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의 밤은 길다. 불 끄기가 무서워 불 켜고 있으니 잠이 오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는데 중심을 잡다가 발목이 부러져 병원신세다.
오늘로 꼬박 열흘째인데 익숙해지지 않는 잠자리 환경이다.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기 전에 휴대전화로 우연히 내 지난 십 년도 훨씬 전의 과거에 접속되었다.
인생 무어냐 물으면 사랑이라던 말을 책에서 자주 본듯하다. 그러나 와닿지 않았던 삶을 살고 있었다.
아니다 아니다 해도 나도 바쁜 생활에 추억여행을 할 여유는 없었나 보다.
나의 20대 기억 속을 들여다보니 늘 사랑이 있었노라 알게 되었다.
어린날의 사랑, 설렘, 짧은 사랑, 깊은 사랑, 장난스러운 사랑, 후회가 남은 사랑, 추억 가득한 사랑,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잊고 살고 있었지만 들추어보니 많은 추억 속에 사랑이 함께 했고 나는 성장했다.
안 그래도 최근에 본 드라마들이 20대의 순수하고 맑은 사랑을 이야기하던데, 괜스레 나의 이십 대는 어떠했는지 살짝 기억하려 애써보기도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추억을 꺼내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는데
일할수 없는 환경에 처해 시간이 많아지니 이런 글도 쓰고 있다.
얼마 전 홍현희 씨가 방송에서 과거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남편이 기분 나빠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지금의 홍현희와 함께 하는 사람이 위너라고.
듣고 보니 그러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고 현재 내 옆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최고인 것이다.
나도 사랑 속에서 웃고 울고 상처받고 상처 주고 성장하다 보니 내 인연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내 남편은 정말 멋진 남자다.
사실 처음 볼 때 반한 건 아니었고, 두 번째는 좀 설레었고, 세 번째쯤엔 알았다.
너구나. 내 짝.
결혼하겠구나 너랑. 아니 결혼할 거다 너랑. 이렇게 말이다.
지금의 사랑은 20대의 감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음.. 사랑보다 깊고 넓고 높은 것들이 함께 존재하는 듯하다.
떨림과 셀렘으로만 가득했던 그 사랑을 함께 굴리고 굴려 커지고 단단해진 우리가 되었다.
올해 결혼 한지 9년 차다. 그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한여름에 속절없이 녹아버린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다.
그 시간 동안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상처를 주고받고 미워하고 웃고 화를 내고 믿어주고.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며 느끼게 하며 보낸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나와 너의 미소가 있었고
각자 혹은 함께하는 고민이 있었고
기다림이 있었다.
다시 일어섬이 있었다.
또다시 흘러가게 될 지금의 이 순간도 앞선 미래의 시간들도
나의 마흔아홉에 꺼내보게 되겠지.
그때는 근사한 한 곳의 리조트에 열흘 정도 머물며 깨끗한 하늘과 바다와 바람과 다양한 언어의 소리와 함께 하길 꿈꿔본다.
만족하고 충분하다는 기분을 만끽하며
Cheers!
물론 너와 함께, 너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