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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Dec 05. 2022

손자를 이기는 할아버지는 없었다.

“대게 한번 먹자.”


엄마는 속초에 놀러 온 김에 대게를 먹고 싶어 했다. 마흔이 다되어가는 아들과 8살 손자의 손에 끌려 온 속초는 몇십 년 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뭘 하고 싶다는 말이 적은 엄마였기에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핸드폰으로 대게를 검색했다. 대게의 가격은 딱 예상만큼 비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게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이도 대게를 먹자는 말에 신이 났는지 “대게! 대게!”하고 거실을 통통 뛰어다녔다. 그렇게 아빠(할아버지), 엄마(할머니), 나, 아이(손자)는 다음날 저녁으로 대게를 먹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이튿날, 갑작스럽게 상황이 변했다.

정확히는 엄마와 아빠가 오후에 내차를 빌려 강릉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오후 늦게 숙소에 돌아온 부모님은 허탈해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했다.


“옴메~ 대게가 그렇게 비싼 거 맞대? 못 먹겄다.”


숙소에서 신나게 놀고 있던 아이는 할아버지의 선언에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커졌다. 옆에서 듣던 나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차를 빌려 엄마와 함께 강릉에 갔던 아빠는 경포대를 구경하러 갔다 왔다. 고등학교 시절 무전여행으로 다녀왔던 경포대는 여전하면서도 많은 것이 변화했다고 했다. 경포대 구경이 끝난 후 돌아오는 길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대게 집 중 아무 곳이나 들어갔고 가격을 물어봤다고 했다. 한 마리에 15만 원. 가격에 놀란 아빠는 우리에게 그 비싼 대게를 못 먹겠다고 말했다. 엄마도 대게가 비싸서 못 먹겠다며 다른 걸 먹자고 했다. 관광지 물가가 다 그렇다고 검색해서 가면 괜찮은데 있다고 설명해보았지만 강릉에서 놀란 부모님의 마음은 쉽사리 돌아서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는 “대게 먹고 싶은데.”라고 말하고 있었다. 속상한 표정의 아이 얼굴이 다가왔다. 안아주며 아이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할아버지한테 가서 대게 먹고 싶다고 이야기해봐~”내 말에 힘을 얻은 아이는 할아버지가 쉬고 있는 작은 방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저녁에 대게 먹냐고? 대게 안 먹어~비싸서 못 먹겄다~”


할아버지의 답변에 아이는 방을 나오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품에 와서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 하기 시작했다. 으앙~엉엉엉.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용했던 숙소 전체에 퍼졌다. 울음소리는 방에서 쉬고 있던 할머니를 불러냈고 이어 할아버지도 거실로 나오게 만들었다.


“우리 준형이 으째 운대?”


먼저 나온 할머니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으앙~앙앙앙. 할머니의 시선이 아이에게서 내게로 옮겨 왔다. 아이 대신 대답했다. “대게 먹고 싶은디 할아버지가 안 먹는당께 그라제~”할머니의 뾰족한 시선이 뒤따라 나온 할아버지한테 꽂혔다. 왜 애를 울렸냐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라믄 할아버지한테 대게 먹고 싶어요~ 해야제~ 그렇게 울믄 쓴데~”


할아버지의 변명 같은 대답이 이어졌다. 그러나 눈물범벅인 아이의 얼굴은 할아버지의 변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장을 해제시켰고 그날 저녁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대게를 사러 시장에 가고야 말았다.


늘 그렇듯 손자를 이기는 할아버지는 없었다. 1년 전에도 한 달 전에도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손자를 사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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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mage Edited by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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