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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기 Sep 16. 2020

배에 맞는 주사

2020년 8월 27일 목요일


필라델피아 날씨: 약간 습하고 더움

내 마음의 날씨: 폭풍전야




사실 나는 병원에 가면 영어가 잘 들리질 않는다. 긴장해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은 설명을 많이 들어야 하는 날인데.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아침 7:45부터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항상 친근했던 간호사 로라가 아닌 새로운 간호사분이 와서 약간 긴장했다. 오늘은 아마 로라가 쉬는 날인 것 같다.


새로운 간호사의 이름은 티나였다. 티나 역시 친절한 간호사였고 전혀 아프지 않게 내 피를 뽑아줬다. 전체적으로 이 오피스에 있는 의료진분들이 좋은 사람들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검사를 다 마치고 옆 쪽에 있는 미팅룸 같은 곳에 들어가서 제일 높은 간호사처럼 보이는 분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다.


오늘 오후에 피검사 결과가 나온다. LH라는 수치가 있는데, 이 수치가 올라갔는지 아닌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결과가 달랐다. (참고로 미국에선 이 ‘올라간다’라는 단어를 Surging 이라고 썼는데 나에겐 신선한 단어였다.) 엄청나게 긴 설명이었지만 한마디로 이것이었다 : 


이 수치가 지난번과 비교해 올라갔다 -> 내일 바로 이 오피스로 들어와서 IUI(인공수정)을 하자.


이 수치가 지난번과 비교했는데 그대로다 -> 오늘 밤에 트리거 샷을 맞고 토요일 아침에 커다란 오피스로 가서 IUI(인공수정)을 진행하자.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정말 힘든 한주였다. 집에 돌아오니 진이 빠진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시간이 도저히 가질 않는다.


드디어 오후 2시 반쯤 연락을 받았다.


결과는 수치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 트리거 샷을 맞고 토요일 아침에 인공수정(IUI)을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 초음파 검사 결과 : 오른쪽 난소에 있는 난자가 20.8로 컸고(보통 18-21 사이가 정상.) 상태도 좋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왼쪽 난자에서는 큰 애들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페마라를 써서 한쪽만 큰 건가?)


병원에서 지정해준 약국에 가서 트리거 샷 주사를 타 왔다. 이 주사가 성장한 난자를 난소에서 잘 나오게 도와줄 것이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선단공포증(모서리공포증)이 있는데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 할까. 그렇다. 나는 사실 주사가 공포스럽다.


스스로 주사를 놓는 것은 꿈도 못 꿨고, Paul에게 부탁하는 것도 사실 불안했다.


그런데 다행히 최근에 친해진 친구 중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있어 그 친구가 고맙게도 자신의 집으로 오면 직접 주사를 놔주겠다고 말해서 그곳으로 가게 됐다.




저녁 8시 30분. 그 친구의 집으로 가서 주사를 맞고 1시간가량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긴장했고, 주사를 맞은 뒤에도 정신이 없었다.


주사를 맞고 긴장이 확 풀렸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잠이 들었다. 중간에 살짝살짝 잠이 깼는데 계속 손을 잡아주는 Paul이 옆에 있어서 마음이 안정됐다.


현재 이 일기를 쓰는 시간, 새벽 1시 52분.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이 오질 않는다.


이 트리거 샷으로 인해 나의 호르몬 수치는 급격하게 상승할 테지. 내일, 아니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임신은 정말 힘든 거다.


도대체 어떤 아가가 나에게 오려고 하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병원에서 떠들던 간호사의 금발이 기억난다. 정말 말이 많았다.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 
배에 주사를 맞는 것은 끔찍하다. 잘 견뎠어, 과거의 나. 다시한번 쓰담쓰담.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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