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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Sep 22. 2022

초짜입니다만 발리에선 요가를 2

 널찍한 스튜디오는 중고등학교 때 강당 수준으로 크고 천장고도 높았다.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는 앞쪽은 투명한 통유리로, 빼곡히 자란 풀과 나무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 그곳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동작은 잘 살필 수 있으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크게 띄지 않는 두 번째 열의 우측 기둥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GX를 꾸준히 한 결과 귀신같이 명당을 알아보는 잔재주가 생겼다. 소도구들을 챙겨 옆에 가지런히 두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앞뒤 사람들을 살펴보니 백 명은 족히 되는 듯했고 80% 이상이 웨스턴으로 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 중 나처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줄리아 로버츠를 꿈꿔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매트에 제각기 자리를 잡고 누워서 휴식을 취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맨 앞 정중앙 자리는 집주인인 냥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명상인지 수면인지 모를 것을 즐기는 언니의 차지였다. 내 우측 옆에선 이곳에서 꽤 오래 지낸 듯한 외국인 언니 두 명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언니들은 목소리 크기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중 한 명 언니가 발리 여정 이후 호주로 갈 것이고 거기서 가족들을 만날 거란, 굳이 몰라도 될 정보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몇몇 사람들과 반갑게 아는 체를 했고 그중 한 외국인 아저씨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그녀들의 수다에 합세했다. 한국 GX수업에서도 익숙히 봐온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어딜 가나 크게 다르지 않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아저씨는 발이 내 1.5배는 될 듯했지만 다행히 목소리는 그만큼 크지 않았고 곧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신을 paul이라고 소개한 선생님은 멋진 수염과 요가로 다져진 듯한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었다. 수업은 세 개의 세션으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세션이 제일 땀이 많이 나고 조금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두세 번째는 힘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paul의 설명에 따라 천천히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영어를 다 알아듣지 못해도 대충 눈치껏 앞과 옆 사람들의 포즈를 보면서 따라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요가 수업 때 많이 했던 다운 독, 코브라, 워리어, 테이블, 아기 자세들이 주였기 때문에 초보자에게도 수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재밌고도 신기했던 건 개구리처럼 쪼그려 앉아서 점핑을 하며 손을 앞으로 뻗는 동작이 있었는데 이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절반이 채 안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장에서 단련해온 토끼뜀에 익숙해서인지 내게 이 동작은 큰 무리가 아니었는데 좌식생활에 익숙지 않아서일지 서양인들은 이 동작을 매우 어려워했고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느덧 첫 번째 세션이 끝났고 등에선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해가 저문 스튜디오엔 어둠이 내려앉아 천장의 홍등만이 스튜디오를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조용한 어둠 속에 누워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 같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오옴~~~~~~~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뱉어내고 다시 들이마셨다 뱉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 paul의 기타 연주에 맞춰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문득 이 상황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이건 바로 학창 시절, 수련회 밤에 강당에서 수많은 애들과 같이 범벅이 되어 누운 채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딱 그 느낌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더 이상 명상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웃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순간 모기가 귓전에서 위잉~하고 소리를 냈다. 이마와 뺨, 팔과 다리가 간지러워 어둠 속에서 벅벅 긁어대는 사이 어느새 90분의 수업이 끝났다. 푸르름으로 가득 찼던 통유리 밖 세상은 이미 깜깜하게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발리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90분간의 요가 클래스 체험 소감을 물으신다면?

해외에서 색다른 느낌으로 아름다운 내추럴 뷰를 배경 삼아 외국인들과 뒤섞여 요가를 배워보는 경험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 다만 수업 내용만으로 봤을 때는 한국에서의 요가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고(저는 수업을 한 번밖에 안 들었기 때문에 다른 수업은 더 색다르고 좋을 수도^^) 요가에만 집중하기 위해선 좀 더 소규모의 클래스를 듣거나 요가반처럼 외국인 선생님이 아닌 real 발리 요기들이 운영하는 요가원에서 배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서양인들에게는 이런 요가원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먹고 이야기 나누고 하는 체험 자체가 매우 색다르고 매력적일 수 있겠단 생각이 충분히 들었다. 그들이 동양의 음과 양의 기운을 어디까지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우리 모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줄리아 로버츠가 될 수 있으니


우붓에선 '먹고 요가하고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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