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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솜 Apr 07. 2021

온통 하얀 세상이 너를 반긴다.

할피의 백일 편지

1월 4일 월요일


새벽부터 흰 눈이 펑펑 내린다.

창 밖을 보며 마시는 커피가 너무 훌륭하다.

우리 아기 퇴원 날인데 온통 하얀 세상이 너를 반긴다.

마치 하늘도 너를 축복해 주시는구나.

우리 아가 들어설 현관도 깨끗하게 닦아놨지.

그런데 넌 퇴원을 못했다.

황달 때문에.




1월 19일 화요일


B.C.G 접종하러 병원에 갔다.

네가 아프다고 크게 울었다.

아픈 걸 안다니 신기하다.

몸무게는 4kg.

키는 두 다리를 쭉 펼 때 잰다는구나.

29일은 간염 2차인데 넌 또 아프다고 울겠지.


<할피의 일기 중에서>








어머! 세상에! 얘 어쩜 이렇게 방귀를 크게 뀌냐? 이렇게 조그만 게!




황달로 나보다 하루 늦게 퇴원한 모리를 집에 데려왔을 때부터 엄마는 연신 “어머! 세상에!”를 외치기 시작했다. 사남매나 키웠으니 더 이상 새롭게 놀랄 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매 순간 모든 것이 다 감탄스러운 모양이었다. 모리가 가늘게 눈을 뜨면 눈을 떴다고 신기해하고, 그러다 웃으면 웃는다고 신기해했다. 첫 목욕을 시킬 때면 나보다 엄마가 더 긴장을 했고, 손가락을 쥔 손 힘이 무척 세다며 놀랐다.


엄마의 산바라지가 하루 이틀 쌓일수록 우리 사이에는 각자 맡은 임무가 확실히 나뉘었다. 내가 모리에게 빈 젖을 물리고 있으면, 엄마는 얼른 젖병에 분유를 탔다. 내가 모리를 안고서 트림시키고 있으면, 엄마는 그 사이 다 쓴 젖병을 삶았다. 더운물을 떠다가 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목욕시키던 중에 모리가 오줌을 누면 그게 웃겨서 둘이 같이 웃었고, 온도 변화에 모리가 딸꾹질을 하면 서둘러 젖은 손을 닦고 전기 히터를 가져다 코드를 꽂았다. 처음 소아과에 예방접종을 하러 갔던 날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리 대신 엄마랑 내가 주사 바늘을 보고 덜덜 떨었다. 그리고 혹시 열이 나지는 않을까 밤새도록 같이 지켜보았다.


어쩌다 엄마가 집에 다녀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는 목을 빼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하룻밤뿐인데도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서 엄마, 엄마, 불렀다. 엄마, 모리가 토했어. 엄마, 모리가 딸꾹질을 또 해. 엄마, 모리가 우유를 엄청 많이 먹었어. 그러면 엄마는 아휴, 아휴, 하면서 아침이 밝자마자 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셨다. 모리를 재우다 내가 같이 잠이 든 새를 놓치지 않고 작은 노트를 꺼내 모리에게 편지를 쓰고, 살며시 나가 장을 봐왔다. 그렇게 소고기를 사다 내 미역국을 새로 끓이고, 애호박을 사다 사위에게 줄 된장찌개를 따로 끓이는 동안 나는 점점 부기가 빠졌고, 피곤한 엄마는 점점 손발이 부었다.




B.C.G 예방접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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