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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22. 2024

2년 만에 다시 집어든 책 두 권, 감상은 半半

[북리뷰] 이보람.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 헬로인디북스. 2019

 저는 2021년부터 이른바 '독립서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역순으로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니은서점의 마스터북텐더 노명우의 책『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에서 "서점을 구상하면서 처음에 한 일은 생각해 보니 참 어처구니없게도 서점에 가서 서점에 관한 책을 사서 읽는 것"이었다는 문구를 자주 인용하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야구 초짜인 백승수 단장은 책으로 야구를 배웁니다. 모르겠으면 일단 책이라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게, 우리 세대 꼰대들의 디폴트값인 듯합니다.

 2021년 서울도서관이 독립출판물을 수서 해서 서고를 꾸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몇 편의 논문을 읽었고, 몇몇 도서관에서는 독립출판물을 수서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으며, ISBN이 없는 도서의 수서가 너무 어렵다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조각 정보들을 찾아 연결하다 보니, 어느새 서울도서관에 이르더군요. 막상 찾아간 도서관에서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출판문이 뭔데?'라는 의문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도 한국십진분류 013의 서가를 둘러보는 건 잊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 책들을 처음 만났었죠.


 2년 전의  첫인상은 '책 참 쉽게 만드는구나'였습니다.

 엉성한 표지, 성의 없는 종이 선택, 읽기 불편한 편집까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어디 대학생들 문집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이면 책에 손이 가질 않는다면서 내려놓고 말았죠. 지금이라고 생각이 크게 변한 건 아니지만, 3년 전에는 부유하는 '독립출판물'의 개념은 물론이고 그 '물건' 자체에도 그리 긍정적인 생각은 갖지 않았습니다. '웬만해야 그러려니 하지'라며, 낮은 수준의 완성도에 혀를 차곤 합니다. 인디문화란 아마추어리즘을 위한 겉치장이 아니라, '제도권 밖'이라는 위치 설정이라고 생각해 왔던 탓도 큽니다. 제도권 내의 문화상품들과 내용적 완성도에서 질적 차이를 드러내는 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서울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 들었다가 다시 꽂아넣길 반복했었는데요, 그때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년 만에 다시 책장에서 꺼내 들었습니다.

 최근 서울도서관의 013 서가에서 책방주인들이 쓴 책들을 마지막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제 서점에 관한 책들을 그만 살펴볼 작정으로 이미 찾아놓았던 책을 갈무리하는 중이죠.  지난 3년간 적지 않은 양의 책들을 살펴보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서점학교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의 경기서점학교 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한 데다, 여러 가지 서점에 관한 콘퍼런스를 쫓아다닌 뒤인지라, 이 정도면 되었다 싶기 때문입니다. 전파사, 레코드가게, 쌀집, 연탄집, 방앗간처럼 슬그머니 사라지는 소매점의 대열에서 책방을 빼낼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너무 슬프지 않은 만가(輓歌)를 준비해야 한다 싶어졌습니다. 앞으로의 독서 방향은 그리 잡히겠지요.

 그래서일까요, 마침내 펼쳐본 1권에 대한 감상은 꽤나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는 2017년 책방 개업 5년 차를 맞이하면 엮어낸 책이라고 합니다. 그걸 2019년에 복간한 것이 1권이 되었다네요. 그래서인지 1권은 책방개업기와 책방운영기의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읽었다면 불같이 화내며 악평을 쏟아냈을 텐데요(실제로 이지선의 『책방뎐』이나 송은정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에 악평을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어서 '이만한 책도 별로 없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랬구나' 하고 넘길 수 있게 됐습니다. 악평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호평을 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이보람이란 사람은 헬로인디북스를 하면서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는 걸 책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서 말입니다. 터무니없이 높이 잡았던 책에 대한 기대를 현실적으로 낮추고 나면, 꽤 많은 책들이 읽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에피소드(적지 않은 양의 책방주인들 책을 읽은 탓일 테죠.)에 유머와 위트를 가미한 글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나 <31. 라면 물이 안 끓어요> 같은 글은 꽤나 입체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마지막에 "그렇게 응원과 힘이 되는 격려를 해주던 아저씨는 책방에 들어서더니 너저분하고 허름한 모습에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둘러보고는 생강차를 팔아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라는 문장은 '헉!'소리를 내뱉게 할 만큼 큰 반전이 되기도 했죠. 달콤 쌉싸름하게 진행되던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엄연한 책방의 현실 앞에서 '하나마나한 꼰대의 말참견'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웃프니 소극(笑劇)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참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게 됩니다. <안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촬영을 좀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을 붙였다고 친구에게 말하니, 그러니 좀 덜 찍냐는 질문이 되돌아옵니다. 그 답변은 이마를 치며 웃게 됩니다. "그 안내문을 찍어." 웃긴 하는데, 마냥 웃을 수도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그저 눈앞이 캄캄해지기만 합니다.


 5년 차 책방지기 이보람은  이런 말도 합니다.

 나를 늘 걱정해 주는 친구가 얼마 전에는 신랄한 팩트로 나의 멘탈을 폭격했다. 많은 책방들이 디자인을 하건 출판을 하건 기술자들이고 투잡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서 책방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다. 근데 너는 책방밖에 없지 않느냐. 연남동에서 월세 올라서 밀려나면 그다음엔 어떻게 살 거냐는 팩트. 지난 4년간 꾸준히 나는 책방을 운영했다. 최선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실하게 임했다. 그런데 저 말에 왜 반박할 수가 없을까, 정말 투잡이 아니면 책방은 살아남을 수 없는 걸까. 정말 책방은 평생직장이 될 수 없고 책방지기는 전문직이 될 수 없을까. 자부심 가득한 애티튜드를 가질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는 것일까. - <책방지기 5년 차 2017년 가을> 중에서

송은정의 책에서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던 것, 그리고 김성은의 책에서는 짜증을 내다가 포착했던 것이 이보람의 책에서는 시리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이미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불안이 이제야 보입니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냐고, 이제는 어디 가서 '자부심 가득한 애티튜드'를 좀 보여줄 수 있게 됐냐고 12년 차 책방지기 이보라에게 반문하지는 않으렵니다. 반문해본들 대답을 해 줄 리도 없거니와, 분명 어딘가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작년 연말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출간한 『책방지기의 혼잣말』에 실려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이 책의 원고가 재활용된 듯합니다만, 그 이후의 이야기들도 있으니까요. 


 2권에 대해서는 리뷰하지 않겠습니다. 원했던 내용도 아니고,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라서 어느 정도 읽다가 후루룩 훑어보는 쪽으로 독서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입니다. 리뷰를 쓸 만큼 정독하지도 않았고, 정독하지도 않았지만 기필코 악평을 써야 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도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저 누군가가 "이 책 어때요?"라고 묻는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라는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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