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동적 노인의학자 Jan 18. 2021

인구가 늘지 않으니 집이 충분하다는 착시

한국인의 삶의 질에 오랜 상처를 남길 지금의 부동산 정책

인구가 늘지 않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출산률은 반등하기 쉽지 않은데, 고령층 내부에서도 초고령층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되어, 이 글의 초고를 썼던 11월 예상하였던 대로 우리나라의 인구는 2020년부터 정말 감소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의 인구는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동산 수요는 투기 수요이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집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부동산이 오른다고 한다. 따라서 집을 구입하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집이 공급이 되면 집이 더 오른다고 한다. 따라서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정부의 논리이다. 국토부 장관이 바뀌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정부에서, 집과 마스크라는 두 가지 '일용품'을 놓고 반대의 정책을 펼쳤다. 갖은 방법으로 마스크의 공급을 늘였더니 마스크가 충분해져서 가격이 폭락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고 좇는 집의 공급은 되려 줄인다. 집은 투기재에 해당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집이 오르니 집을 공급하면 되는데, 집이 오르니 집의 공급을 줄인다. 그리고 집을 살 수 없게 만들어버리니 전세가 오른다. 다른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한적한 곳으로. 그래서 한적한 곳도 가격이 오른다. 더 한적한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하루 왕복 출퇴근이 세시간 걸리는 곳으로.


누군가가 그랬다. 강남 아파트에 모두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가, 서울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가,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살 필요 없다'고 할 것 같다고.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도 생각했었다. 부동산 가격을 펌핑한 후 모든 집을 종부세를 걷을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서 자가를 보유한 소위 중산층의 실효세율을 올리는 것. 20차례 이상의 부동산 정책을 모두 늘어놓고 보면, 이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지만, 음모론으로 몰릴 수 있으니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센트럴 파크 옆의 아파트(출처:위키페디아)


집이 부족하지 않다는 잘못된 가정


지금은 서울에 집이 모자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공급을 매우 많이 늘여야 한다. 그 명백한 이유는 인구구조와 고령 인구의 특성 변화 때문인데, 이를 정부는 간과하고 있다. 이런 사고는 기본적으로 65세가 넘은 인구는 모두 똑같고, 그 구성과 특성이 90년대와 변화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기인한다.


서울의 아파트는 80년대-90년대에 대규모로 공급된 것이 주를 이룬다. 지금 58년 개띠 전후 10년으로 가장 큰 인구 밴드를 차지하는 연령층 인구가 가구를 이루어 이 집에서 아이를 두명 정도 나아 키웠고, 이사를 옮겨다니긴 했지만 여전히 이 집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65세가 되었지만 - 즉 정부가 통계에서 잡는 생산 가능 연령에서 빠져나가고 있지만 - 집이 큰 자산 비중을 차지하고, 이 집에서 떠나기에는 아직 사회 활동을 하고 있고, 비교적 부유한 세대이며, 지병은 있지만 건강하다.  


그 세대의 아이들이 밀레니얼 세대가 되어 또 가구를 이루는 시점이 2010년 부터. 이들이 낳은 아이들, 즉 58년 개띠 전후 10년 세대의 손자들이 초등학교에 가는 시점이 시작된 것이 2015-2025년, 바로 지금이다.



산술적으로 서울에는 두 배의 집이 필요하다


고로 '서울에 아파트가 왕창 지어진 지 한 세대가 지나 일부는 재건축이 되기에  그때 입주한 사람들은 지금도 살고, 앞으로도 살 것인데, 그 만큼의 가구수가 독립을 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 난리다.' 가 핵심이다. 서울 집이 필요한 가구수는 산술적으로는 두배가 된 셈이다. 인구는 줄고 있지만 가구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통계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도시화, 집중화에 의한 대도시의 밀도 증가와 집값 상승은 근교가 재조명받는 코로나-19 시대에도 전 세계인 트렌드이다. 도시철도를 비롯한 비교적 효율적인 교통 수단,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필요한 인적 교류가 가능한 환경, 좋은 직장과 교육 환경, 문화 자원을 포함하여 모든 요인이 대도시를 더욱 더 사람이 몰리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좋은 종합 병원이 몰려 있다. 심지어 농업 조차 수송 거리를 줄일 수 있는 대도시에서의 수직 재배가 제시될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도시의 장점은 고령 인구도 당연히 누리고 싶다. 집을 팔고 서울에서 나갈동인이 적다.


