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심 육계 줄행랑 전법이 필요해
내 여행이 늘 따뜻하고 감동적인 인류애가 넘쳐나지는 않았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먹는 것, 자는 것, 이동하는 것 등의 물리적인 어려움과 불편함이 늘 따라다녔다. 때로는 눈물 날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낯 섬의 경계를 넘어 뼛속 깊이 파고드는 두려움에 몸을 떠는 날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엉겨 붙어 회오리처럼 내 몸을 감아 쓰러뜨리는 날엔 한동안 여행길 위에 발자국을 떼어 놓기 힘들기도 했다.
이번엔 그 이야기들이다.
서해의 붉은 노을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염전 사진을 보았다. 그 황홀한 풍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분명 염전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섰는데 폐허 같은 건물들만 보일 뿐 인적도 없이 황량한 분위기에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염전을 보고 싶다는 갈망에 달려왔으니 근거 없는 두려움에 포기할 순 없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염전이 있음 직한 곳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갔다. 순백의 하얀 소금과 주황의 하늘빛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했건만 신비로운 염전은 보이지도 않고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만 눈에 띄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렸다. 난 그 소리를 따라 계속 들어가 보았다. 점점 소리는 정확하고 크게 들렸는데 가까이 가 보니 사람들 소리가 아니라 라디오 소리였다. 어쨌든 누군가는 이곳에 있다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소리의 꼬리를 잡고 들어가 보니 늙수그레한 초로의 남자 한 명이 보였다.
그 남자는 날 보자마자 대뜸 여기 뭐 하러 왔냐고 나무라듯 소리를 질렀다. 순간 아 여기는 일반인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내가 왔구나 싶어 얼른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니. 여기 뭐 하러 왔냐니까?” 남자는 또 소리를 질렀다.
“아, 소금 좀 사러 왔어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소금? 얼마나, 몇 자루 살 거야?”
“ 아, 아뇨 몇 자루씩 필요한 건 아니고요 여기 여행 왔다가 소금이 유명하 다해서 기념으로 조금 사가려고요” 단순히 소금을 사러 온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여행 어쩌고 하니 그 남자는 나를 찬찬히 살폈다.
“여긴 조금씩 안 팔아. 최소 대여섯 자루는 돼야 팔아”
“ 네. 그럼 할 수 없고요”
“그런데 혼자 왔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난 혼자 여행 왔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스쳤다.
“ 아뇨. 남편이랑 같이 왔는데 나만 소금 때문에 여기로 왔어요. 이따 저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또다시 어설픈 거짓말을 하게 되었지만 눈치 빠른 남자는 내 말을 그다지 믿는 것 같지 않았다.
“뭐 하는 사람인데 왜 혼자 다녀?”
“저 글 쓰는 사람인데 염전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글을 써? 그럼 이리 와서 내 이야기 들어봐. 아마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을걸 염전 따위 글 보다 내 얘기가 훨씬 재미있을 거야”
아, 더 이상 이 남자와 대화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말을 끊어야 했지만 그 남자는 더 담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준비를 하듯 보였다. 그리고 처음엔 몰랐는데 그는 술을 마시고 있었는지 술병 몇 개가 나뒹굴고 있었고 제법 취기가 올라있어 보였다. 난 얼른 이 자리를 모면하려고 발길을 돌리려 하자
“이봐 내가 소금 줄게 가져가”
“아니에요. 저 그렇게 소금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특산품이라니까 조금 사볼까 했어요 괜찮아요”
“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줄 테니 가져가라니깐”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서운 호의였다.
20대에도 그런 호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도보여행을 계획하고 충청도의 한적한 국도 길을 걷고 있었다. 당차게 걸어서 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고는 터미널도, 간이 정류장도 일부러 지나치며 이십 대의 튼튼한 두 다리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테스트는 세 시간쯤 지나자 곧 결과가 나왔다. 더 이상 걷기 불가! 날씨도 제법 쌀쌀한 초겨울이나 늦가을쯤이었나 보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세 박자를 꽉 채운 결과지에 두 손 번쩍 들었다. 난 뚜벅이 여행자에서 히치 하이커로 빠른 태세 전환을 했다. 하지만 시골의 국도를 지나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간혹 지나가는 차가 있어도 친절하게 차를 세워주진 않았다. 길 옆에 주저앉아 막연하게 지나가는 차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난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구나 라는 걸 실감하며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엔진 소리. 희망의 촉수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동차가 아니라 잠깐 실망을 했지만 어렵게 다가 온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고등학교 교련시간 사열 때처럼 한 손을 번쩍 쳐들고 커다랗게 바디 랭귀지를 외쳤다. “ 태워 주세요!!!”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셨다. 차들이나 가끔 지나다니는 길에 불쑥 사람이 나타나 온몸을 흔들고 있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기는 했을 것이다.
“ 아니 이런 길을 왜 걸어 다니고 있어?
