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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19. 2024

신간 서적 선택법 1: 전작이 좋으면 신작도 고른다

[북리뷰] 대니얼 사이먼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당신이 속는 이유. 

1. 신간을 찾는 방법     


 저는 읽어볼 만한 신간 서적을 찾는 방법으로, 한겨레의 <북&생각>과 교보문고의 <주목할 신상품> 목록, 그리고 800군데 정도의 동네책방 인스타그램 계정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가장 크게 의존하는 건 아무래도 교보문고 웹페이지의 <주목할 신상품> 목록입니다. 『2023년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작년 신간 발행 종수는 6만 1천181종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성실히 작동하는 게이트키퍼가 필요하단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교보문고 MD들이 믿음직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의 자질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MD’라는 사실 사체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접근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당사자들이 읽게 된다면 꽤나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네코노테(猫の手) 정도로 생각한다고 해두겠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한겨레 사이트에서 <책&생각>을 살펴봅니다. 교보문고에서 점찍어둔 책이 실렸다면, 기사를 대충 훑어봅니다. 신문사 북섹션이라고 해서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의 조언도 있었고, 사이비기자 시절에 만들던 잡지에서 엉터리 북섹션을 편집하기도 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그저 고양이손보다는 나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합니다. 언론사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나 하고 있나 호의적인 상황이지만, 조선일보나 한겨레 정도는 그나마 자존심을 좀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도 좀 기대 봅니다. 조선일보는 아예 들여다보지를 않다 보니, 제 선택은 한겨레 단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게 맹점입니다. 이쯤이면 교보문고 MD의 픽 pick이 한겨레 기자 픽과 겹치는 부분이 생깁니다. 조금 더 유의해서 살펴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당최 관심 없는 책들이 넘쳐나곤 합니다. 다양한 책들을 편견 없이 읽어보기엔, 허비한 날들이 너무 많고 남아 있는 날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제 제법 고르고 골라 읽어야 합니다. 한정된 분야를, 관심 있는 주제로만, 치우친 취향에 맞게 선택해야 하나 보니, 하루에 170권씩 책이 출간된다고 해도 걸리는 책이 없기도 합니다. 

 그때 종종 도움이 되는 것이 인스타그램입니다. 팔로 하는 책방 계정이 너무 많아서, 좋아요 누르는 것만으로도 매일 엄청난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피드들을 살피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픈 공지나 입고 안내 같은 일상적인 피드들은 거의 기계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며 지나가다가 순간 눈에 걸리는 피드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형사의 감’과 같은 경험에서 오는 직관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감각이 잡아 세우는 피드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눈길이 가는 책소개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나 몇몇 취향을 저격하는 책방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이런 책이 나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세상이 ‘이렇게 좋아지기 전’에는 대형서점을 찾아가 평대를 살펴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 아날로그 한 행동에서 꽤나 자기 효능감을 느끼곤 했습니다만, 언제나처럼 ‘선택의 역설’에 빠지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게을러진 대신, 좀 더 편해진 듯합니다.          


 

2. 신간을 고르는 방법     


 어떤 새 책이 나왔는지를 알게 됐으니, 이제 그 책을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사지는 않지만 읽기는 한다는 건 모르겠지만, 읽지는 않지만 사기만 한다는 일은 제게 없습니다. 사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란 방법도 있기 때문에, 제가 신간을 고른다는 건 우선 읽겠다는 의미입니다.

 앞서서도 밝혔지만, 선택의 폭을 점점 좁혀가고 있는 처지라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방법도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어야만 합니다. 양서라고 정평이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권하는 책일지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고르지 않습니다. 평이 좋질 않다고 해도, 혹시 모르니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냥 선택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꼭 찍어 먹어봐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요, 찍어 먹어봐도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실패를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읽어보는 경우도 없진 않습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은 크게 ‘지식 습득 목적’, ‘지식 확인 목적’, ‘문학적 목적’의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어떤 분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책을 펼쳐드는 게 첫 번째 ‘지식 습득 목적’에 해당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장 싸고, 가장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을 읽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약간의 지식이 쌓이게 되면, 제 안에 구조화된 지식들이 안정성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또 다른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잘 쓴 책을 만나면 지식체계는 더욱 단단해지고, 잘 못 쓴 책을 만나면 자만심이 더욱 단단해집니다. 어느 것도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소설을 고릅니다. 어릴 적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소설 읽기 때문이었고, 국문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도 소설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전히 문학적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서사문학 특히 소설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그냥 ‘소설 재밌게 읽기’쯤을 세 번째 목적은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게 해당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책을 선택하려고, 정보를 검색하고, 논문을 찾아보고, 리뷰를 살펴 읽기도 합니다. 거기서도 확답을 얻지 못했을 때는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가 실물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정성스레 책을 고릅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생략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작가의 전작이 훌륭했을 때가 그렇습니다. 국민학생 시절에는 코넌 도일의 홈즈 시리즈를, 중고등학생시절에는 이문열의 소설들을, 대학생 시절에는 다자이 오사무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신작이면 아주 저항 없이 펼쳐 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책들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이문열의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되는 시점이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는 시점도 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원같이 다음 투수들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구원투수들에 열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열광이 식는 것을 모른 척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한 번 마음에 든 작가들의 신작에는 꽤나 너그러운 편입니다.      

