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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기 Sep 15. 2020

패밀리 트리 (Family Tree)

2020년 8월 24일 월요일

필라델피아 날씨: 약간 안개, 더움.

내 마음의 날씨: 잠시 흐렸다가 맑아짐.




오늘은 바쁜 날이다.


아침 8시에 병원 예약이 있었고, 오후에는 유전자 테스트 결과 미팅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병원 오피스에서는 간단한 검사만 마쳤다. 15분 만에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끝냈다.


저번에 내가 생리혈이 있는 상태에서 초음파를 보는 것에 대해 강력한 불편함을 호소해서 그런지 초음파를 보는 의사가 들어와서 지난번 방문 후에 무슨 문제가 없었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오후에 나온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현재 오른쪽 난소 안에 있는 난자 하나가 14.6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단위는 0.146mm인 듯. 18-21 정도로 크는 것이 좋은 상태라고 함.)


다만 자궁 내벽이 얇은 편이긴 한데 아직 날짜도 더 남았고 두꺼워질 기회가 많이 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한다. 피검사 결과도 다 상황이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12시 반.


대망의 유전자 테스트 결과가 남았다.


지난 8월 6일. Paul과 나는 우리의 침을 모으고 모아 한 Lab(실험실)에 보냈다. 우리의 유전적 질병 조사와 그것들이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영향이 갈 것인지를 미리 검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에서는 흔히 시행되는 테스트다.


결과를 듣는 것은 떨리기만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뜻에서 이런 테스트를 감행한 우리였다.




실험실에서는 우리의 DNA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542개의 문제가 될 만한 질병을 예측했다.


*'문제가 될 만한 질병'의 정의: 우리의 DNA에는 다양한 정보가 있다. 쌍꺼풀의 유무부터 암세포의 유무까지. 우리가 시행한 테스트에서는 말 그대로 '질병'의 범위 안에서만 조사가 이뤄졌다. 예를 들어 '색맹'같은 경우는 이 '질병'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지만 '맹인이 될 시각 장애'는 '질병'의 범주에 들어간다. 한마디로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될만한 질병들만 이 검사에 포함된다.


다행히 결과는 매우 좋았다!


폴이 갖고 있는 유전적 질병이 한 가지, 내가 갖고 있는 유전적 질병이 한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폴이 갖고 있는 것도 열성인자, 내가 갖고 있는 것도 열성인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그 질병을 모르고 살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의 열성인자가 우리의 아이에게 전수될 확률이 관건인데, 다행히 내가 갖고 있는 인자와 폴이 갖고 있는 인자가 서로 연결될 확률도 1% 이하였다.




이 테스트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패밀리 트리(Family Tree)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검사했던 부분이었다.


우리의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 사촌, 이종사촌까지. 그들이 암이나 희귀병이 있었는지까지의 여부를 인터뷰했고 그것이 우리 아이에게 영향이 어떻게 갈 것인지 세세하게 조사해줬다.


나는 정보라는 것은 항상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테스트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안젤리나 졸리도 이런 유전자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유방암 발병 확률이 100%라는 것을 발견했고 30대에 미리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유전자 테스트는 과거 미국에서는 아무나 받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도 흔하게 받는 분위기다. 

(검사비는 $500, 한화 5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이 실험 결과에 따라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폴같은 경우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것은 결국은 확률에 불과한 것이니 아이를 낳는 것을 감행하자는 주의였고, 나는 말을 아꼈다. 우선 결과를 보고 그다음에 이 난임 치료를 계속할지 안 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였다.


어쨌든 이런 결론이 나와서 난임 치료를 멈추지 않아도 되어서 기뻤다.


오늘 큰일을 치르고 난 기분에 한시름 놓았다.





이런 검사를 받다니. 사실 병원에서 해보라고 추천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듯하다. 
별생각 없이 추천해서 한 테스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도 참 용감한 결정이었네.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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