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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Feb 12. 2024

겨울 여행 II

차로 오른 지리산과 자연에게 돌려준 순천만 정원

 4박 내내 묵을 숙소는 여수 거북선 공원 근처에 최근 지은 듯한 말끔한 C-스테이였다. 매일 아침 조식 뷔페가 포함된 적절한 가격을 고려하여 정하였는데 머무는 동안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친절한 뷔페식당 직원분의 서빙과 아주 풍성하진 않았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식사여서 우리는 만족스러웠다. 여행 둘째 날 스케줄은 구례에 있는 천 개의 향나무 숲에 들렸다가 순천만 자연 생태습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내리는 꾸리꾸리 한 날씨가 오전 내내 계속되었는데 도착한 천 개의 향나무 숲은 우리가 제대로 입구를 찾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개장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고, 우리에게는 맞는 장소 같아 보이지 않아 급히 다른 장소를 알아보아야 하였다. 논의 끝에 지리산 노고단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으니 그리로 가보자고 결론을 내려 인근에 있는 지리산 길로 향하였다. 정감 어린 시골 마을 길들을 지나 지리산국립공원 길로 들어섰는데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표지판에 성삼재 휴게소는 동계기간 동안 폐장하고 시암재 휴게소까지 밖에 가지 못한다는 경고문이 초입에 보였다. 처음 가보는 길인 데다 성삼재는 어디고 시암재는 어딘지 도무지 감이 없던 우리는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가보기로 하고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계속 가파른 오르막 길이 굽이 굽이 이어지고 행여나 길이 언 구간이 있다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마조마해하며 길의 상태를 살피며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도 오는 차, 가는 차 대 없어 슬슬 겁이 더 날 무렵, 차량 한 대가 내려오는 것이 보여 다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어쨌든 길은 뚫려 있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그렇게 졸인 마음으로 오르다 보니 시암재 휴게소가 보였고 그 이상 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육안으로 성삼재 휴게소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제 왔는지 앞서 우리 보다 먼저 주차한 것으로 보이는 차에서 젊은이들 세 명이 산행차림으로 우리에게 오며 찻길은 막혔지만 저위로 오를 수 있냐고 물어왔다. 우리가 경험 많은 산악인들로 보였나? 우린 웃으며 시암재 휴게소는 열려 있으니 그 직원들에게 물어보라고 하며 우리도 주차하고 커피도 마실 겸 휴게소로 향하였다. 휴게소에서 보이는 지리산 국립공원일대의 산들이 구름과 안개에 뒤덮여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었다.

시암재 휴게소에서 내려다본 지리산 일대의 풍광

 멋진 풍경을 더 안락하게 진한 커피 한잔 하며 즐기고 싶었지만 그런 환경이 되지 못했고 센 바람과 옷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우린 항복하다시피 하행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길내내 기아 1단~2단의 엔진 브레이크를 기본으로 하고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살짝 밟으며 내려왔는데, 올라올 때 보다 더 가파르게 보여 천은사까지 내려오는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우린 천은사 주차장에 하차하여 주변 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며 못다 한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나무데크로 둘레길을 잘 설치해 놓은 지라 도시 속을 걷듯 지리산 자락을 밟아 보았다.

천은사 주변 저수지에 원앙새 두 쌍이 유유지적 노닐고 있었다.
저수지에서 바라본 지리산 일부 풍경

 인근에서 산채비빔밥과 제육볶음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순천만으로 향하였다. 국가정원이 휴장 중인 것이 아쉬웠지만 철새들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습지 생태공원으로 향하였다.


흑두루미 몇 마리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떨어진 벼이삭을 먹는 모양이다.

 공원에 들어서니 서울대공원 조류관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갈대인지 억새로 만든 것인지 모를  기나긴 벽을 세워 중간중간  새들에게 방해되지 않고 사람들이 새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벽높이를 낮춘 공간들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추수한 들판을 볼 수 있었는데 곳곳에 기러기와 흑두루미 그리고 심지어 독수리도 몇 마리 보였다. 독수리들은 옆에 유유자적 먹이활동을 하는 새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검독수리 같은 일부 강력한 사냥능력을 가진 몇몇 종류 외에 일반적으로 독수리들은 죽은 사체를 주로 먹이로 한다고 하는데 세월을 낚고 있을까?

독수리도 순천만에 날아왔다. 먹잇감이 풍부한 탓인가?

 올망졸망 멀리 작은 산들을 배경으로 넓은 추수한 들판이 펼쳐지고 몇몇 그루의 나무들이 평화롭고 적막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쉴 새 없이 새들이 날아오르다가 내려앉고 각자의 특유한 울음소리를 내는 순천만은 광활하게 열린 동물원인 것만 같았다. 자연을 보고 동물원을 떠올리는 나의 선입관과 생각의 굴레로 인해 표현을 제한시켜 버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것이 작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각기 종류별로 군집을 이루며 머리 위를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지럼증이 생긴다. 얼핏 보면 다 같은 새 같으나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 오리류는 헬리콥터 같고 두루미류는 여객기 같다. 우아하게 나는 몇몇 흑두루미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 화각에 담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다.

날개를 편 흑두루미가 우아한 비행을 하고 있다. 중국 선양에서 날아왔다고 하는데 착륙 허가증은 가지고 왔는가? 사람은 이동에 제한이 있지만 너희는 자유롭구나.

 습지 조망을 마칠 무렵 흐린 날씨와 간간이 내리는 비 탓인지 전날처럼 찬 기운이 옷 사이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하여 습지 인근 카페에 들러 몸을 따뜻하게 하려 마을로 들어서는데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건물들 상에 드문드문 작은 봉 같은 구조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조물들에 전기선들이 바닥과 벽을 타고 건물들에 이어진 것을 보니 전선들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것 순천만 전체에 전봇대와 전선들이 늘어선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촬영할 때마다 전선들과 전봇대가 항상 풍경을 망치는 것에 대해 마음이 상한 적이 많았는데 이곳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순천시는 날아오는 철새들이 전기 줄에 걸려 사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전봇대도 뽑아 없애고  흑두루미를 위해 무공해 벼농사를 지어  먹이를 공급하는 등 자연을 보전하여  사람들이 자연의 습지의 아름다운 산물을 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좋은 것을 생각해도 실천에 옮기는 데에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합하여지고 이를 실행해 내는 강한 행정력과 예산이 필요할 텐데, 순천시민들은 이것을 해낸 것이었다. 존경할 만한 순천시민들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겨울여행 둘째 날은 서서히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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