 재작년 이맘때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케팅 이론은 소비자행동학을 토대로 하고, 소비자행동학은 인지심리학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렇다 보니 인지심리학으로의 진입은 그렇게 역순으로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선택은 선택을 방해한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은 쉬나 아이엔가 역시 인지심리학자였습니다. 주의력 착각과 같은 댄과 크리스의 개념은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열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듀오의 신작이었으니 일단 눈길을 사로잡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사기당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고 합니다. 이건 업무관련성이 없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주제입니다. 그러니 집어 들고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 인지심리학은 대부분 재밌다   

  

 원제는 『Nobody’s Fool: Why We Get Taken In and What We Can Do about It』입니다. ‘nobody’s fool’은 잘 속지 않을 정도로 지각 있는 사람을 일컫는 관용어라고 하네요. 부제는 속는 이유와 대처 요령 정도가 되겠고요. 이런 식으로 말맛이 뛰어나지만 번역이 쉽지 않은 제목은 출판사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울 듯합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빠꼼이’ 정도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그 말맛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건 또 아니라서, 출판사 입장에서도 그리 탐탁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여하튼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한 겁니다.

 이 책에서는 진실 편향 truth bias, 즉 지나치게 많이 받아들이고 너무 적게 확인하려는 우리의 성향을 사람들이 어떻게 악용하는지 밝히고,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제안한다. 
 핵심은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라는 간단한 것이다. - 서론 중에서

 작가들은 네 가지 습관과 네 가지 훅 hook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어느 것 하나, 무릎을 치며 동의하게 됩니다만, 그 결론에 이르면 좀 허탈해집니다. 어떤 적절한 선을 찾아야 한다는 모호함 때문에, 개인적 역량에 따라 아무 의미 없는 조언들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 집니다. 물론 8가지의 메커니즘 그 자체를 살펴본 것만으로 이 책은 할 도리를 다하긴 했습니다. 더 이상 바라는 건,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익사 피구호자의 태도겠지요.      

 인지심리학이 재밌는 이유는 직관적 이론 intuitive theories을 아득히 벗어나는 경우가 잦아서입니다.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 그 반전은 짜릿함을 줍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 발드의 생존 분석 survival analysis은 손상을 입고 귀환한 폭격기를 기반으로 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폭격기에 집중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는 점이 귀싸대기에 날아오는 매운 손바닥처럼 훅 다가왔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아 너덜너덜해진 곳을 보강해야겠다는 ‘직관적 이론’을 따르지 않고, 그렇게 뚜드려 맞아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곳이란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귀한 폭격기들의 ‘살짝만 맞아도 쌍코피 터지는 곳’을 연구했다는 겁니다. 2년 전쯤 꽤나 열심히 고민했던 ‘실패학’이 생각나더군요. 저자들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가능성 그리드라는 개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실패 이력서 resume of failure’를 쓰는 것이다. - 70쪽                         

인간은 보통 경험이 주도하는 기대에 의존해서 해석하고, 이런 기대는 정보에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때때로 예측한 것을 찾고 그것을 찾은 데 만족하는 일이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그 결과 사기꾼의 덫에 걸린다는 거죠. 이 역시 우리의 직관적 이론을 벗어납니다.

 기대에 부합하는 것은 성공적인 사기로 가는 길에서 피해자를 무장 해제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다. 보는 것이 기대하는 것에 부합할 때면 우리는 좀처럼 의문을 제기하지 않거나 깊이 파고들지 않기 때문이다. - 93쪽

 “밴포드 법칙을 알게 된 사람들은 밴포드 패턴이 나올 수 없는 경우에도 이를 적용하는 지나친 열성을 보이곤 한다”는 지적에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원조음모론자 김어준의 2017년 대선음모론 말입니다. 확증 편향의 무서움은 진영을 바꿔가며, 국적을 바꿔가며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직관적 이론을 아득하게 벗어나는 현상을 인지심리학은 놓치지 않고 밝혀줍니다. 이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족.

 한참을 웃었던 대목입니다. ‘헛소리 비대칭의 원리 bullshit asymmetry principle’는 2013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유포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Brandolini's Law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실증연구도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헛소리 비대칭의 원리 bullshit asymmetry principle’는 헛소리를 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헛소리를 반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훨씬 크다는 뜻이다. 타당하지 못한 과학적 주장에도 비슷한 법칙이 적용된다. 일단 어떤 결과가 동료 심사 논문으로 받아들여지면, 그와 반대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데에는 10배 이상의 증거가 필요할 수 있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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