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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Feb 10. 2024

겨울 여행 I

고도 1600m로 공간이동

 지난해 후반기는 쉴 새 없이 진행되는 회의와 일들에 치이고, 끝까지 하기 싫었던 업무까지 새롭게 맡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입가에 맴돌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많지도 않은 연가를 한여름, 딸네를 방문하며 거진 소진한지라 비상용으로 하루 남겨둔 것밖에 없어 새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막상 새해가 와 여유가 생기자, 휴가에 대한 지난 그 심한 갈증은 다 사그라져 버리고 당시 열망하였던 가족과 미리 약속한 휴가 예정일만 다가오고 있었다.


 4박 5일의 여수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 여행일정. 제주도는 그래도 자주 갔었지만 일생 살면서 두 번 정도 가본 남해안을 여행지로 정한 것은 지인들이 들려준 입소문과 요새 핫플레이스라 뜬 소문 때문이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휴장 중이지만 그래도 순천만 자연습지는 개장된다고 하니 겨울 철새들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한몫 거들었다. 내려가는 시간만 5시간 넘게 소요되니 중간에 한 군데 쉴 겸 들리기로 했는데, 상고대와 눈꽃으로 겨울의 화려함을 쉽게 볼 수 있다는 무주 덕유산 리조트가 가족 만장일치로 낙점되었다.


 하루를 온전히 쓰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법.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시점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차 안에서 두유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아침식사 시간을 이동시간에 묻어두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질주하여 내려갔다.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차 안에서 집에서 가져온 빵과 함께 먹으며 약간의 호사누리다 보니 운전이 싫증 날 무렵 덕유산 리조트 단지에 도착하였다. 곤돌라 탑승장을 향할 무렵 산중턱 이상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모습이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10시 넘어 도착하긴 했지만 길게 늘어선 곤돌라 탑승 대기줄에 일단 한번 놀라고 15분 정도 걸려 장시간 올라가는 거리에 두 번째 놀라고 내려 보니 안개 낀 산 정상 풍광에 또 한 번 놀랐다.


 곤돌라 하나에 5~6명씩 꽉 채워 올리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두 명의 스키어들과 함께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인데 곤돌라 안에 스노보드를 하나만 갖고 올라타서, 겨울철 스포츠와 거리가 먼 나는 의아해 하며 두 사람이 하나의 보드를 타냐고 물었더니 그 청년들이 웃으며 하나는 곤돌라 문밖에 세워두는 곳에 두었고 자기 것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갖고 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곤돌라 문 밖을 보니 스노 보드가 하나 더 세워져 있었다. 올라가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이 청년들과 이 이야기 저이야기하며 올랐는데 덕유산 스키장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긴 스키코스라고 하였다. 그들은 일 년 권을 50여만 원에 사서 시간 나는 대로 겨우내 스키를 타는 모양이었다. 이 낯선 겨울 스포츠에 대한 그들의 말에 연신 우리가 감탄을 하자 스키장에 연한 티롤 호텔에서 커피를 마실 것을 권해주었다. 오스트리아 티롤지방에서 직접 나무를 가져와 그곳 방식과 형태로 지은 호텔이라 이국적이고 유럽식 정취를 느낄 수 있는데, 한 번은 불이나 타기도 하였는데 마침 자신이 그때 스키장에 있어 목격하였노라고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상에 도달하였다. 청년들의 스키와 더불어 겨울철 스포츠의 다양한 체험을 들려준 데 대해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헤어지고 밖으로 나와 보니 안개가 바람에 옅어졌다 진해졌다 하면서 신비로운 풍경을 더하고 있었다.

  

무주 리조트 곤돌라 정상에 내려보니 안개에 싸인 풍광이 신비를 자아내고 있었다.

 곤돌라 하차지점에서 향적봉까지 20여분 소요된다 하여 가볼 생각으로 길을 떠나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이젠을 여기저기 흩어져 착용하고 있었다. 우리도 재빠르게 착용 후 출발하는데 안개가 연출한 풍광에 연신 감탄사를 발하며 제법 센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하였다. 많이 가파르진 않았지만 1600m를 훌쩍 넘는 향적봉에 인근 한 탓인지 걷는데 발걸음의 부하에 비해 숨이 더 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를 걷다 보니 점차 적응이 되어갔다. 길 좌우의 산 풍경도 안개와 바람에 따라 보였다 사라졌다 하며 우리와 숨바꼭질을 하였다. 기대하였던 눈꽃이나 상고대는 볼 수 없었고, 그 흔적만이 몇몇 나뭇가지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앞선 그 청년들의 말에 의하면 눈 덮인 덕유산 정상의 모습은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정상의 풍광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모니터링하다가 눈이 올 때 이곳에 오기도 하는데 그때엔 사람들로 이미 곤돌라가 꽉 찬다고 하니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곤돌라에서 하차 후 향적봉까지 눈에 덮인 길을 가는 중에도 안개는 쉽사리 거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 내려올 무렵에서야 안개 사이로, 사실 이 안개는 구름이리라,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곤돌라 정상 승차장에 가까이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지고 파아란 하늘이 펼쳐졌다. 길을 오르며 아이들이 먹던 추로스가 먹고 싶었던지 딸아이는 꼭 하나 먹어봐야겠다며 기어코 하나를 사서 먹었는데 내려와 보니 위아래 가격차이가 500원이 났다. 가격 자체도 4500원으로 싸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산길에 멀리 정상 곤돌라 승차장이 보인다.
이날은 유난히 고래같이 생긴 구름이 둥둥 떠다녀서 우영우 변호사를 떠올리게 하였다.

 티롤 호텔의 커피는 식후 여유를 갖고 하기로 하고 먼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하산하며 맛집을 찾아보았다. 눈에 뜨인 곳은 더덕구이를 주 무기로 한 한식당 '주목'이었다. 깨끗하고 친절한 직원분들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고 더덕구이와 감자전을 시켰는데 나온 음식도 맛있어 있는 그대로 느낌을 직원분들에게 전달해 주니 앳된 직원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가족 전체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식사를 하는 중 그 직원이 작은 접시에 표고버섯 소금구이라고 드셔 보라 하며 가져왔다. 곱게 말하니 덤으로 반찬도 더 주시는데 지금까지 깔린 어떤 반찬보다 더 맛있었다.


 어떤 나쁜 말도 여러분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건축하는데 좋은 말을 필요에 따라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에베소서 4:29


 한 가족의 따뜻한 마음의 서비스를 받으며 점심을 기분 좋게 먹고 감사하단 말과 함께 음식점을 나와 바쁜 일정으로 돌아다닌 반나절을 뒤로하고 티롤 호텔에서 애프터눈 커피와 함께 여유를 갖도록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들은 대로 유럽 산간지방의 분위기로 흠뻑 적셔진 건물들이 그 자태를 들어내었다.  호텔의 주요 부분들이 다 나무로 지어진지라 내부로 들어가니 나무의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였다. 이곳에서 따뜻한 카푸치노와 디저트 케이크를 먹으며 잠시 휴식이 시간을 가졌다.

티롤 호텔의 잘 차려진 테이블

티롤호텔에서의 커피 향을 뒤로하고 그날 묵을 숙소 여수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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