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3일 월요일
필라델피아 날씨: 매우 맑고 후덥지근함
내 마음의 날씨: 덤덤한 구름 약간
힘내자. 이제 시작이다. 진짜.
오늘은 2주 전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난임 전문의와 줌(Zoom)을 통해서 온라인 미팅을 가졌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떨린다. 그래도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안정감이 들었다. 내가 익숙한 장소인 집에서 편한 옷을 입고 대화해서 그런 걸까.
현재 필라델피아는 코로나 때문에 전문 병원(난임과, 치과, 안과 등)의 오픈을 제재하고 있기에 온라인으로 미팅을 해야했다. 오늘 난임 전문의와의 미팅 전, 나는 받아할 검사를 다 받은 상태다. 물론 Paul도 검사를 다 마쳤다. 여성의 경우 난임 병원에 가면 기본적으로 이 3가지 검사를 받게 된다.
- 나팔관 조영술 (HSG, HysteroSalpingoGraphy)
- 난소기능검사 (AMH, Anti-Müllerian Hormone)
- 호르몬 혈액 검사 (수시로 하게 될 예정)
이 세가지만 검사하는데 무려 1500불(한화 155만원) 가량이 깨졌다. Paul의 회사 보험 베네핏이 7천 불까지 난임 치료를 지원해주지만 2천 불까지는 HSA를 통해 우리가 부담하기로 선택했다.
*HSA(Health Saving Account) : 미국의 건강 관련 저축 계좌. 의료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Free Tax 계좌로 세금을 지불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본격적인 난임치료는 시작도 안 했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미국 의료 보험 체계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모든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양호했다.
난소 나이는 20대 초반, 나팔관도 이렇게 잘 뚫려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상이었다.
문제는 내가 PCOS(polycystic ovary syndrome)라는 것이다. 한국말로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 사실 이 증후군은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도 갖고 계셨다. 아무래도 유전이 아닐까 싶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난소에 성숙하지 못한 난포들이 다량으로 생기는 증상. 가임기 여성에서 보이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배란일을 추측하기 힘든 다낭성 난소 증후군. 때문에 우리 부부에게는 정확한 계획 임신이 필요했다.
나와 Paul, 난임 전문 의사, 간호사가 참여한 온라인 미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의사는 우선 호르몬 체크를 위한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생리유도제 처방을 결정하기로 했다. 2주 후 예약을 잡았다. 이날 상태를 봐서 처방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7월 27일 월요일.
필라델피아 날씨: 너무 더움
내 마음의 날씨: 흐림
역시 미국은 모든지 느리다. 한국이었으면 하루 만에 다 끝났을 것을.
2주 간의 긴 기다림 끝에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러 집 근처인 윌로 그로브(Willow Grove)에 위치한 오피스에 아침 일찍부터 갔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피검사를 하는데 담당 간호사가 너무 친절했다. 약간 엄마 같은 느낌도 받았다. 난임 전문 병원은 아무래도 좀 우울한 느낌이 드는데, 이런 간호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게 행운 같이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은 로라였고, 주사 바늘을 무서워하는 날 위해 이런저런 위로를 건네주었다.
초음파 검사는 젊은 남자 의사가 진행했는데, 사실 약간 불편했다. 그래도 유쾌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걸어줘서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오후에 전화로 알려줬다. 모든 상황이 괜찮아서 생리 유도제를 처방해줬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생리 유도제를 처방받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자세한 검사를 거치지 않고 그냥 처방해줬던 것 같다. 미국이 약간 검사를 과다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무래도 의료계 소송이 손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모든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다. 이제 생리 유도제를 약국에서 받아와서 복용만 하면 된다.
감정을 읽기 힘든 일기 두편. 참 담담하게도 썼네. 그래, 이날의 나는 앞으로 닥칠 호르몬스터의 파도가 얼마나 클지 상상도 못했지... 어쨌든 미팅도 잘 했고, 병원도 잘 다녀왔군. 참 잘 했어요. 수고했어.
<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한마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