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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기 Oct 29. 2020

지나간 나를 위로하는 쉬운 방법

괜찮아, 그때도 지금도

지나가버린 나에게


누구나 감정의 쓰레기통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일기장을 활용한다. 묵혀왔던 감정을 흰 종이에 쏟아놓으면 어느새 차분해진다. 촤르륵 마음이 가라앉으며 나도 모르게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우연히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차마 남에게 표현 못할 것을 어딘가에 남기는 우리들. 여러가지 감정의 부스러기가 남아있는 당신의 일기, 메모, 사진, 낙서 기타 등등.


찰칵. 방금 찍은 셀카는 오늘 하루를 보낸 우리의 얼굴을 담은 기록이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좋은 하루였나요, 힘든 하루였나요.


어느덧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된다.


그대의 조각이 담겨있는 수많은 기록들.




직업병 때문일까 뭐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문득 깨달았다. 난임치료라는 우울한 시기를 지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위로라는 것을.


일기쓰기. 어지러운 감정을 정리하고 지금의 상황을, 모습을 기억하기 위한 행위.


그런데 그 뒤는?


감정의 찌꺼기들. 그 틈바구니 속 과거의 내 모습이 종이 위에 나뒹굴고 있다. 그동안 지난날의 나를 너무 방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지나간 일기를 다시 읽어보며 스스로에게 코멘트를 쓰고 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매일매일 쓴 일기에 한 마디씩 달아주듯.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심리치료사인 루이스 헤이의 유고작 ‘미러’에는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과거의 나’의 집약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과거의 나를 사랑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함정에 빠진다. 과거의 나처럼 용서하기 힘든 존재가 없다. 용서가 힘드니 사랑도 불가능하다. 내가 그때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공부를 왜 더 안했을까? 왜 그말을 뱉었을까? 왜 그말을 참았을까? 나는 왜 그랬을까?


용서할 수 없어. 과거의 나 새끼.


그래도 루이스 헤이는 말한다. 용서하라고. 거울을 비춰보며 지나간 날, 지나간 나를 용서하라고 말이다. 거울 속 보이는 과거의 나를 용서하며 스스로가 만든 미움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라고.


지나간 나를 용서하라는 그의 조언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셀카찍기도 창피해하는 나에게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을 걸라니. 그래서 지금 나는 과거의 나와 소통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과거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힘든 이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상황을 기록한다. (일기, 사진 혹은 셀카, 메모, 나에게 카톡하기 등등)

2. 하루 뒤든, 일 년 후든 지나간 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3.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를 해준다.




즉,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글을 통해 말을 거는 것이다. 혹시 지난날의 내가 바보같은 선택을 했거나 후회되는 일을 했어도 잠잠하게 받아주기로. 나는 이 방법을 생각날 때마다 쓰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따위의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시간을 돌리고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안다.


그저 지나간 과거의 자신을 위로해주자. 토닥토닥. 잘한 것이 있으면 칭찬해주고, 잘못한 것이 있어도 괜찮다고 앞으로 잘하자고 응원해주자. 그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를 남기며. 






난임. 말만 들어도 한숨이 나오고 슬픈 단어. 우울함으로 점철된 이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는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이 시간이 아닐까. 지금부터 펼쳐질 글은 2020년을 기록한 에세이. 나의 난임일기다. 내가 방금 말한 방법을 통해서 과거의 나 자신에게 작은 한마디(코멘트)를 달아주려 한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때도 지금도.

지금, 나는 지나간 일기장을 펼쳐보고 있다. 과거의 내 조각들 하나하나에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를 건네며 끝을 맺고 있다. 퍼즐을 맞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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