그리고, 이 대도시의 삶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해 '15분 도시' 라는 말이 나오고, 직장과 주거의 근접성을 높이려는 시도들이나, 자동차 이외의 모빌리티를 이용한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시도들이 여러 국가에서 끊이지를 않는다.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 나라의 지금에서는, 입지가 좋은데는 살지 말라고 한다. 그런 곳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나쁜 의도, 투기꾼적인 생각이 되었다. 전세는 구할 수가 없고, 집을 사서 이사를 가려 해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이미 여타 선진국에 비해서 길고 긴 것으로 알려진 수도권의 출퇴근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직장을 유연하게 옮기기도 쉽지 않은데, 집은 이제부터는 전 국민이 지금 살던 곳에 계속 살아야 한다. 모두가 더 멀리 다녀야 하니 도로는 더 막히고, 도시철도는 늘 지옥철이다. 모두가 길에 인생을 다 뿌리는 형국이다. 지금처럼 '평균적으로' 왕복 두시간 출퇴근을 하는 것이 정상일 때에, 삶의 질을 찾거나 가족을 일구고 먼 미래를 위한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어렵다.



삶의 질과 출산율이 더 떨어진다


퇴근에 두시간이 걸리므로 저녁이 없는 삶을 살게 되고, 살 곳을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가족을 형성하기는 더 어렵고, 가족이 있어도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게 된다. 집에 가면 자고, 또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길에 나서야 한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다들  또 당연히 그렇게 산다.


이것을 당연한 중산층의 삶으로 만들어 버리면, 출산율이 더욱 감소될 수도 있다. 파리 기후 협약 목표를 쉽게 맞추기 위해, 즉 CO2 배출 저감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인구를 줄이는 것이 가장 빠른 CO2 배출 저감의 방법이니까. 그래서 어쩌면 정부가 원하는 방향일 수도 있다(?). 일견 비꼬는 것 같지만, 심한 인지부조화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통근 시간이 늘고, 가처분 소득에서 주거에 사용하는 비용이 점점 늘면서 삶의 질이 악화되고, 밀레니얼 세대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컴포트 푸드 (comfort food), 술, 담배, 운동하지 않는 삶에 노출되며 건강이 빠르게 나빠지게 된다. 따라서 58년 개띠 전후 10년, 소위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와 현 586 에서 수명은 피크를 치게 되고, 그 이후로 감소되게 된다 (노화/노인학자로서 보기에, 안타깝게도 정말로 이렇게 될것만 같다). 따라서, 이미 지옥같은 수도권을 더 지옥으로 만듦에 따라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미래의 의료 비용과 복지 비용은 감소될 수도 있다.


낮은 삶의 질, 악화된 출산률, 더 나쁜 건강상태. 돈과 노력을 들여도 개선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인데, 가설이 틀려먹은 부동산 정책 하나로 미래 한국에 필요한 여러가지 목표들을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공급 부족의 해소에는 10년-2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문제를 해소하려면 당장 서울에 엄청난 양의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 이상한 원룸이나 초소형 다세대, 임대주택으로 되지가 않는다. 공급 외에는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답이 없다. 그럴 가능성이 현 정부 아래에서는 없어 보이는 것이 걱정이다. 돈도 많고 건강한 베이비 부머와 386 세대가 몇 채 되지 않는 집을 놓고 자식 뻘 세대와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가격이 덜 오른 곳은 한국의 국민소득이 5000불 미만일 때의 생활 수준 (standard of living) 에 맞춰진 주거 형태나 건축의 퀄리티를 보이는데, 이러한 주택은 빠르게 슬럼화되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 3만불의 눈높이에 맞춰진 8090세대가 앞으로 아이가 하나 둘 딸린 가정을 이룰 때에 들어가 살고 싶은 집을 공급해야 한다. 지난 몇년간 가장 시세가 빠르게 오른 주거 유형은 정확히 신축, 34평 아파트이다. 


지금 정부의 기조가 지속된다면 서울에 자가를 확보하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는 과거 홍콩의 구룡 성채와 같은 환경에서 살거나, 아니면 왕복 세시간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와 기업이 부유해 지더라도 그 국민의 삶의 질은 좋아질 수가 없다.


정권도 바뀌지 않고, 기조도 바뀌지 않으면, 세금을 버티지 못한 은퇴 베이비 부머가 모두 어딘가 다른 도시로 떠난 후에야 이 수급 불균형이 해소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데는 20년이 걸릴 것이고, 그러고 10년이 더 지나고 난 후에야(지금의 8090, MZ세대의 자녀들, 연간 30만명도 태어나지 않는 이 세대가 가정을 형성하기 시작할 때) 공급 불균형이 나아지지 않을지 싶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국민소득은 높아지더라도 삶의 질은 더욱더 최악이 되는, 악어 입 벌리기(jaw-opening) 현상이 계속될 수 밖에 없지 않을지. 그리고 8090, MZ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평균 수명이 단축되는 기념비적 세대가 되는 것이다(다음 글에서 왜 이런 현상이 가능한 지를 다룰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예견된 요양병원 코로나19 비극과 어르신 돌봄의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