작품의 내용은 감상자의 해석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즉, 예술가의 작품은 감상자의 해석에 따라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며 반대로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예술가의 작품은 감상자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감상자의 해석 없이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은 작품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언제나 감상자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작품의 시작과 마무리는 관람객의 존재에 달려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현대성의 특성이 드러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좋아요. 예술에 대한 저의 열정은 이것으로부터(이해할 수 없음) 온다고 생각해요. 예술가의 작품에 매력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분석하지 않고도 그 작품을 현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것은 제 눈과 뇌를 사로잡거든요.”
“현대성은 또한 무작위성, 혹은 예상과 반대되는 것, 또는 진부한 것의 반대이기도 해요. 그것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에요.” -라프 시몬스, WWD 인터뷰 (출처 : https://wwd.com/fashion-news/designer-luxury/modern-times-7632682/)


결국 현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 작품이 독자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성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상호작용적 사고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 감상자와 작가의 대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현대성이다. 그리고 오늘날 패션의 판타지는 이와 같은 현대성을 지닌다. 패션의 판타지는 디자이너의 독자적 창조성으로부터가 아닌 디자이너가 소비자의 열망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탄생할 수 있다. 그것은 상호 교환적이다. 이런 현대성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을 통해 보여주는 소통 방식은 현대성의 표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패션의 의미가 디자이너들로부터 대중들에게 하향 전파되었다. 루이 비통 남성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버질 아블로가 채용되었다는 사실이 무언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향식 전파라고 하는 낡은 모델이 타당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위대한 창조주에 대한 숭배는 죽었다....... 소비에 의해 모든 게 대체되는 디지털 시대에, 소비하는 행동은 더 이상 실질적 필요나 즐거움과 관련된 것이 아닌 보여주기 식의 실존적 제스쳐다(소비로 내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 뉴욕타임즈 (출처 : https://www.nytimes.com/2018/06/22/fashion/louis-vuitton-virgil-abloh-paris.html?searchResultPosition=16


이전과 같은 방식의 패션은 죽었다. 아름다움은 더 이상 디자이너의 생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현실 그 자체다. 버질 아블로가 보여주는 판타지는 바로 이것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패션은 전보다 더 창조적으로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길거리 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드라마, 이보다 더 예술적인 것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 다양하고 리얼한 드라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오늘날의 패션 판타지는 어쩌면 진보한 현대 패션을 증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패션은 죽지 않았다. 한 단계 더 진보했을 뿐이다!


"패션은 농담 같은 것이에요. 저는 옷 속에 너무 갇혀있지 않아요. 제게 있어, 이것은 하나의 큰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패션계가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디렉터 지휘 아래에 있는 브랜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버질 아블로, The Cut 인터뷰 (출처 : https://www.thecut.com/2017/02/virgil-abloh-off-white-streetwear.html)







참고 자료

https://www.fashionn.com/board/read_new.php?table=1004&number=34494

https://wwd.com/fashion-news/designer-luxury/modern-times-7632682/

https://www.thecut.com/2017/02/virgil-abloh-off-white-streetwear.html

https://www.nytimes.com/2018/06/22/fashion/louis-vuitton-virgil-abloh-paris.html?searchResultPosition=16

https://www.nytimes.com/2018/03/26/business/louis-vuitton-virgil-abloh.html?searchResultPosition=2


이미지 출처

Runway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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