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전의 이야기
나의 아가는 저 우주 어딘가 쯤을 표류하고 있을까?
우리가 만나게 될 수 있을까?
들어가기 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를 강타했던 2012년 가을.
나는 우연히 땡스기빙 데이(Thanksgiving Day) 파티에 초대받았다. 그곳에서 Paul이라는 남자를 처음 만났다. 그는 직접 만든 펌킨 파이를 들고 왔다.
그와 친구가 되었고, 어느덧 남자친구로 업그레이드 됐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던 그 남자.
"Will you marry me?"
I said, "Yes."
뻔한 러브 스토리.
1년 반의 뻔한 데이트. 그렇게 우리는 뻔한 결혼을 했다. 뻔한 데이트, 뻔한 결혼식.
그러나 결혼 생활은 뻔하지 않았다. 남들 다 생기는 아이가 우리에겐 6년 반이 넘도록 생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고, Paul은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뿐이다.
그냥, 그뿐이다.
대학 동기들 중 가장 빨리 한 결혼식. 남자와의 동거.
인생 대충대충 산 것 같아도 나름 나만의 계획이 있었다. 계획대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미주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완벽한 타인과 사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그것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Paul은 화성에서 온 남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에서 온 남자였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권태기는 2년마다 찾아온다는데, 데이트 기간을 2년 꽉 채우지 않고 결혼한 것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결혼 첫 1년이 지나갔다. 달콤해야 할 신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향수병과 우울증 증세가 번갈아가며 찾아왔다. 애가 들어설 여유 따위 없었다.
아마 그 시절에 아이가 들어섰으면 10번쯤은 유산하지 않았을까.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덧 결혼 2년 차. 결혼생활에 평화가 찾아왔을 무렵 정말로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시간은 이렇게 저렇게 또다시 2년이 흘러갔고 결혼 4년 차. 돌아보니 내 인생 계획은 와르르 무너져있었다. 지금쯤 난 둘째 아이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야 했는데.
엉망진창.
모래성같이 사라진 나의 가족계획.
시간은 쏜살같아서 어느덧 결혼 6년 차. 그 와중 커리어는 안정되어 갔다. 중간에 주간지로 직장을 옮겨 편집부장 타이틀도 달았고, 아이비리그에서 주관하는 코딩 코스에도 합격해 무사히 졸업했다. 결혼 생활은 전쟁과 평화가 반복적으로,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2020년. 코로나 창궐.
우리는 재택근무 덕분에 패밀리 타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많은 대화를 나눴다. 6년 차 부부는 수많은 대화 끝에 부모가 되기 위한 출발선에 겨우겨우 섰다.
어? 근데 내가 이제 곧 노산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난임 치료.
미국에서 진행하는 난임 치료는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시스템과 많이 달랐다. 나와 나의 Paul이 다른 것만큼이나.
앞으로 끄적거릴 필라델피아 난임 일기.
그날의 상황, 그날의 감정. 열심히 기록하고 싶다.
2012년 미국이라는 나라에 처음오고 참 치열하게 살아왔네. 어느덧 결혼도 했고, 커리어도 많이 성장했어. 그동안 수고했구나.
네가 원하는 아가 천사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행복하자. 쓰담쓰담.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