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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May 24. 2024

웬만해선 망하기 힘든 인터뷰집이 그저 그렇게 된 예

[북리뷰]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서점의 일. 북노마드. 2019.

1. 인터뷰집은 웬만해선 망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편집이 만족스럽지 못한 책입니다. 브로드컬리의 『3년 이하』 시리즈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이유입니다.

이 책이 발간된 것이 2019년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2016년 초 『우리, 독립책방』을 출간했던 때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우리, 독립책방』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 책 역시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편집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먼저의 작업은 열광에 도취하여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 무엇을 향해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이 작업은 어차피 ‘와꾸’는 정해진 거니 흘러가는 대로 그냥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책에 중심이 없습니다. 도대체 서점의 일이 무엇이라 말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뷰집은 웬만해선 망하는 책이 되지 않습니다. 대체로 인터뷰어가 대단한 사람이어야 책이 되고, 인터뷰어가 변변찮으면 인터뷰이가 대단한 사람이어야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 다 변변찮을 경우, 웬만해선 책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아파트 윗집 아줌마가 아랫집 아저씨를 인터뷰한들 누가 읽겠습니까? 그런데도 책이 되어 나왔을 때는 인터뷰어와 편집자가 죽을 둥 살 둥 노력해서 어떻게든 책다운 책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다소 결과론적인 정리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편집까지 시원찮으면 그 책은 망합니다.

 제목을 ‘서점의 일’로 정했으면 거기에 천착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 질문들은 제멋대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서점마다 동일한 질문을 반복한 것도 ‘기계적’이라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책방들 하나하나 규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운영방식도 다릅니다. 같은 질문을 순서대로 던진다고 해서 유효한 답변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지면을 메꿀 원고가 필요할 때, 능력 없는 인터뷰어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정해진 질문을 습관적으로 던지는 건데요, 저도 그 멍청한 짓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니 기사가 생동감 없고 뻔해져서 재미있을 리가 없었지요. 능력이 모자란 인터뷰어들은 인터뷰이의 답변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합니다. 이미 여러 번 인터뷰를 통해 학습된 답안을 무조건반사처럼 내뱉을 때 그저 착실히 받아 적기만 합니다. 그런 답변 읽어보면 재미없습니다. 빠꼼이들을 상대할 땐 변화구를 던져줘야 하는데요, 익혀놓은 변화구가 없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거죠. 반대로 인터뷰에 익숙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답변을 끌어내야 하는데요, 준비해 간 정형화된 질문을 순서대로 던지는 것으로는 제대로 된 인터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폿성 뉴스 기사나 신문 기사의 코멘트를 따기 위한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브로드컬리의 인터뷰 작업이 재미있었던 것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에 진심이었던 겁니다. 일단 가서 인터뷰해 보고, 정리해 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시 가서 또 질문하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질문을 바꿔서 다시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진솔한 답변들이 인터뷰이로부터 쏟아져 나왔겠지요. 그런데 이 책은 ‘준비된 멘트’가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빠꼼이들의 대답은 너무 뻔했고,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답변은 부실했습니다.



2. 질문만 잘해도 인터뷰이끼리 대화를 나눈다.


 인터뷰집이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가 비슷한 질문에 대한 정반대의 답변을 모아볼 때나 비슷한 답변을 모아볼 때입니다. 당연하게 맞장구를 치거나, 의외로 대척에 있는 말들도 나오곤 합니다.

 이를테면, 책을 사지 않고 읽고 가기만 하는 손님에 관한 생각이 아주 다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잘 들여다보면,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이런 미묘만 뒤틀림을 겪을 때면 세상 참 피곤하다 싶어지긴 합니다.

 요새는 ‘책을 구경하다가 구입하지 않는 건 손님이 서점에서 누릴 수 있는 중요한 권리’라는 걸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고, 그럼에도 책이 손상되게끔 책을 읽는 손님들에게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손이 많이 닿는 곳에 진열된 책들은 만일을 대비해 재고를 여러 권 두는 등 나름대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 23쪽.
 서점은 책을 사지 않아도 드나들어도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도서관의 역할이에요. 대형서점이든 작은 독립 서점이든 서점은 공유재가 아니에요. 서점에서 거의 화보를 찍듯이 사진을 찍거나, 책은 사지 않은 채 온갖 책 사진을 찍는 사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손님을 마주할 때는 힘이 들어요. - 책방 연희 구선아 대표. 173쪽.


 책방이란 공간에 대한 자각에서도 꽤 다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책방을 바라보며 보수적인 태도로 책방을 운영하는가 하면, 변화된 개념의 책방을 생각하다 보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태도를 방문객에게도 원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소통과 공유의 문제인지라 답답해집니다.

