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unter

우리가 어떻게 만났지.

by 스체나 scena

드라마틱한 공간.

공간이 드라마틱한 게 무엇인가 말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공간 없이 존재가능한 것이 있기나 할까.

하다못해 비행기도 새들도 달과 별도... 그렇다면 공간은 사실 디폴트값이고, 여기서 '극적'인 소위 '드라마틱함'이 추가가 된 것이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드라마틱’ 함을 운운하는 것이냐면...


적어도 나에게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뻔한 거 아니고 다음의 1분, 혹은 다음의 장면, 다음의 시즌 등 '예측불가한 그 공간을 상상하는 것'.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발을 딛고 있는 공간들이 예측 불가능하다면 아마 매 순간 심장을 부여잡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임의로, 일부러, 애써, 괜히, 굳이

‘드라마틱한 공간’인 ‘무대’로 향한다.

나는 언제부터 드라마틱한 공간을 좋아했나 생각해 보니 아득히 멀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다.다행인지 우리 집에는 개인 컴퓨터가 흔하지도 않았을 때부터집에 컴퓨터가 있었다. 내가 아주 어린아이였던 때부터.

아주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한 낯선 남자 어른이 집에 오셔서 아빠 방에서 컴퓨터에 무언가를 설치하고 가셨고, 알고 보니 증권사에서 개인 컴퓨터에서 주식을 할 수 있게 설치해 주는 프로그램 같은 게 있던 거 같다. 즉,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전화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일반통화가 아닌 부가서비스 통화 같은 1분에 아마 몇천 원씩 되는 그런 전화를 사실상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은밀한 사치를 부릴 수 있었다.


예전에는 바비, 쥬쥬, 미미 같은 나무젓가락보다 조금 더 긴 길이의 이쁜 사람 인형들을 많이 갖고 놀았었다. 요즘에도 있지만 그때는 더더욱이. 당연히 나도 그녀들을 참 좋아했고, 집에 참 많았고, 그 이쁜 인형들을 꾸며주고 놀아주고 하는 것을 넘어 그녀들의 방을 꾸며주는 _지금으로 보면 콘텐츠_가 있었다.

바로. ‘쥬쥬의 방 꾸미기’ 같은 곳에 전화를 걸면 지금의 고객센터 연결과 같이 1번 이쁜 방 꾸미기, 2번 공부방, 3번 응접실 등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고 ‘식탁보를 어떻게 해라, 커튼 또는 소파를 어떻게 해라’ 그렇게 하나씩 친절하게 코치해 주는 음성 서비스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때부터였을까.... 매일 같이 몰래 그 비싼 부가서비스에 전화를 거는 게 하나의 루틴이었다.


그렇게 매일 학교가 끝나면 나의 방을 꾸미고 관찰하며 ‘공간’을 향한 상상이 발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공간이 좋았다.

집 꾸미기가 좋았고, 발길이 닿는 곳, 눈길이 가는 곳이라면 꾸미는 것 이전에 정리하기 시작했고 말끔해지는 그 순간이 좋았으며, 그 공간들이 나로 인해 좀 더 감각적이 길 바랬다. 그렇게 어느새 미술을 전공으로 삼고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부모님의 지지와 배경이 있다. 예술을 사랑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시지만 할아버지의 반대로 물리학 전공을 하신 아빠와 어려서부터 합창단, 무용단 생활을 하신 엄마.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예술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집에서 자랐다. 이런 탓에 나는 감사하게도 적극적인 지지와 사실은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예술이었다.

언제였을까, 고등학교 무용 시간은 사실상 체육과 다를바가 없었는데 비가 와서였는지, 시험 직후였었나 선생님은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 영상을 틀어주셨다. 그게 정확히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장면은 무대 양옆에 늘어선 아주 두꺼운 새 빨간색의 벨벳 커튼이었다.


아름다웠다.

우아했고 고상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몇 안 남은 무언가이다.

바로 그때, 무대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나의 무의식에 그 장면이 뇌리에 박혔을 뿐이었다.

어쩌면 무대보다 더 나를 설레이게 하는 레드벨벳커튼.


여전히 공간을 좋아했기에 인테리어 디자인, 공간디자인, 무대디자인 이런 것들을 막연히 꿈꾸며 아그리파, 줄리앙, 세네카 등 일면식도 없고 누군지도 몰랐던 그들의 두상 석고 수채화를 매일매일 그렸다.


미술학원이끝나고 밤 11시부터 새벽 3-4시까지 독서실에서 수능 공부를 하는 전형적인 예체능계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가 프라하를 가게 될지, 시노그래피라는 것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는채 막연히 마주한 입시를 치열하게 해내고 있었다.


photo/Denis Grinishkin / Moskva News Ag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