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나운 아빠 있는 사람 손가락 접어! ㅋㅋㅋ”
김포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아이는 차례가 되자 키득키득 웃으며 아내한테 이야기했다.
‘싸나운 아빠?’
의문이 들었지만 운전 중이라 가만히 들어보았다. 아이가 말하는 싸나운 아빠는 아이의 외할아버지였다. 궁금했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장인어른이 싸나운 할아버지가 된 이유가.
“준형아 양평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아니야?”
“응! 할아버지는 맨날 박치기만 하고! 싸나워!”
무뚝뚝한 옛날 경상도 아버지 같다고 생각했던 장인어른은 아이에게 싸나운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다정한 말씀이나 농담을 잘 못하시고 아이에게 장난친다는 것이 늘 이마 박치기였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가끔 걸어오는 장난스러운 박치기를 할 때마다 지지 않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안간힘을 쓰며 이마를 부딪쳤고 박치기가 끝나면 뾰족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그게 그렇게 싫었나 보다.
“아빠 할아버지는 어땠어?”
아이 질문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기억 속 할아버지는 조용하셨다. 풀을 먹인 빳빳한 한복을 입으셨고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랫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계셨는데 그 옆엔 갈색 나무 목침이 놓여 있었다. 나무 목침은 반들반들 윤이 났고 가운데는 닳아져 움푹 파여 있었다. 그러다 내가 할아버지 집 대청마루에서 놀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조용히 다가와 이제는 잘 찾을 수 없는 커다란 쇠밥그릇에 계절마다 당신이 구할 수 있는 간식을 담아 가져다주고 모르는 척 가만히 옆에 앉으셨다. 뭐지 하고 쳐다보면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하셨다.
“먹어 봐라”
늦봄이면 오디, 가을엔 무화과를 따다가 밥그릇에 담아주셨고, 겨울이면 곶감이나 물에 불린 생밤 껍질을 까서 주시기도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가져다준 계절 간식을 작은 손으로 콕콕 집어 먹고 맛있으면 더 구해달라고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가만가만 움직여 손주 간식을 구하러 가셨다. 그 커다란 쇠밥그릇 속 계절 간식은 아마 손주인 나를 챙겨주고 싶어 하신 마음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은 기억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지 어렸을 적 시골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따뜻했다.
아이도 나처럼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싸나운 할아버지가 따뜻한 할아버지가 될까? 아이가 삐져 있으면 조용히 동네 마트에 가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망고를 손에 들고 들어오시는 장인어른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 듯하다. 다음에 만나면 박치기 말고 망고부터 사들고 오시라고 이야기해봐야겠다.
싸나운 할아버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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