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보다 후각이 예민하다고 한다. 나 역시 민감한 편이다. 냄새로 사람과 장소와 사건을 기억할 정도쯤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유별나게 구는 건 아니다. 향기도 악취도 체취도 그저 잘 '느낄' 뿐. 그리고 그 느낌을 오래, 오래 간직한다.
예민한 후각은 다소 유전적인 측면이 있다. 어릴적 우리집에선 '냄새'는 금지였다. 집에서 생선은 물론이고 고기를 구워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외할머니댁에서 삼치구이를 처음 먹었을때의 충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다니! 한 때 친정엔 부엌 후드를 자동감지(?)로 24시간 켜놓았었다. 물론 공청기도 돌아가고 말이다. 가족이 모여 마루에 있다가 누가 몰래 방귀라도 뀌면 즉각 후드와 공청기가 작동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남편의 투자와 사업이 실패하고 신도시의 아파트에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있는 시골로 이사를 해야 했는데,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집의 냄새였다. 상가 건물의 1층을 살림집으로 개조한, 3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묵은내와 길건너 강변에서 침투하는 습기가 만들어낸 곰팡내,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늘 서늘하고 어두운 냄새가 어우러진.. 싫은 냄새가 났다. 남편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곧 익숙해졌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친정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갔던 어느 날, 엄마가 현관에서부터 코를 감싸쥐고, '너네가 들어오니까 곰팡이 냄새가 나' 라고 했던 것이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몇 년이 지나 그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이 송강호 가족에게서 난다고 말하던 '냄새'가 바로 그거였다. 반지하의 냄새, 햇볕을 보지 못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냄새, 가난의...냄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는 햇볕에 바짝 말린 이불에서 나는 냄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쭉 살았지만, 어릴땐 아파트 베란다 창틀에 이불을 널어놓아도 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다. 엄마는 하루종일 창문을 활짝 열고 목화솜 이불 속통을 팡팡 쳐 햇볕에 말리고, 이불을 감쌌던 하얀 명주천(이불호청)을 빨아 빳빳하게 풀을 먹였다.
이불이 워낙에 크고 무거워 안방 바닥에 펼쳐놓고 작업을 해야 했다. 몸에 닿는 안쪽은 흰 명주천, 윗쪽은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온 양단 한복치마를 뜯어 만든 사각 천을 올려 꿰매어 주었다. 그날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잤다. 사각사각 촉감도 좋았지만 따스하고 포근한 그 햇볕냄새란! 어떤 고급 향수로도 흉내낼 수 없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우리집 막내, 고양이 가을이에게서 딱 그 냄새가 난다. 따끈따끈 잘 구워진 햇볕냄새말이다. 그 털 속에 코를 박고 킁킁 부비부비하면 얼마나 행복하게요.
외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4년간 치매를 앓으셨고, 홀로 사셨는데 환청과 환각 증세가 심해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를 뵈러 분당의 요양원으로 갔을때였다. 삼촌이 그랬다. 외할머니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화장품 파우치였다고. 당신은 늘 몸에서 노인냄새가 날까 걱정하신다 전해들었어서, 명절땐 항상 향기로운 바디용품을 선물해드리곤 했다.
그렇게 본인을 잘 가꾸던 그 모습만이 기억에 있다가... 그날 면회가 끝나고 할머니를 휠체어에서 침대로 안아 옮겼을 때, 지린내를 맡았다. 너무나 슬펐다. 다행히 삼촌은 외할머니 빈소에 꽃을 많이 놓았다.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국화꽃 향기가 넘실넘실 타고 흘렀다. 다행이다. 모두가 꽃향기를 맡았고, 당신의 마지막을 그리 기억할테니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지은지 20년이 넘은데다, 수리한 적 없이 여러 사람이 거쳐가 궂은날이 되면 쿰쿰한 묵은내가 진동한다. 아마도 내게 그 냄새가 배 있겠지..? 하지만 어쩔수 없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인다. 아직도 네이버 쇼핑 장바구니에 남아있는 75ml 에 30만원이 넘는 향수를 사서 뿌린다고 감춰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그래도 꿈은 꿔본다. 죽으면 화장해서 내 집 앞뜰 라일락 나무 밑에 뿌려지고 싶다고. 어느 4월 꽃이 만개한 계절에, 바람불면 코끝을 간지르는 그 달달한 향기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