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은 Jun 28. 2022

두 번째 엄마 차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다니던 학교의 스쿨버스는  우리 집까지 오지를 않았다.

그야 너무 멀어서였고 멀어도 학생이 많으면 당연지사 왔을 터인데 우리 동네에서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나 혼자였다.

버스를 타고는 한 시간 이상 가야 하고 그렇다면 나는 할머니가 일어나는 첫새벽에 눈을 떠야 하는 계산이 나왔다. 첫새벽에 잠들기는 쉬워도 잠 깨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고심 끝에 알아보고 부탁을 해서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있는 공부만  잘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봉고에 나도 끼워주었다. 그 친구들은 머리도 안 감고 차에 탑승을 했지만 손에 책은 들고 있었다. 그 틈에 끼여 앉아 머리 감은 나는 학교 도착까지 꿀잠을 잤다.

아, 그렇다고 내가 다는 여고가 공부를 아주 못하는 학교는 아니었고 말하자면 공부도 중간 정도로 하면서 노는 것도 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공부만을 열심히 하는 학교가 아닌 건 분명했다.

나는 학력고사 폐지 첫해의 수혜자였는데 내신점수로 고등학교 당락이 결정되던 때였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나고 2학년 가을 즈음에 엄마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운전면허시험을 친다고 했다. 집에는 문제집이 있었고 엄마는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다.

나는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엄마 말고도 신경 쓸게 무지 많은 열여덟의 나이였다.


"오늘은 학교 마치고 봉고차 타지 말고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어라"

"왜?"

"있으라면 있으라"


나는 영문도 모르고 정규수업이 마치자 교문 앞에 서 있었다.

흰색 자동차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엄마가 내렸다.


"얼른 타라"

"엄마???"


엄마는 나를 위해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다고 했다. 내년이면 고3이 되고 그럼 봉고보다는 엄마가 픽업을 해주는 게 훨씬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나는 예체능부라 정규수업 마치면 자유였다. 매일 연습과 레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내 나이 열여덟에 엄마의 첫차가 생겼다.

하얀색의 준중형 세단 '스펙트라'

엄마의 스펙트라로 인해 나는 새벽마다 잠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었다.

봉고를 타지 않아도 되는 나는 본격적으로 새벽잠을 껴안을 수 있었다

문제는 마칠 때였는데, 엄마가 데리러 오게 되니 땡땡이가 불가능 해졌다.

새벽의 잠시 부리는 여유와 하교 후 나의 자유가 맞바꾼 터라 심히 고민을 했다.




그때 시작한 운전의 경력이 20년이 넘어가고 있는 우리 엄마다.     

엄마의 첫 차는 나의 첫차가 되었고 아빠는 조금 더 큰 차를 엄마에게 선물했다.     

그러 집의 가계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차도 사라졌다.     

엄마의 차를 내가 사주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50% 지분과 마음이 들어간 엄마의 첫차 소나타.     

매달 할부금이 부담스럽지 않게 더 열심히 일 한 원동력이 되었다.     

3년이 길게 느껴졌으나 훨씬 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된 우리의 차. 그 후로 9년을 더 탔으니 도합 12년을 탄 엄마의 소나타.               

엄마의 두 번째 차를 선물하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가 된 지 3년이 된 어느 날.               

"장모님 차 바꿔 드릴까?"               

신랑이 내뱉은 말을 날름 받아 삼켰다.     

우리 부부가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친정엄마의 공이 아주 크다.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우리 집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오면 나는 여유를 약간 부리며 출근이라는 것을 준비할 수가 있다. 아이를 키워보니 돈 버는 것이 쉽게 느껴지는 건 나뿐이 아니라는 걸 아이 키우는 여러 엄마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일단 앞뒤 숫자 생각은 접어두고 계약금 십만 원을 들고 자동차 영업소로 갔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 강한 예감도 한 몫했다.     

결혼하고 살아보니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음과      

일을 저지르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고민을 미뤄두었다.     

그렇게 엄마의 두 번째 차는 우리의 지분이 100%가 되었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설렜다. 내 차를 새로 살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딸에서 엄마가 되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도 철이 들고 있는 거겠지.

그 시절 엄마의 사랑으로 커온 내가 이제는 무한 사랑으로 두 아이를 잘 키워내며 보답할 차례다.


엄마 늘 고맙고 감사해요.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해요.

사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귀여운 것에 대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