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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세연 Dec 09. 2022

닿지 못한 말

주인을 잃어버린 말은 영원히 허공을 맴돈다

몇해전 내가 있는 지역에서 긴역사를 가진 어느 유명한 기업가 패밀리에게 초상화를 의뢰받은적이 있다. 미술 작품에 아무런 감정도 영혼도 없는 극한의 리얼리티만 추구하는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그런점을 높이 샀던 그 기업가는 감정을 배제한 냉철함으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조차 없던 나에게는 신선한 제안이었다.

그동안 내가 목표했던 인생의 과제들을 막 끝낸터라 심적 물적으로 꽤나 여유로운 시기였다. 그러나 역시 사람의 돈 욕심은 끝이 없었는지 나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래 알고지낸 작가 선생님과 제자들의 공용 아뜰리에를 쓰기로 하고 50호 캔바스를 좋은 나무로 주문했다. 아무도 찾지 않을 섬뜩할 정도로 순도 높은 고가의 유화물감을 내 취향대로 마음껏 선택했다. 준비의 과정 또한 재밌었다. 캔바스에 정성스레 젯소를 여러번 입혔다. 젯소가 마르고 치밀한 스케치 작업이 끝날때쯤 내가 선택한 물감이 통관을 거쳤고 과감한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참으로 유쾌한 작업이었고 없던 열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아뜰리에로 향하는 풍경이 따뜻하고 밝게 느껴졌다. 불어오는 바다내음과 훈훈한 바람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계절이었다. 작업이 완성에 다다를때쯤 작품을 의뢰했던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다. 불길했지만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림이 없다는 걸 이내 받아들였고 수긍했다. 기업 패밀리 내의 큰 문제를 일으킨 사건으로 그 분은 이제 다시는 세상을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작업은 즉시 중단됐지만 나에겐 손해갈것이 하나 없는 에피소드였기에(충분한 비용을 지불 받았었다) 그 후로 나는 그 아뜰리에를 다시 찾지 않았다. 그림도 작업도 어렵게 구한 물감도 아까웠지만 그대로 두고 나 자신도 그 공간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 초상화를 다시 마주할 것이 불편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그림은 영원히 갈 곳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방치했고 나로부터 버렸다.


요즘들어 갑자기 그 때의 그림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로부터 조금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끊임없이 어떤식으로든 발전을 이루고 있으니 조금의 업그레이드는 허용 되기도 한다.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볼때 그 때의 버려진 그림이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있는듯하다. -차라리 내 손으로 폐기했다면 인사라도 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그 그림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갈곳을 잃어버린 그림을 나조차도 매정하게 모른척한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그 다정함이란 거창한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에 대해 인색하지 않으려는 노력정도이다.

버려진 그림처럼 상대에게 닿지 못한 감정은 두번다시 닿을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감정과 아무것도 아닌 표현을 미루게 되면 몇년이 지나서도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 최근 몇년간 여러 일을 겪고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지금의 이 관계가 내일 갑자기 사라져버릴지라도 내가 후회하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이 어떤 강박처럼 내재했다.

그런데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나의 억울함이나 내 감정이 상한 것에 대한 호소는 별로 안타까움이 남지 않더라는 것이다.-오히려 표현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길때가 더 많았다.

단지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것,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 냉정했던 것 그리고 그 상대가 힘들때 내가 위로가 되지 못한 것들이 결국은 가장 큰 후회로 남더라는 것을 지금의 늦은 나이에 깨닫게 된것이다. 웃음이 났다. 너무나도 간단한 이치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잠시라도 나를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준 상대의 친절을 그냥 넘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현재의 내 감정을 부족하더라도 말로 행동으로 또는 어떤 것을 빌려서라도 표현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너무 하찮고 별 쓸모 없을 것 같아서 망설이고 다음으로 미루게 되면, 그 다음은 끝내 없을지도 모르기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이별은 안녕이라고 인사할 수 있는 이별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이별은 갑작스럽기때문에 늘 말은 전할 수는 없다.


관계의 끝을 예기치 못하게 알게 된 순간에

더이상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하게 될 때,

끝내 하려던 말을 말하지 못한채

우주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이 말들이,

주인조차 잃어버린 그 말들이

어떤 파장의 한 형태로 남아

영원히 허공을 맴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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