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 은 아니지만

울산에서 만난 키딩 선생님!

가끔 홀로 여행의 멋진 파트너 역할을 해 주는 J와 영주에서 만나 경주, 울산까지 목적지 없는 자유로운 방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우린 울산에 도착한 후 아무런 계획 없이 울산이란 도시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왜냐하면 물가가 너어~무 비싸서였다.

평소 학생 버스요금 90원, 학식 600원, 라면 300원, 생맥주 500CC 기준 500원 하는 가격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짜장면 가격이 1300원이라 적힌 중국집 메뉴판을 보고는 물만 한잔 마시고 몰래 도망 나와 버렸다. 5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1300원이나 지불하고 먹을 배짱도 돈도 우리에겐 부족했다. 이미 며칠째 여행 중이라 우린 아끼고 아껴야만 이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에 호사스러운(?) 지출은 무조건 금지사항이었다. 결국 숙소도 가장 싼 곳을 찾아 헤매어야 했고 그러다 찾아낸 곳이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저씨들이 달방처럼 머무는 여인숙이었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5000원쯤 하는 방 하나를 어렵게 구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장님께 여행하는 돈 없는 학생이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며 가격을 흥정하여 겨우 구한 숙소였다.


그래도 하룻밤 지낼 방을 구해 놓고 나니 애써 참아왔던 시장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나와 J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남겨 놓고 돈을 탈탈 털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 이후의 삶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마주 한 곳은 동해바다가 보이는 횟집 한 귀퉁이. 가진 돈으로 먹을 수 있는 회는 제일 싼 ‘아나고 회’뿐이었다. 짜장면도 비싸서 못 먹어 놓고 “그래도 바닷가 왔으니 회는 먹어야지”라고 바락바락 우긴 내 의견 때문에 차려진 저녁 만찬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친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다. 나도 J도 내륙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 사실 회를 먹을 줄 모른다는 거였다. 크 크 크…..


대학입학 후 처음으로 아나고 회를 먹어 보긴 했지만 회맛도 잘 몰랐고 생선회 이름도 ‘아나고회’밖에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우리에겐 너무나 비싸고 귀한 아나고 회를 앞에 두고 잔 잡아 권하듯이 서로에게 어서 먹어 보라고 권하기만 했다. 난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려 한두 번 먹어 봤다고 새콤달콤한 초장을 듬뿍 찍어 삼키면서 “ 와~ 바다가 입안에 있구먼” 하며 헛소리도 시전을 했지만 J는 영 입맛에 맞지 않은지 우물거리다 힘겹게 목구멍으로 삼켜 버렸다. 아우, 그 비싸서 못 먹은 짜장면이나 먹으러 갈 걸 후회가 막심했다.



그때 “학생, 아나고 회 좀 우리에게 나눠줄래요?” 라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들이 말을 걸었다. 우리 상 앞에는 달랑 아나고 회뿐인데 그걸 달라고 하는 게 기가 막혀 곱지 않은 눈으로 아저씨들을 쳐다보았다. “그 대신 우리한테 여유 있는 음식이랑 바꿔 먹으면 어떨까요?” 아저씨들 상에는 딱 보아도 비싸 보이는 싱싱한 회와 초밥, 튀김 등 다양한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얼씨구 좋고 말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낯선 아저씨들의 호의를 덥석 물을 만큼 만만한 내가 아니었다. 조금은 까칠한 말투로 ‘우리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바다 온 김에 분위기만 즐기는 거다’ 라며 적당히 거절을 했지만


