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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Jan 29. 2022

새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가끔 생기는 일

2021년 가을.


어스름한 노을이 서쪽 하늘에 일렁이던 어느 저녁. ‘우한’ 공항을 이륙하여 하늘로 올랐다. 노랗게 물든 10월 하늘은 차갑지만 아름답다. 붉은 듯 노란 듯 알쏭달쏭 오묘한 색깔은 조종사의 감성에 불을 지핀다. 1 나트, 1 피트, 식은땀 나도록 집중하는 순간에도 따뜻한 노을빛이 눈가를 스치면 마음은 아득히 고요해진다.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 아래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2년 전 ‘우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였다. 그리고 지금은 온갖 비난과 지탄을 감내하며 묵묵히 시간을 타고 흐르는, 살았지만 죽은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의 운명은 어찌 될는지, WHO의 탐탁지 않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조사는 각종 의문만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탕!”


8000ft(8천 피트=2400미터)를 가로질러 상승하던 중, 내 왼쪽 발바닥 아래에서 큰 진동이 느껴졌다. “탕!”하는 큰 소리와 함께.


“You have control(당신이 조종하세요).”


부기장에게 조종간을 넘기고 바닥에 핸드폰 플래시를 비췄다. 외부 점검 시 사용하는 플래시는 너무 밝아서 조종석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종석에서는 핸드폰 플래시가 짱이다. 빛의 강도가 낮아 야간 적응시를 유지하는 데 적절하다.


샅샅이 살펴봐도 바닥에 떨어진 건 없다. 사실 “탕!”하는 소리가 너무 컸기에 무언가 바닥에 떨어진 소리는 아닐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You saw something out of the window(혹시 창밖에서 뭔가 봤어)?”


“No, sir. I saw nothing(아니요, 기장님. 아무것도 못 봤어요).”


이상하다. 바닥에 뭔가 떨어진 게 아니라면 밖에서 부딪힌 소리일 텐데 그러기엔 우리 항공기의 고도가 너무 높았다. 이 정도 상공에서 ‘Bird Strike(버드 스트라이크, 조류 충돌)’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조류 충돌’은 주로 저고도에서 발생한다. 그 유명한 뉴욕의 허드슨강 비상착수도 이륙 직후 저고도에서 새떼와 충돌해 발생한 사고였다. 계속해서 부기장에게 조종간을 맡긴 채, 계기들을 천천히 살폈다. 모두 정상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회사에 보고하기로 했다.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2009년의 이 사고도 이륙 직후 벌어진 ‘Bird Strike(조류 충돌)’ 때문이었다. 사진 출처 <Youtube Inside Edition>





“통제실 들리십니까? 1234편입니다. 이륙 상승 시 기장석 아래에서 큰 소리와 진동이 있었습니다. 8천 피트 통과 지점이었습니다. 착륙 후 점검 준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기장님. 준비하겠습니다. 안전 비행하십시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비행을 마치고 안전하게 착륙했다. 승객 하기를 마치고 항공기 아래로 내려왔다. 정비사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하더니 플래시로 항공기 노즈(앞) 부분을 비춘다.


‘설마?’


정말이었다. 피떡이 묻어 있었다.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였다. 새의 붉은 피는 항공기 노즈 부분을 한참 넘어 왼쪽 날개까지 퍼져 있었다.


‘진짜 8천 피트에서 새 맞았다는 거야? 진짜..로?’


등골이 오싹했다. 고도를 감안하면 아마 상당히 큰 새였을 거다. 항공기가 멀쩡한 게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 몇 번 있었다. 수년 전 자카르타를 떠나 인천으로 돌아오던 중에 겪었던 엔진 아이싱 현상, 중국 연길 상공에서 겪었던 계기 속도 이상 현상 등.. 도통 남들에겐 일어나지 않는, 시뮬레이터에서 훈련 차원으로나 해봄직한 일들이 나에겐 몇 번 일어났다.



피와 깃털의 흔적이 ‘Bird Strike’의 증거이다. 큰 조류는 항공기 동체를 심각하게 파손하기도 한다.





정비사들이 사다리를 설치하고 정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조류 충돌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에 정비사들이 능숙하게 후속 조치를 하지만, 이번 건은 DNA 유전자 검사를 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한다. 한 정비사가 리트머스 같은 자그마한 종이에 피를 묻히더니 정비실 안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정비실에서 진짜로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정비사도 이번 건을 그저 사소한 일 중 하나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정비사가 돌아왔다. 모든 정비 절차가 끝이 났으니 이륙해도 좋다고 한다. 점검 결과 항공기는 문제없단다. 어떤 종류의 새인지, 어떻게 그렇게 높은 고도에서 조류 충돌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한 점들이 많았지만 연결 편 출발시간에 쫓기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미 30분을 지체했다. 부리나케 승객들을 태우고 다음 목적지로 이륙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항공기와 충돌한 저 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땅 위 어딘가에 떨어졌을 것이다. 처참히 짓이겨지고 피떡이 된 채로 땅바닥 어딘가와 두 번째 충돌을 했을 것이다. 떨어지기 전에 이미 죽었겠지만 자신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리란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는 하늘에서 별안간 인간의 쇳덩이와 충돌을 해서 생을 마감하다니.. 이보다 끔찍한 확률의 죽음이 또 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절묘한 죽음이다.


버드 스트라이크 대한 기사들과 조종사들 사이의 이야기들은 종종 들리지만, 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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