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모든 아이들이 엄마를 따르고 껌딱지가 될 때, 나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를 엄청 좋아하고 따랐던 것이다. 아빠 없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
나에게는 4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딸"을 선호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내가 어릴 때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다.
그 시절 첫째 딸로 태어난 나와 둘째로 태어난 남동생.
친척 어른 누구를 만나든 나의 남동생을 예뻐했고 친할머니 외할머니도 역시였다.
내가 느끼기에 엄마도 나보다 남동생을 더 예뻐하는 것 같았고 나는 어린 마음에 질투를 느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 예뻐해 주는 아빠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기억이 나는 5살부터 나는 늘 아빠를 기다렸고 아빠와 함께였다.
아빠는 늘 내 편이 되어주었고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다정다감했다.
아빠는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셔서 거실에서 맨손체조를 하시고 샤워를 하셨다.
이후 아침식사를 하시곤 6시가 되기 10분 전쯤 출근을 하셨다.
나는 잠이 귀한 시기인 고등학교 다닐 때도 새벽잠을 포기하고 아빠와 수다를 떨기 위해 새벽 5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식탁에 앉았다.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털어놓는 게 나의 큰 낙이였고 아빠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은 든든한 아빠, 다정한 아빠,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아빠, 애인 같은 아빠를 두루 경험하며 보냈다.
그리고 내가 20대가 되고 마흔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아빠와 사이가 좋다.
아마 20살인지 21살인지 한가로운 주말, 집에서 내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아빠가 높은 구두 하나 사줄게. 우리 딸 맨날 운동화만 신고 다니네"
"엥? 나 구두 불편해서 싫은데?"
"귀걸이 사주려는데 귀 안 뚫었어?"
"아프잖아 싫어!"
우리 아빠는 20대가 된 나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었던지, 바지에 운동화를 즐기는 나에게 다른 스타일을 제안하곤 했다.
꾸미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귀걸이를 사주겠다며 주얼리샵에 함께 구경도 가 보았다.
(영 꾸미는 것에 관심과 취미가 없던 나는 화장을 35살 넘어서 처음 했다. 그 흔한 립스틱도 35살에 처음 사서 바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은 주말에 집에서 책 읽고 음악 듣는 게 취미인 전형적인 집순이인 겁 많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외여행 안 가볼래? 다른 나라도 나가보고 그래야지."
"언제? 아빠랑 엄마랑 같이?"
"아니, 너 친구들이랑 여행가던지 아님 혼자 가보던가"
그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생각해보았다. 여권도 없던 나에게 해외여행의 불씨를 켜준 아빠.
18년 전이라 여행사가 많던 시기도 아니었고 해외여행이 유행하기 전이였다. 핸드폰으로 여행정보를 찾는 시기는 더욱 아니었다.
누구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빨랐고 집에 있는 데스크톱을 이용해 정보를 알아보거나, 아님 pc방에 가서 여행정보를 찾아보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 덕분에 친구 중에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연경이에게 연락을 해 함께 방학 동안 여행을 제안하고 여러 도시를 경험하며 수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겁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집에서 혼자 책 읽고 라디오 듣는 나에게 세상 밖의 재미까지 알게 해 준 우리 아빠.
내가 스스로 도전해보지 못했을 여러 가지 것들을 해 볼 수 있게 아빠는 이끌어 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아빠가 제안한 것이기에 '한 번 해볼까?' 하며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의 시기에 이것저것 경험해 본 것들이 다 추억이 되고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기에 이렇게 글로 쓸 수도 있는 것 같다.
불혹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서 생각해보니 타고난 나의 성향을 바꿔주는데 큰 공을 한 사람이 아빠인 듯하다.
21살 긴 미국 자유여행을 하면서 "도전"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과 "세상은 정말 넓구나"를 몸소 느끼며 마음속에 새기고 돌아왔다.
그 여행이 내 삶의 변화를 일으켰고 용기와 도전을 무장하여 20대에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곁에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내 경우에는 아빠였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친구일 수도 애인일 수도 언니일 수도 선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되었던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고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걸 토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나의 곁에 어떤 사람이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만족도가 올라갈 수도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지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인생의 컨텀 점프도 가능해진다.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는 내 인생에서 든든하게 이끌어주는 멘토가 되어주고.
아빠의 인생에도 내가 있어서 많이 행복하고 힘이 되고 더 충만함을 느꼈을까?
철이 들어가는 나이인가 보다.
더 늦지 않게 소중한 사람과 더욱 자주 안부를 전하고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도록 해야겠다.
순간의 행복을 자주 맛보며 사는 것이 제일 아니던가.
엄마도 내가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아빠만큼이나 나와 가까워졌다. 특히 결혼하고 출산을 한 후에는 더욱더.
여자는 여자의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시집가야 철든다고 했나?
아무튼.
당신의 삶에는 어떤 사람이 함께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