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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Sep 21. 2022

초짜입니다만 발리에선 요가를

 우붓은 왠지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끌렸던 곳이었다. '발리'하면 가장 가보고 싶었던, 푸른 정글을 연상시키던 곳.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서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건강한 비건 음식을 먹고 요가를 하면서 몸과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곳. 우붓은 내게 싱그럽고 느긋한 여유를 선사해줄 것만 같았다.

'발리'에 온 이유는 딱 두 가지, 우붓에선 요가를 꾸따에선 서핑을 배워보고 싶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우거진 정글 숲을 배경으로 멋진 요가 자세를 취한 사진 한 장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위를 멋지게 누비고 있는 사진 한 장이면 발리 여행은 끝일 것만 같았다.


우붓에 도착한 첫날,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바로 앞에 유명한 '래디언틀리 얼라이브 요가'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데스크로 찾아가 초보자를 위한 수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오전 7시 반과 오후 5시에 시작하는 yin 요가를 추천해주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에너제틱한 빈야사, 아쉬탕가, 하타 요가가 양의 기운을 이용한 요가라면 yin요가는 음의 요소가 강한 정적이고 차분한 쉼의 요가라고 한다. 1회 90분간 진행되는 수업 비용은 만원 초반대로 한번 경험해보기에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수업 스케줄이 적힌 팸플릿을 받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우붓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요가반의 수업과 비교해보고 어느 곳으로 할지 결정할 참이었다.


 우붓에선 2박 3일간 머무는 일정이었지만 첫날과 마지막 날의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반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튿날 오전, 짬뿌한 릿지 트래킹을 마치고 너티 누리스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따만 사라스와띠 사원에 들렀다 숙소에 돌아오니 벌써 오후 5시, 여행자의 시간은 언제나 순삭이다. 래디언틀리에서 수업을 듣기엔 이미 늦은 시각. 요가반은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웹페이지에서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마침 5시 반에 시작되는 yin요가 수업이 있었다. 지도상으로 걸어서 15분 정도라고 나오니 바이크를 타면 5분 안쪽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전 내내 태양 아래서 산책을 하느라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난 뒤였지만 샤워할 시간조차 없어 간단히 옷만 갈아입고 그랩 바이크를 불렀다. 베트남 여행 때 바이크를 타고 별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어지간하면 동남아에서 바이크를 타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쉼과 여유를 찾기 위한 요가 수업으로 향하는 여정에 정작 여유 따위는 없다. 이런 게 바로 환상과 현실의 갭이랄까... ㅋㅋ



바이크 기사는 다행히 앳되고 선해 보였다. 바이크는 처음이라 헬맷을 좀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는 '굳이 헬멧을?' 하는 표정을 짓더니 안장에서 헬멧을 꺼내어 건넸다. 나는 헬맷을 꾹 눌러쓰고 외쳤다.


"암 뤠디!"


부르르르릉~하고 달리기 시작한 바이크가 금세 골목길로 들어서더니 1분도 채 되지 않아 멈춰 섰고 내 눈앞엔 요가반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뭐? 여기가 요가반이라고? 벌써 도착했다고? 오 마이 갓! 이렇게 가깝다고? 너 내가 헬멧 달라고 했을 때 엄청 웃겼겠네. 이 가까운 거리를 바이크로 간다고 한 것도, 헬맷을 달라고 한 것도... 하하하. 진짜 웃긴다. 어쨌든 데려다줬으니 고마워~"


호구도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 반, 그 호구를 자처한 게 나라는 어이없음 반. 기사와 나는 마주 보며 함께 웃었고 나는 그에게 바이크 비를 건네고는 입구로 들어섰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간판도 문도 몹시 작고 인기척도 없이 매우 조용했던 터라 여기가 정말 내가 봤던 그 요가반이 맞나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의심을 누른 채, 조금 더 걸어 들어가 보니 옹기종기 모여있는 신발들과 데스크 언니가 보였다. 여전히 내 생각보다는 매우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나 오늘 처음 수업 들으러 왔고 요가 초보자인데 지금 들을만한 수업이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그녀가 대답했다.


"응. 5시 반에 시작하는 명상 수업이 있어."

"명상? 수업 내내 명상만 하는 건 아니지?"

"90분 동안 계속 명상하는 수업이야."

"아... 그... 그래? 그럼 내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줄래?"


뒷걸음질을 치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분명히 웹상에서 확인하기로는 yin요가도 이 시간에 있었는데... 지금 이 시간에 수업을 못 들으면 내일 아침 7시 반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자신이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분명 여기가 요가반이 맞다면 내가 사진 속에서 본 그 커다란 스튜디오가 있을 것만 같아서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엇! 사진에서 본 것 같은 레스토랑이 보였고 계단을 따라 좀 더 내려가 보니 드디어 사진에서 봤던 요가반스러운 멋진 스튜디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랩 기사는 요가반 쪽문에 나를 내려줬던 거고 내가 문의를 했던 데스크는 명상 수업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였던 것이다. 메인 스튜디오에서 yin요가 수업이 있냐고 다시 물었더니 곧 5시 반에 시작될 거고 바로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의심을 버리지 못한 나는 재차 물었다.


"이거 수업 내내 명상하는 건 아니지?"


그녀는 잔돈과 티켓을 건네주며 웃는 얼굴로 명상 수업과는 다른 수업이라고 얘기해줬다.


"여기, 바로 보이는 스튜디오로 들어가면 되고 신발 벗고 용품들 챙겨서 매트에 앉아서 기다리면 돼."

"오케이 고마워."



드디어 발리, 우붓에서 요가 수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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