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비밀스러운 햇빛
나는 자칭 ‘밀양러버’이다. 홀로 여행의 첫 여행지가 되어 준 밀양은 그 후로도 몇 번을 다시 찾을 만큼 나만의 비밀스러운 햇빛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만 사라지면 “밀양 얼음골 가서 막내딸 잡아와”라고 언니, 오빠를 닦달하셨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여행이 고플 때마다 밀양 가는 기차에 오른 곤 했다.
그런 나에게 또다시 밀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다가왔다.
시인 서. 정. 윤
1980년대, ‘시집의 베스트셀러 시대’를 만들어 나갔던 시인 중 한 명이다. 이 시집을 발간한 청하출판사 대표는 당시 수익으로 청담동 5층 건물을 살 정도였단다. 시인이 발표한 ‘홀로서기’라는 시는 문단의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중 고교, 대학생 사이에서 이미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고 라디오에서는 거의 날마다 이 시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만큼 ‘홀로서기’라는 시는 젊은이들의 마음과 정서를 대변해 주는 대표 시였던 것이다.
서정윤 시인의 시 ‘홀로서기’를 만난 건 대학 2학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영혼의 단짝인 친구는 자주 편지를 보냈는데 어느 날부터 그녀가 보내는 편지에는 아무 내용도 없이 시 한 구절 만을 휘갈리듯 써서 보내기 시작했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서정윤의 홀로서기 중
이 시를 읽고 첫 문장부터 빠져들기 시작했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기다림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건가? 아니지, 만남 자체가 목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 거야?’
이 한 문장부터 가슴엔 강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오는 편지를 아니, 그녀를 통해 전해지는 시의 문장들을 가슴 뻐근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읽고 또 읽고 행과 행사이, 연과 연사이, 비어져 있는 여백의 공간에서도 시인의 말을 들으려 애썼고 그 시를 통해 들려주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을 찾아 나갔다.
그때부터 가방 깊숙이 ‘홀로서기’ 시집이 자리 잡은 건 당연한 결과이다. 시집이 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고 노트에, 책 귀퉁이에, 편지지에 쓸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시 한 구절을 옮겨 적어 놓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서정윤 시인이 밀양의 한 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난 운명임을 느꼈다. 첫 홀로 여행지 ‘밀양’. 바로 그곳에 서정윤 시인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밀양으로 달려갔다. 시인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가슴아린 시를 써 내려가는 그의 손가락은 하얗고 기다란지 모든 것이 궁금했고 모든 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 당신이 말하는 홀로서기는 무엇인가요?” “ 지금 이렇게 홀로 떠도는 것이 진정한 홀로서기일까요?” 시인이자 먼저 젊음이란 시간을 겪었던 선배로서 그의 젊음과 방황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이 젊음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말이다.
시인이 근무한다는 학교 앞. 수업 중인지 텅 비어있는 운동장의 적막감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저 광활한 운동장을 지나야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지만 밀양까지 뛰듯이 달려온 발걸음은 얼어붙은 듯 도무지 한 발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십 대의 나는 가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열정을 뿜어 냈지만 너무나 아쉽게도 엄지손톱만큼의 용기, 아니면 만용을 꺼내 놓을 뻔뻔함이 부족했다.
시인이 머무르고 있음 직한 건물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교문 앞을 얼마나 서성거렸던가. 수업을 알리는 또는 마치는 벨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 기둥 뒤로 숨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뛰는 듯, 나는 듯 숨 가쁘게 달려온 패기는 다 어디로 날아가고 푸쉬쉬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아프게 바라보았다. 혹여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조급하게 몸을 숨기 듯 발걸음을 돌렸다. 그나마 위안이랍시고 내놓은 처방은 시인이 머무르는 곳을 멀리서나마 바라보았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때는 많이 어렸고, 아직 뻔뻔하지 못했었다. 아니, 지금보다는 아주 많이 순수했다고 포장 좀 해볼까? 어쨌든 결과는 서정윤 시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비밀스러운 햇빛’에 대해 듣고 싶었지만 그 빛은 여전히 나에게 비밀스러운 햇빛으로 남아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아쉬움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몰려왔다.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줄 위로가 필요했다. 나도 모르게 얼음골 계곡,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할머니의 따뜻한 밥상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외손녀가 찾아온 것처럼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반가워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자 마음은 다시 여행자의 기분 좋은 자유로움과 설렘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로지 서정윤 시인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떠났던 여정이었다. 그 여정의 시작부터 얼마나 가슴 조마조마한 설렘과 떨림과 벅차오름으로 행복했었던가. 혹시라도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내 방문이 기분 나쁘거나 실례가 되지 않을까? 끝없는 질문과 답을 하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들뜨게 만들었던가. 그 시간들을 다시 회고해 보니 시인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
스무 살의 아름다운 기다림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를 40년 뒤의 나는 여전히 기억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