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적 외삽의 한계
고령화 시대라는 말은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되어 상투적으로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출산률은 힘차게 저위 가정의 밴드 하단을 뚫고 폭락했다. 엄청난 예산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연일 언론을 장식한다. 그리고, 이 대로라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150년을 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오피니언 리더들이 말한다. 집적 회로, 배터리 기술 이런 것들이 늘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지난 100년간 사람의 평균 수명의 증가를 쭈욱 이어서 외삽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변화를 종합해 보면 지금 베이비 부머와 386 세대를 아우르는 50,60년대생들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당분간은(적어도 앞으로 수십년간은; 영원히 그럴것이라는 예측은 무조건 틀린 명제일 테니..) 가장 긴평균 생존기간을 기록하는 출생 코호트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80,90년대생(밀레니얼+Z세대, 이하 MZ세대)들은 서서히 꺾이는 기대 여명을 목도하는 첫 세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예측에는 1) 생물학적 노화 속도의 결정인자와 2) 현대의학이 가지는 기대여명에서의 중요성, 3) 사회경제적 변화가 섞여 있다. 그 이야기를 상당히 주관적이고 또 장황하게 한번 풀어놓아 보려 한다.
아래 그림은 오랬동안 잘먹고 잘사는 가장 쉬운 방법을 거시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는 노화와 연관된 여러 생물학적 표현형(hallmarks of aging), 노화에 따르는 질병과 허약, 그 결과인 기능 저하가 어느정도 다 포함되어 있다. 뚱딴지 같은 소리 같지만, 따지고 보면 옛말이(사서 삼경부터 채근담 같은 갖은 고전이나 불교에서의 가르침) 하나도 틀린게 없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노화를 가장 효과적이고 빠르게 가속시키는 방법은 대사 이상과 만성 염증, 단백항상성(proteostasis) 파괴 등을 통해 혈관 노화와 대사(metabolic) 이상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 그림에 나와 있는 '사람의 가속 노화'를 만드는 기제들은 서로 다 연관되어 있어서, 일단 그 고리에 진입하게 되면 다 같이 악순환을 하며 더 나쁜 결과를 향하는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그려놓으면 정말 사이비 같아보이지만, 저 화살표 하나하나가 다 충분한 증거수준의 기초 생물학/임상 의학연구를 통해서 뒷받침되는 것이다. 다만, 번뇌(煩惱)라는 단어는 내가 끼워 넣은 것인데, 어떻게 과학적으로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정신 상태의 엔트로피 높음, 또는 자아 고갈 상태(Ego depletion) 와 비슷한 것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아 근력'이 떨어져서 쉽게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나 인터넷 쇼핑, 넷플릭스 드라마 몰아보기나 SNS를 끊임없이 스크롤 하게 되고, 뭔가 불안해서 FOMO(fear of missing out)을 끊임없이 느끼는 그런 상태를 나는 통칭해서 번뇌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결국 가속 노화를 경험하지 않으려면, 젊어서(10대부터 중년때 까지)는 조금 덜 먹고, 많이 움직이고, 정신적 스트레스는 운동이나 건강한 식습관, 충분한 수면으로 해소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어려운 상황이 강제로 조성되면 대사 질환이 빨리 오고 결국에는 수명도 단축시킨다.
베이비 부머와 86 세대는 대다수가 최소한 어린 시절 당분과 가공식품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어려서는 밖에서 노는게 기본값이었다. 86 세대는 20대에 운동도 많이 했다. 그 운동(protesting)도 아무튼 신체 활동은 동반하지 않는가. 그 사이 세계에서 제일 가는 전국민 의료보험 체계가 갖춰 져서 만성 질환은 조기에 관리받을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은퇴할 때가 되니, 노쇠(허약)이나 장애에 대한 시스템도 하나하나 갖춰져 간다. 생애주기별 노화 예방이 착착 다 들어맞았다.
