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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Dec 08. 2022

흥! 이따 학교 앞으로 꼭 데리러 와!

남자아이가 말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갑작스러운 아이의 큰소리에 나도 아이도 행동을 멈췄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시선이 교차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코 끝에 스미는 것처럼 눈가에도 냉랭한 기운이 스며든 채로 서로를 쳐다본다. 따뜻했던 집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식탁에 앉아있던 아이는 끝내 안방 이불을 찾아 떠났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아빠 나빠!”를 외치며 자신의 서러움을 표현했다. 

아이의 서운함을 뒤로 한채 아침 식사를 정리하던 와이프는 어느새 출근 시간이 되어 학교로 떠났다. 엄마의 다녀오겠단 인사에 아이의 대꾸는 없었다. 다정한 엄마의 인사도 모른척한 아이는 안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거실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려는데 자꾸 뿔이 났다. 아이에게 못된 말이 나올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거나 잡아서 펼친다는 게 오늘 신문이었다. 


차르륵, 차르륵. 


조용한 집안에 신문이 넘어가는 소리만 냉기가 퍼지듯 슬슬 퍼졌다. 신문을 펼쳤지만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까만 부분은 글씨고 하얀 부분은 종이였다. 하릴없이 신문만 넘기면서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소파에는 아이가 갈아입을 옷과 패딩이 준비되어 있었다. 


삐~걱. 


유치함이 고개를 들어 나를 홀릴 때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치함에 마음에 아이를 쳐다보지 않고 신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시선만 신문을 향했을 뿐 마음은 온통 아이에게 있었다. 아이는 아빠에게 말을 걸고 싶어 신문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시간이 자꾸 흘러 아이도 학교 갈 시간이 다가왔다. 모른 척하는 아빠를 두고 아이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궁금한 마음을 꾹 참고 아이 혼자 준비하기를 기다렸다. 


‘아차! 마스크를 준비해주지 않았다.’


아이의 준비가 다 될 때까지 모른척하고 기다리려고 했으나 마스크를 준비해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무심한 척 마스크를 준비하려고 보니 아이의 시선이 따가웠다. 


“치!!”


아빠의 모른 척과 혼자서 아침 준비하는 것이 못내 서운한 아이는 간신히 한 단어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아이의 서운함이 물밀듯이 타고 밀려온다. 준비가 다 끝나고 이제 학교 가기 위해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신발을 신고 나가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아빠가 나 모른 척했잖아!!”

“모른 척해서 서운했어? 그건 미안해~ 그렇지만 아침에 옷 갈아 입자는 말에 큰소리로 화내는 건 안돼!”


학교 준비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모른 척한 것이 가장 서운했나 보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빠의 사과에 이내 풀어져 개미만 한 목소리로 “미안" 한 뒤 한 마디를 던지고 얼른 현관문을 닫는다. 


“흥!! 이따 학교 앞으로 꼭 데리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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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mage Edited by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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