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글씨를 그릴 수 있었을 때부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아이가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알아내기 위한 우리 부부의 최선이었다.
“준형아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 써야지~”
거실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던 아이에게 아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 써야 된다는 말을 꺼냈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는 책장 한 구석에서 편지지를 찾아 아이에게 건넸다.
“아빠! 에버랜드에서 봤던 피규어 회사 이름이 뭐야?”
다행히 핸드폰 메모 속 회사 이름을 저장해 둔 것이 생각났다. 아이가 내미는 아이패드에 피규어 회사 이름을 검색해서 보여 주었다. 70개가 넘는 피규어가 번호가 매겨져 화면에 떠올랐다. 아이는 작은 손에 연필을 쥐고 마음에 드는 피규어 이름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수컷 코끼리, 암사자, 혹 멧돼지.
A4용지에 이름이 적힐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퍼진다. 집중한 만큼 꾹 다문 입술의 아이 표정도 진지하다. 저렇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이가 번호를 매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1위는 혹 멧돼지였다. 처음엔 흑멧돼지인 줄 알았는데 아이는 내 발음을 듣더니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빠!! 혹! 멧! 돼! 지!”
아프리카 수컷 코끼리, 암사자를 제치고 혹 멧돼지가 1위 한 이유를 물으니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혹 멧돼지는 보기 힘든 거야~”
가지고 싶은 이유가 ‘멋지다’가 아니어서 당황했지만 이내 아이에게 편지를 쓰자고 재촉했다. 아이는 편지를 쓰기 전 갑작스레 크리스마스트리를 찾았다. 편지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산타 할아버지는 창가에 있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편지를 찾으러 온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는 있는데 꼬마전구가 없어 반짝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꼬마전구가 없다는 말에 아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편지 안 쓸래~”
한숨이 나왔다. 한숨을 쉬다 결국 울상이 된 아이를 달래기 위해 다이소를 가기로 했다. 차가운 바람이 무서워 옷으로 꽁꽁 싸맨 뒤 아이 손을 잡고 밖을 나섰다. 마스크를 썼지만 생각대로 차가운 겨울 저녁 냄새가 코끝에 매달렸다. 겨울 저녁 냄새를 맡으며 도착한 다이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더나 장식용 꼬마전구와 트리 꼭대기에 올릴 커다란 별을 골랐다. 금색 별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크기가 크지 않아 아이 혼자 뚝딱 거리더니 금세 완성했다. 아이가 완성한 반짝거리는 트리를 온 가족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멍하게 트리를 쳐다보다가 아이가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금세 거실 책상에 달려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엄마 아빠한테 자기 글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초록색 예쁜 크리스마스 편지지에 또박또박 글씨를 써나갔다.
편지를 쓸 때부터 아이는 차가운 밤바람 때문이었는지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마 차가운 저녁 바람을 이기지 못한 콧물이 아이와 같이 집에 왔나 보다. 아이의 훌쩍이는 콧물은 엄마 아빠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코를 풀면 좋으련만이란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 사이 아이는 편지를 완성했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조심스레 자신의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편지까지 마무리한 아이는 기쁜 얼굴로 잠을 자러 갔고, 이제 산타가 된 부모가 활동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이의 편지를 아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얼른 숨겼고 아내는 선물을 주문했다. 크리스마스 준비는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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