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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자기 Sep 15. 2020

오열

2020년 8월 25일 화요일

오후 1시 08분. 갑자기 설거지를 하다 말고 오열했다. 그냥 지금 이 눈물 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나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나는 설거지를 할 때 크게 노래를 듣는다. 오늘은 싹쓰리의 노래를 틀어놓았다.


지난여름 바닷가.


너와 나 단둘이.


별이 되었다고.




어? 내가 왜 울고 있지? 싶었다 처음엔.


그런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호르몬의 바람은 감정의 폭풍을 몰고 왔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지?


엉엉 나도 모르게 오열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34살.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꿈꿔왔던 엄마가 된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이 필라델피아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결과에 사로잡혔다.


그 상념의 파도가 우수죽순 쏟아져 나왔다.


아니, 파도라기 보단 댐이 폭발한 느낌이었다.


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와 신나는 이효리의 목소리. 

그 사이 틈바구니 어디쯤 숨어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음악이 끝나기까지 한 3분간 오열했던 것 같다.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


내 난포는 다행히 아직까진 잘 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년에 나는 내 아가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할까.


오고 있니.


진짜로 진짜 정말 저 우주 어디쯤에서 만들어지고 있나?


만나게 될까?


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너도 내 아가가 되고 싶니.




감정의 파도가 밀물과 썰물처럼 미친 듯이 왔다가 사라진다.


나같이 감정적인 사람이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나는 이렇게 내 아가를 기다리는데, 내 아가는 날 기다렸던 게 아니면 어떻게 하지?


내 아가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엄마를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하지?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폴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뭔가 창피하다. 아무리 호르몬 때문이라지만 이렇게 혼자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는 사실이 뭔가 쪽팔리는 거 같기도. 
그래도 잘했다 싶다. 울음을 참고 참아서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보단 한번 시원하게 울어버리는 게 나으니까.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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