 늘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이를테면 서점은 다른 가게들과 다를 바 없는 ‘가게’라는 생각 같은 것 말이죠. 저는 물론이고 대체로 누구나 먹고살기 위해, 즉 생계를 위해 서점을 열고 책을 진열한다고 생각합니다. 취미로 서점을 여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 같아요. 그런 연유로 저는 서점을 ‘문화 사업’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 36쪽.
 책방들의 고민은 ‘책이 안 팔려요’가 아닐까요. 저 또한 고민이지만, 책을 봐달라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문화로 전하는 것. 이 점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자 동시에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이의선 대표. 81쪽.


 책방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입고 원칙에 대해서도 각자의 의견은 모두 타당해 보입니다. 그렇게 운영하고 싶어서, 그렇게 만든 책방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말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서로 너무 다른 소리를 하게 됩니다.

 여행 서점 바람길은 책이 많지 않습니다. 한 달에 두어 권씩 책을 추가하면서 큐레이션 한 책들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는데, 당연히 제가 좋아하는 책을 고릅니다. 주관적일지 모르지만 제가 좋아하지 않는 책을 추천할 수는 없어요. 서점에 입고한 책은 모두 제가 읽고 마음에 담은 책이에요.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면 설명의 길이와 공감하는 정도가 확실히 달라요. - 바람길 박수현 대표. 48쪽.
 제가 좋아하는 책만 가져다 두면 안 팔릴 게 분명하기에 손님들이 원하는 책들도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입고하고 있어요. - 아마도책방 박수진 대표. 107쪽.
 ‘도시인문학 서점’이라는 서점의 콘셉트처럼 동네와 도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좋아합니다. 여행, 건축, 인문, 예술, 문학 등 장르와 관계없이 지역성, 장소성, 도시성을 담은 책들을 추천합니다. 독립출판물도 도시에 살아가는 일이나 도시 이야기를 담은 출판물을 우선적으로 받고 있어요. - 책방 연희 구선아 대표. 169쪽



3. 답이 뻔한데, 왜 이런 선택을 할까?

 왜 우도에는 책방이 없을까? 동네에 책방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이의선 대표. 73쪽.

 저는 이 질문에 되레 반문하게 됐습니다. 우도에 어떻게 책방 하나쯤을 차릴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요.

 우도면의 면적이 6.18㎢, 인구가 862세대 1,618명입니다. 서점이 단 한 곳도 없는 10개 군(옹진군 20,945명, 무주군 23,167명, 순창군 26,804명, 장수군 20,833명, 임실군 25,838명, 군위군 22,794명, 봉화군 29,921명, 울릉군 9,070명, 청송군 23,935명, 의령군 25,351명)과 비교해 보면, 도저히 서점 하나를 감당할 수 없는 면적과 인구수를 보여줍니다. 유효고객층을 연령과 소득 등으로 분석해 봐도, 입시학원을 차리는 것 수준의 내객이 기대될 뿐이니 말이죠. 심지어 우도는 섬이라서 외부 유입도 쉽지 않습니다. 아예 왕래할 수 없는 시간대도 하루 중에 반이 넘습니다. 자영업자의 자세로 접근한다면, 섬 주민을 대상으론 절대 서점업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순전히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 그러니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도의 책방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가능한 걸까요? 저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만들며 만난 대부분의 책방 주인은 책 판매 수익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고(월세만 벌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부업이라 할 만한 일들을 겸하고(그것이 주업으로 보이기도 했다), 고정 수입을 만들어 낼 행사를 진행하느라(원치 않지만, 워크숍을 여는 이들도 많다) 피곤해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책방 주인은 책방 창업에 회의적이었다. - 김민채 ‘취미는 독서’ 대표. 244쪽.

 마찬가지의 의문은 작은 동네책방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충 살펴봐도 잘 안되고, 찬찬히 살펴봐도 잘 안되고,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해 봐도 잘 안 되는 일을 왜 그리도 하겠다고 나서는지 이해 못 할 건 또 아닙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습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죠. 저도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쫄딱 말아먹어 봐서, 그 마음을 모를 리는 없습니다. 보통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작게 여러 번 실패해 보는 것이 좋다’고들 합니다만, 어디 그렇게들 하나요. 있는 자원 없는 자원 죄다 끌어다가 투입해서 시작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기 마련이죠.

 심지어 서점 해서 돈 많이 벌었다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못 봤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매출이 늘었고 먹고살 수 있게 됐다는 사람도 손에 꼽습니다. 월세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주면 그 정도로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투잡이나 N잡을 하면서도 책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책방들을 열고, 또 닫습니다. 이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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