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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Dec 01. 2022

인생의 첫 월드컵 경기를 응원해!!

“아빠! 친구들이 그러는데 축구를 보려면 꼭 오늘 봐야 한데!!”


학원에서 돌아오던 아이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아이의 목소리에 “아 그래?”라는 작은 대꾸만 하며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축구 보자는 이야긴가?’라는 생각에 빠질 때쯤 흥분한 아이가  부엌으로 쫓아왔다.


“오늘이 가장 빨리 축구 경기를 한데!!”


아이는 오늘 꼭 축구 경기를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무덤덤한 내 반응에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아이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두 손 모아 아빠의 결정만 기다리기 시작했다. 축구를 보여주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9시면 자야 하는데..”


혼잣말을 하며 아이의 눈을 피했다. 슬쩍 와이프를 쳐다보니 와이프도 아이 눈을 피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우린 둘 다 아이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래 보자!!”

“예!! 축구 본다!!! 예!!!!!”


아이는 양손을 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주방과 거실이 아이의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찼다.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저녁 식사 내내 축구 선수와 축구 이야기를 했다. 그날의 아이는 축구에 진심이었다. 별빛처럼 눈을 반짝이며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지나갔다. 먹느라 말하느라 바쁜 아이는 귀여움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그 귀여움에 아내와 나는 먹는 것도 미뤄둔 채 웃으며 대꾸해주느라 바빴다.


저녁 식사 흔적을 치우고 거실에서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컴퓨터를 TV에 연결하기 위해 거실 TV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내는 맥주를 찾기 위해 김치 냉장고를 뒤졌다.


“이럴 수가! 맥주가 없어!”


맥주 애호가인 아내의 탄식이 들려왔다. 나는 아내의 탄식을 모르는 척 “이건 여기 연결하고~”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내는 다시 날 불렀다.


“자기야!! 맥주가 없어!!”


또다시 아내의 간절한 눈빛이 나를 흔들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고 나는 아내의 눈빛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늦은 시각 심부름을 자처해 주저 없이 장바구니 하나를 들었다. 반바지에 경량 패딩이라는 겨름(겨울+여름) 패션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내 뒷모습에 아내의 사랑이 쏟아졌다.


“자기야 고마워~~♥︎♥︎♥︎”


편의점엔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들 맥주와 과자 몇 봉지 또는 컵라면을 계산하기 위해 분주했다. 나도 편의점 바구니를 들고 계산하는 줄 맨 뒤에 섰다. 손에 든 바구니엔 와이프의 주문과 아이의 주문 결과가 담겨 있었다. 맥주, 새우깡, 컵라면이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더 이상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은 없었다. 내 뒤론 사람이 없었다. 계산대에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핸드폰에선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길게 울려 퍼졌다.


추운 공기를 피해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의 공기는 긴박하게 변해있었다. 아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유튜브에서 경기 중계 안 하나 봐!!”


아이는 발을 동동 굴리며 “아빠! 아빠!”만 외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TV를 보니 경기 장면이 아닌 응원 장면만 보였다. 아이의 몸이 안타까움으로 달아올랐다. 아내의 목소리에 따라 유튜브에서 네이버로 재빨리 조정했다. 다행히 화면엔 축구 경기가 보였다. 화면이 경기를 보여주자마자 아이는 재빨리 소파 앞에 자리 잡았다.


짝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아이는 익숙한 듯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2002년부터 기억하던 그 박수 소리가 아니었다. 아내가 물었다.


“준형아 어떻게 손뼉을 친 거야?”


아이는 대답 대신 박수소리를 들려주었다. 달라진 박수소리에 키득키득 웃으며 아내와 나는 세대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의 리듬감 있는 박수와 응원 목소리는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예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나라 진영에 공이 오면 걱정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며 목소리가 작아졌다가 우루과이 진영에 공이 가면 흥분과 투지를 보이며 아이의 목소리는 커졌다. 아쉬움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울 때쯤 경기는 끝났고 잠자러 들어가며 아이가 말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아직 경기 남았어!!”


아이의 다짐이 통했을까. 이후 우리나라는 가나에게 2:3으로 패배했지만, 포르투갈에게 2:1로 승리해 16강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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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Edited by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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