“우리가 꼭 아나고 회를 먹고 싶어서 그래요.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면 좋겠어요”라며 위트 있는 또 한 번의 제안에 조금은 마음이 풀려 마지못해 나눠준다는 식으로 즉석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여행 중인 학생이라고 인사를 했고 아저씨들 세분은 울산으로 출장을 오신 분들이었다. 아나고 회 한 접시만 앞에 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모습에 기분 상하지 않게 음식을 나눠주고 싶었던 아저씨들의 센스 있는 호의에 우리의 저녁은 풍성해졌다.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다. 하지만 이십 대의 치기 어린 열정으로 꽉 차 있던 우리는 세상 보는 눈이 곱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세상은 불완전했고 민주화 열망이 뜨거웠던 시기였던 만큼 기성세대에 대한 비난도 그에 못지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이십 년쯤 먼저 살고 있는 인생 선배 아저씨들에게 까칠하고 날카로운 말들이 섞여 나왔다. ‘왜 학생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지, 왜 도서관의 묶은 책 냄새보다 매캐한 최루탄 가스 냄새를 더 자주 맡아야 하는지’ 분명 아저씨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봇물 터지듯 아픈 젊음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의 그런 뾰족함을 아저씨들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천천히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세분의 이미지를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중 유난히 큰 키에 짙은 색의 뿔테 안경을 쓰고 있던 아저씨의 이미지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우리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금 누구보다 많이 흔들리고 불완전한 느낌 때문에 힘들다는 거 다 알아요. 이십 대를 살아 낸다는 것은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죠. 이제 성인이라고 모든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아직은 덜 자란 연약한 나무에 불과한 때이기도 하고요. 그런 이중적인 현실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요. 사실 우리도 그랬어요. 학생들이 볼 때 우린 이미 어른이고 기성세대이지만 우리도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흔들리는 청춘이었죠. 어찌 보면 지금의 시기보다 더 힘들고 격동적인 시대를 살아내느라 더 숨 가쁜 호흡을 해야 하기도 했고요. 이런 말이 학생들의 귀에 들리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지만 조금 더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그냥 따뜻하게 한마디가 해 주고 싶네요. 지금 이 시간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방황의 시간이라 생각하겠지만 가장 나답게 살아내는 귀한 시간들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더 소중하고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사실 어른 즉, 기성세대와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캠퍼스에서 우리가 접한 기성세대는 교수님 아니면 학생운동을 감시하기 위해 사복으로 잠입해 있는 경찰들뿐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우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입력값이 훌륭하지 못했다. 그만큼 편견의 벽이 높았던 때였다.


그 당시 내 눈에는 이십 대만 아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십 대의 아픔을 기성세대는 전혀 알지도, 관심도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맨날 나만 아프고, 방황하고, 고독할 권리를 가진 사람처럼 오만했었다. 그런 나의 착각에 파문을 던져 준 아저씨의 고백 같은 언어들.


‘아, 어른들도 아팠던 이십 대가 있었구나.’ 웃긴 이야기겠지만 그때의 나는 어른들에게도 이십 대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른으로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로만 비쳤다. 그래서 도저히 젊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지독한 편견 속을 떠돌고 있었다.


뿔테 아저씨의 이야기로 어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어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이십 대가 있었고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 아프고 힘들게 살아야 했던 시대를 살아 냈다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았다. 아저씨들이 여전히 성글지 않은 젊음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여유와 어른스러움이 부럽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 내가 기성세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십 대의 까칠하고 뾰족했던 시선들은 깎이고 부딪쳐서 한껏 둥글어지고 어느새 “ 세상은 네가 원하는 대로 안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 있다. 내가 어른이 되어 보니 몰랐던 어른의 무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알지 못했을 뿐이다.


문득 울산의 뿔테 아저씨 생각이 떠 올랐다. 따뜻하게 호의를 베푸는데도 ‘어른’이라는 이유로 가시 돋친 말로 공격을 해 대던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면서도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 주었던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던 아저씨.


과연 나는 그분의 조언처럼 살아왔었는지, 지금의 이십 대에게 어른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지, 사실 자신이 없다. 어른으로 처음 살아보고 있는 중이라 여전히 흔들리고 실수를 한다.


이제야 깨닫는다. 어른이 되어 보니 어른의 세계가 얼마나 크고 육중하게 어깨를 누르고 있었는지를.


절대 타협하지 않으리라던 의지를 꺾고 사는 것도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이십 대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의 뿔테 아저씨처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해 주고 싶다.


“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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