80년대생부터는, 어려서부터 활동 저하와 과잉의 열량에 시달리고 살아야 했다.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자란 세대다. 현대 마케팅 기법의 발달로 이들의 자아고갈과 번뇌를 불지피는 플랫폼들이 단 1분도 이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당분 폭탄 식사를 하고 오후에 힘이 빠지면 또 단 것을 먹는다. 편도 한시간 반이 걸리는 지옥같은 퇴근길로 집에 들어가서는 누워서 넷플릭스와 유투브를 보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잔다. 이런 생활환경에 대한 반향으로 여러가지 담론(저탄고지, 간헐적 단식, 홈트 등등..)이 나오지만, 평균적인 사람들의 노화가 가속되고 건강이 나빠지는 방향으로 사회적 압력이 끊임없이 가해진다. 어린 시절 부터 '가속 노화 모델동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쥐나 초파리, 예쁜꼬마선충 같은 동물에서 절식 또는 절식모사, mTOR 시스템의 억제, 노화세포 제거와 같은 일들을 실험실적으로 아주 잘 하면 최대 수명이 20-25% 정도 늘어난다. 반면 동물 실험에서 대사적 스트레스(정크 푸드 식이)를 끊임없이 가하거나 해서 질병/가속노화 모델을 만들거나 기대 여명을 20% 정도 단축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물학 연구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그 다음 생각할 것은, 앞으로 과연 의학이 늘일 수 있는 평균수명 부분이 얼마나 더 남았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150년 여간 전 세계적으로 출생자의 기대여명이 빠르게 늘었던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그리 큰 논란의 여지 없이 소독과 위생의 개념의 보편화에 따른 영아사망의 개선일 것이다. 그리고 냉장고의 보급과 영양의 개선 역시 중요하다. 그 다음 정도가 되는 것이 기본적인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과 항생제, 외과 수술법의 발전, 국민건강보험 시스템 정도 아닐까.
필수적 보건의료 기술의 보편화는 어느정도 포화가 된 상태에서, 지금 돈이 몰리는 것은 표적 치료 항암제, 치매와 관련이 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하는 단일클론 항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의 앓는 기간을 하루이틀 단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항체 의약품 등이다. 지금까지도 블록버스터인 '스타틴' 같은 약-그마저도 전지구적으로 계산해 보면 기대여명을 한두달이나 늘였을까-에 비해서도 수명에 있어서 편익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인구가 적거나 기대 효과의 폭도 좁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변화이다. 한스 로슬링 등의 팩트풀니스에서는 세상이 생각보다 나아지고 있음을 여러가지 통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맞는 말들이 많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렇지 못한 부분도 생각은 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회적으로 유복하지 못한 인구집단은 기대수명이 2019년 경 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에는 많은 선진국에서 초과사망이 관찰되며 기대수명이 감소된 것으로 집계 되었다. 21세기에는 신종 감염병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는 계속 나왔지만, 한가지 바이러스에 의해서 벌써 이렇게 큰 변화가 보인다.
2015년의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서 산업사회 이전 대비 1.5'C 로 지구의 기온 상승을 막기로 하였지만, 코로나 19에 의한 CO2 배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2030년이면 아마도 이 1.5'C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예상하고 있다. 신선한 채소와 양질의 지방, 단백질을 함유한 지중해식 식단이나 전통 한식 밥상의 물가는 엄청나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싸게 먹을 수 있는 움식은 대개 '정제 탄수화물+당+MSG+소금+색소 및 첨가물+식물성지방' 의 조합이다. 환경 비용과 에너지 비용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서 그럴싸한, 건강한 식단의 접근성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10년 후엔 어쩔수 없이 가짜 고기나 소일렌트(soylent) 같은 것을 주로 먹게 될 지도 모른다.
앞으로 생활 습관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동기부여 회로를 지배하는 플랫폼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의 다년간의 노력으로 요즘의 MZ세대는 이미 영화 월 E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휴대폰을 스크롤하고, 알고리듬이 만들어놓은 도파민의 먹이를 따 먹으며 지내게 된 것 같다. 코로나 19로 더 심해진 이 트렌드의 끝은 정확히 저런 모습이 아니겠는가. Ob/ob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비만 생쥐 모델동물과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고품을 느끼며 옥수수 시럽과 기름을 다른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들(콜라로 대표되는)을 소비하는 미국의 여느 사람들처럼 되어간다면 기대수명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면, 나름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 MZ세대는 번뇌를 줄이고 몸과 마음을 모두 린(lean)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숙명이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이러한 노력들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데 까지는 아주 긴 시간 지연(리드 타임, lead time)이 존재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간과하기 쉽다. 그렇지만 복리의 효과로 장기투자를 한다는 생각으로 사실은 20대, 30대 부터 습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음 글들에서 이런 논의를 이어나가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