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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an 13. 2023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렸을 적 기억의 시골집.

대청마루에 앉으면 짜디짠 바다내음과 함께 저 멀리 햇빛에 반짝거리는 황금색 서해 바닷가가 보이던 무안 해제면에 있는 작은 옛날 시골집. 집둘레에는 전봇대 높이만큼 커다랗고 진한 초록빛 대나무를 키우던 집이었다. 덕분에 후덥지근한 여름 장마철이면 마당 한 구석에서 쑥쑥 올라오는 노란 죽순을 볼 수 있었고 겨울이면 바닷가 거센 눈보라에 흔들리는 멋들어진 대나무를 볼 수 있었다. 지붕엔 하얀 버짐같은 지의류가 곳곳에 피어있는 검은색 기와가 올라가 있었고 굵은 나무 기둥은 반들반들 윤이 났으며 벽은 진흙으로 메운 뒤 한지를 바른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그 시골집에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화장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물이었다. 그 옛날 시골집 화장실은 소를 키웠을 것으로 생각되는 외양간 같은 창고에 같이 있었다. 회색의 시멘트 벽돌로 벽이 세워진 창고 벽은 허물어질 듯이 낡아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회색의 벽은 천장까지 닿아 있지 않았고 어른들 머리 위 높이에서부터 큰손으로 한 뼘 정도 뻥 뚫려 있었다. 지붕은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의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오래되어 얼룩덜룩한 회색 벽 한쪽 구석에는 다 낡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매달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가득 차 있는 창고 겸 화장실이 있었다. 정면에는 거무튀튀한 나무판자 두 개가 덩그러니 걸쳐진 화장실이 있었고 벽면에는 한 장씩 뜯어 쓰는 달력이 철사에 불안하게 매달려 있었다. 나는 늘 그 나무판자 사이가 궁금했고 발이 빠질까 무서웠으나 한 번도 빠진 적은 없었다. 밤이 되면 불빛 하나 없는 화장실을 내 얼굴만큼 커다란 후레시(랜턴)에 의존해 다녀와야 했다. 밤의 화장실은 당시 유행하던 홍콩 할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해가 지고 나면 시골집 화장실은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늦은 저녁 쭈뼛거리는 나에게 할머니는 놋쇠 요강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여그다 쉬야 하믄 되제~”


집의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민속촌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어두운 갈색의 커다란 나무 문이 있었는데 그건 부엌문이었다. 부엌문 앞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야 하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 우물가 근처는 항상 물이 많아 질척거리는 진흙투성이였기에 봄, 여름, 가을에 주변 흙이 말라 있을 때나 곁에 가서 놀았다. 두레박에 줄을 매달아 물을 길었던 우물 근처는 물놀이터가 되기도 했지만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우물가 주변의 대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며 스산한 소리를 내었고 어두웠기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가끔 호기심에 머리를 디밀어 내려다본 우물은 늘 나를 삼켜버릴 듯 어두운 초록색 물을 보여주며 내 몸을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 아찔한 감각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물을 쳐다보지 않고 부엌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시골집에서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 난방했기에 시골집 부엌에 가면 늘 불놀이를 할 수 있었다.


“불 갖고 놀믄 밤에 이불에 오줌싼께 불장난 그만하고 추운께 얼른 들어가라잉”


아궁이에서 활활 타고 있는 장작불을 보고 멍때리고 있는 나를 본 엄마의 이야기였다. 그럼 나는 못 들은 척 하며 할머니가 편들어 주는 그 부엌에서 오래된 풍로의 손잡이를 돌리고 놀거나 솔방울을 불이 피워진 아궁이에 던지며 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불이 붙은 장작 하나를 얻으면 하루 종일 마당에서 장작불을 가지고 불놀이하고 놀았다. 그 부엌에는 안방으로 통하는 작은 쪽문이 있었는데 문이 어찌나 작은지 어렸을 적 나도 허리를 온전히 편 상태로 통과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쪽문으로는 보통 부엌에서 만든 음식이 안방으로 향했다.


쪽문으로 나와 오른쪽 안방 문 가장자리를 바라보면 오래되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목침이 있었다. 할아버지 자리였다. 목침, 재떨이 그리고 낡아 보이는 책 몇 권과 전화번호부가 할아버지 자리임을 알려주었다. 할아버지 자리 앞에 있는 안방 문은 창호지를 붙인 창살문이었는데 앉은 눈높이에서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유리가 붙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면 문을 열지 않고 할아버지가 눈만 가져다 대어 보던 광경은 나에겐 늘 신기함이었다. 안방의 천장은 낮았고 가끔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리면 어른들이 천장이나 기둥을 두들겼지만, 소용은 없었다.


안방을 제외한 방은 2개였다. 그중 작은 방은 부엌이나 안방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 추운 겨울이면 시골집에서 가장 따뜻한 방이었다. 큰 방은 여러 잡동사니와 주전부리들이 모여 있었다. 과일, 떡, 곶감, 밤 등이 있었고 들춰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타난 할머니가 작은 내 손 가득 주전부리를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묵고 싶으믄 갖다가 묵어가면서 해라잉”


먹는 것에 크게 관심 없던 어린 시절 할머니 말에 나는 대부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청마루로 나섰다. 어른 둘이 길게 누우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작은 대청마루에 나가면 처마 밑엔 하얀 바탕에 갈색의 서까래가 보였다. 서까래에는 빨간색 파란색 전선이 어지러이 자리 잡고 있었고 서까래 중간 처마 쪽엔 늘 제비집이 있었다. 겨울을 제외하곤 늘 제비집에는 제비가 있었다. 늦은 봄이 되면 새끼 제비들이 짹짹거렸고 가을에 들어서면 다 큰 새끼제비들이 쉴 새 없이 집을 들락거리며 왔다 갔다가 했다.


“잉~ 그랑께~ 저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구렁이 새끼 쫓아낸적도 이씨야”


언젠가 시골집에 갔더니 제비집을 구경하는 나를 보며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시골집에는 제비를 노리는 구렁이도 있었나 보다.

흙바닥인 마당을 돌다 보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나무들이 있었다. 창고 옆엔 어른들도 열매를 딸 수 없는 몇십 년은 된 듯한 커다란 뽕나무, 우물가 대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대추나무, 집 입구에 있는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어른들이 열매를 따주긴 했지만, 이 나무들 덕에 오디, 무화과를 사 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나무를 꺾어 만든 나무 막대기, 부엌에서 얻어온 장작불로 마당 한구석에서 불피우고 장난치던 기억, 달콤하고 맛있었던 나무 열매와 추억. 지나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낡아진 시골집은 2번에 걸쳐 리모델링했다. 나무들도 다 베어지고 없어졌다. 이제 시골집은 기억 속에만 남았다.




Photo by Small Town Kore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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