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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Sep 06. 2022

서른아홉도 무서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요즘 MZ세대로 태어났다면... 인스타에서 난다 긴다 하는 여행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정도로는 내밀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을...


 스물둘, 첫 해외여행이었던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6개 나라의 땅을 밟았다. 이십 대의 나는 철도 없고, 겁도 없고, 돈도 없었고, 없는 건 없는 대로 혼자 꿋꿋하게 참 잘 돌아다녔다. 틈만 나면 우리나라 밖으로 어떻게 나갈까 생각했고, 여행을 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죄다 다양하게 만났다.


여행 중에 만난 인연들 얘기도 하자면 한 바가지이지만 일례로 스물둘에 '유랑' 카페에서 만나 같이 유럽을 여행했던 00 오빠는 서른둘에 이직한 회사에서 10년 만에 다시 만나 회사 동료가 되었다.(어색했으나 안 어색한 척하며 재회함.) 이십 대 후반 제주도 여행 중 하에서 만났던 00 언니와 00 오빠는 어느새 부부가 되어 제주에 뿌리를 내렸고, 나의 가장 소중한 제주 인연이 되었다.(처음에 언니가 오빠를 만다고 했을 때, 반대표를 들었지만...) 이집트에서 만나 엄마의 장례식 운구까지 들어준 연이 된 이도 있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인 태국은 1년에 두세 번씩 오갔던 시절이 있다 보니 게하 사장님과도 오빠, 동생 하며 사업 구상을 같이 할 정도로 친해졌고, 한 때 태국 좀 오갔다 하는 배낭여행자들은 한 두 다리 건너 알 정도로, 별별 인연들이 나의 20대와 30대를 채웠었더랬다.

 

 여행 중 생긴 에피소드들도 참 많았다. 돌이켜보면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던 것도 같다. 여행을 많이 다닌 만큼 많은 에피소드가 생긴 건지, 내게 유독 에피소드가 많이 생기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첫 유럽여행 때는 남자 멤버들이 꾸물대는 바람에 영국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놓 적이 있고, 당시 레바논과 전쟁 중이었던 이스라엘에선 공항 보안 검색이 너무 강화된 바람에 검색을 받다가 터키 편 항공을 놓칠 뻔한 적이 있었다. 터키에선 여행사 직원이 항공권 세팅을 잘못해줘서 다음날로 항공이 미뤄진 사실을 공항에 가서야 알아 난감했던 적이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선 급 플랫폼 변경 후 비행기가 이륙한 바람에 놓치고 공항에서 노숙자 신세가 된 적도 있다. 미국을 경유해서 남미에 갈 땐, 이미 받아놨던 ESTA 비자에 문제가 생긴걸 비행기 탑승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어 미국까지 가는 내내 안절부절못한 적도 있다. 어렵게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샌프란시스코 여행 후, 남미에 들어갈 땐 연착으로 비행기를 놓쳐 또다시 안절부절못했다.  


항공과 관련된 사건들만 이 정도이고 체코에서는 환전 사기를, 필리핀에선 마사지 도중 지갑을 털렸고, 베트남에선 택시 트라이버한테 칼부림을 당한 적도 있다. 하하하(그저 웃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 사람, 참 많은 곳을 잘도 다녔네. myself 대단해~


 2019년 5월 멕시코와 10월 태국을 마지막으로 여행과는 멀어졌던 코로나 시대. 앓던 병처럼 1년에 두세 번은 꼭 해외를 나가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도, '남들 다 못 가니까...' 란 이유가 고마운 방패막이 되어줬었다. 그리고 몇 주 전에 3년 만에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3년 만의 여행이란 게 믿기지도 않고, 나 홀로 여행이다 보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도 여전히, 중간에 경유해야 하는데 비행기는 잘 갈아탈 수 있을까?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까지는 잘 갈 수 있겠지? 등등의 자잘한 걱정들이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물론 공항만큼 안전한 곳이 없고, 길을 잃어도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있을 테니 지금의 걱정이 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어떻게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믿음과 깡은 여행을 통해 길렀지만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나 홀로 여행자의 순간순간 사무치는 외로움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외로울 지경이다. 이십 대 때야 하에서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 어울지만 서른아홉에겐 그마저도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고 이제 안 가리던 낯마저도 가리게 되었다. 서른아홉, 미혼 여성의 나 홀로 여행은 편하고, 예전보다 좀 더 풍족하면서... 외롭다.

이십 대 때 쓴 일기 중에 '내가 여행을 계속해서 다닐 수 있는 건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보다 조금 더 큰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던 게 머리에 맴돈다. 다행히 아직 내겐 두려움보다 조금 더 큰 호기심이 남아 있어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만 걱정과 염려, 그리고 조금의 기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번 주 토요일, 떠난다. 발리로

재밌는 여행이 될지, 외로운 여행이 될지, 그저 그런 여행이 될지 모르겠지만

가서도 간간히 글을 써야겠다.



아, 서른아홉도 무서운 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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