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의 추억을 그리며...
시원 짜릿한 맥주도, 떨떠름한 와인도, 레몬을 곁들인 보드카도, 파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막걸리도, 소금을 안주 삼는 데낄라도, 입안을 아릿하게 만드는 위스키도 모두 좋아합니다.
아니, 사실은 술이 아니라 술을 마시고 난 뒤의 저의 감정 변화를 좋아합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고민은 어느새 잊히고,
잠도 못 자게 화나던 일들도 너그럽게 용서됩니다.
기분이 좋아지고, 사소한 것도 즐거워지는 마법의 액체
매일도 마실 수 있지만, 또 한 달간 안마실 수도 있으니 다행히 알코올 중독은 아닌가 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반주도 좋지만,
안주 없이 간단한 스낵과 즐기는 독주도 좋아합니다.
여럿이 어울려 수다를 안주삼아 신나게 마시는 술도 좋아하지만,
혼자 좋아하는 방송을 보며 느긋하게 홀짝이는 혼술도 좋아합니다.
배가 고픈날은 맥주를 마셔요.
맥주에는 딱히 안주가 필요 없지만, 뭔가 필요하다면 첵스 믹스 같은 스낵이나 마른안주를 준비합니다.
치맥은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치킨도 배부르고 맥주도 배부르니 둘 다 양껏 먹기는 힘들어요.
치킨과 함께 맥주를 취할 때까지 마시기란 불가능하거든요.
맥주처럼 배부른 술은 최대한 라이트 한 안주와 함께 합니다.
취하고 싶은 날은 보드카를 마셔요.
40도의 독한 술이지만, 탄산수와 레몬을 짜 놓고 얼음을 가득 넣으면 끝도 없이 들어갑니다.
종종 오렌지 주스를 섞어 스크류 드라이버를 만들어 마시기도 해요.
보드카를 마실 때는 얼음을 굉장히 많이 넣고 녹을 수 있게 조금 천천히 마셔줍니다.
빨리 마셨다가는 다음날 아침 천장이 빙빙 돌며 깰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는 와인을 마십니다.
저는 화이트 와인보다는 레드와인을 좋아해요.
예전엔 차갑게 칠링 한 화이트 와인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레드와인의 깊은 맛이 좋아지더라고요. 너무 드라이하지 않은 부드러운 와인을 좋아합니다.
와인은 꼭 예쁜 와인잔에, 가능한 최대한 얇은 유리의 잔을 골라 마셔요.
달콤한 술이 당길 땐 막걸리를 마셔요.
배는 부르지만 막걸리엔 묵무침이나 전이 제격이죠.
한국 생각이 나고 한국음식이 너무 그리울 땐, 남대문 시장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며 막걸리로 술상을 차립니다.
막걸리로 사발식을 하는 학교를 졸업한 덕에, 전 막걸리를 거의 마시지 않았었는데,
해외 생활을 하면서 왠지 더 좋아진 게 막걸리예요.
귀하니까 더 마시고 싶은 그런 심리랄까요? 아니면 나이가 든 이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삼겹살엔 뭐다? 소주!
이십 대 때는 소주를 2병 이상씩도 잘 마셨던 것 같은데, 한 10년 정도 소주를 마신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마시지 않다 보니 다시 마셨을 때 쓰디쓴 알코올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넘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소주를 마실 수 있게 된 건 레몬소주예요.
대학시절에도 레몬소주, 사과소주 등 각종 과일 소주가 유행했었는데, 지금은 그때완 좀 다른 버전이지만
레몬을 가득 짜넣고, 얼음과 탄산수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마시면 그 어떤 칵테일보다 상큼한 레몬소주가 되죠.
한국 마트에서 미리 사다 놓지 않으면 동네 마트에서 바로 사다 마실 수는 없는 술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역시 한국 음식과 제일 잘 어울리는 술은 소주죠!
그렇게 좋아하는 술을 현재는 마시지 않은지 이주가 되어갑니다.
보드카를 속도 조절 못하고 마신 다음날 오랜만에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고통을 맛보고 술맛이 뚝 떨어졌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살이 빠지는 거예요.
혹시, 정말, 술 때문인가? 싶어 한주를 더 금주했더니 또다시 살이 빠졌어요.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금주" 였던 거죠.
그래서 당분간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금주중에 있습니다.
얼마나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당분간은 술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버티려고 합니다.
금주가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술과의 추억을 되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