“ 할아버지 저 버스 다니는 정류장까지만 태워 주세요”
“ 알았어. 얼른 타”
“ 감사합니다”
걸어서 여행하고 있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집이 멀지 않으니 잠깐 들러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난 내 여행에 새로운 친절 한 스푼을 추가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할아버지의 등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분쯤 달린 후에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 마당을 들어서자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와 다르다는 걸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말에 당연히 할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할아버지 집은 아무도 없이 너~무 조용했다. 순간 당황하는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곧 할머니가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추우니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몇 번의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친절을 경험했기에 스멀스멀 솟아나는 의구심을 애써 잠재웠다.
방으로 들어가려 툇마루를 올라서는 순간 본능 같은 방어기제가 발동이 되었나 보다. 매고 있던 배낭을 꼭 툇마루에 두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햇빛이 잘 안 드는지 어두컴컴한 방에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조금 뒤 작은 밥상을 들고 들어 오셨다. ‘할아버지가 직접 밥을 차려 주시는구나 내가 괜한 오해를 해서 죄송해서 어쩌지?’ 하며 내 경솔한 판단을 잠깐 후회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건 따뜻한 밥상이 아니라 인삼인지 더덕인지 정체불명의 보양식물이 화려한 몸짓을 뽐내고 있는 커다란 담금주가 올려진 술상이었다.
할아버지는 밥그릇만 한 술잔에 가득 한잔을 따라 주며
“ 추울 때는 이렇게 술 한잔 마시면 금방 몸이 따뜻해지니까 쭉~ 한잔 마셔봐”
“ 아니에요. 전 술 못 마셔요”
“ 어허~ 술 못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어. 딱 보니까 술 마셔도 될 만한 나이 같은데 한잔 혀”
“ 아뇨, 진짜 못 마셔요”
할아버지는 혼자 연거푸 몇 잔의 술을 들이키며 나에게도 재차, 삼차 술을 권했다. 어느새 벌겋게 변해가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니 힘들게 걸어가는 여행자에게 친절을 베풀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 아, 얼른 한잔 마셔봐. 이거 마시고 있으면 할멈이 올 거야. 그때 밥 해달래서 먹으면 되니까 우린 술이나 마시고 있자고”
마시지 않겠다는 술을 억지로 권하는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끼던 할아버지가 아닌 나에게 정당하지 않은 힘을 행사할 수도 있는 남자의 모습이 언뜻언뜻 스쳐갔다. 아직 이십 대 초반으로 다양한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어디까지를 친절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디에서 경계경보를 내려야 할지를 몰라 혼돈스러웠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감싸 안으려 했다.
그때 나는 위험을 감지한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방을 뛰쳐나왔다.
혹시나 싶어 툇마루에 놓아둔 배낭이 ‘얼른 도망쳐’라고 소리치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난 배낭을 움켜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차들이 다니는 국도변까지 얼마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금방이라도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 나를 낚아챌 것만 같았지만 뒤를 돌아보며 확인해 볼 여유도 없을 만큼 무섭고 긴박했다. 시골동네는 무서우리만큼 조용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처럼 느껴져 내가 거기서 소리를 지를지언정 아무도 나를 도우러 와 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내 폐가 감당할 수 있는 호흡의 한계를 넘어 설만큼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달렸다. 큰길이 보이자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안정권에 들어서진 않았다. 어떻게든 위험에서 멀리 달아나야 했기에 난 무작정 지나가는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를 차에 태워 준 분은 왜 이렇게 위험하게 차를 향해 뛰어드냐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가뿐 숨을 몰아쉬며 손끝을 떨고 있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며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그 조심하라는 말은, 언제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음을, 소금을 앞에 둔 작은 실랑이가 나를 각성시켰다.
염전의 사내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했는데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저 취한 남자의 레이다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난 정확하게 감지했다. 내가 타깃이 되었구나.
“내 소금창고가 저어~ 안쪽에 있어. 이 창고는 내 거가 아니어서 소금을 줄 수 없어. 나랑 같이 저 안쪽 창고로 같이 가자고 내가 넉넉히 줄게”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이 짙은 고요와 음산한 분위기의 소금창고가 보였다. 그것을 보자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번에는 툇마루의 배낭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오른손을 넣은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가 만져졌다. 출발 신호는 열림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다.
“ 나 소금 필요 없어요”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차를 향해 달렸다. 다행인 건 술에 많이 취했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을 언뜻 확인했다는 것이다. 주차된 차에 올라타자마자 액셀을 있는 대로 밟으며 염전을 벗어났다. 몇 분 후의 일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빌런들의 속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전속력으로 도망치키로 한 것이다. 아주 적은 가능성일지라도, 위험은 피해야 하니까.
수차례의 여행길에서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거나 소름 끼치게 두려움을 느꼈던 적은 이 두 사건 외에 거의 없다. 기차에서 옆자리 인연으로 만난 남자가 여행 중이라는 이야기에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황당한 요청을 한 일은 성가시기는 했지만 위험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건 모두 위험지수가 최고치였다는 것이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지만 할아버지 집에서, 염전에서 겪은 일은 어쩌면 신문이나 뉴스의 기사에 나옴 직한 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 중이던 이십 대 중반의 김 모 씨는 어쩌고저쩌고…..’
다행히 위험에 대처하는 본능적 도피능력이 탑재가 되었던 건지 재빨리 도망갈 수 있었지만 한동안 여행을 하며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세상을 보는 안이한 시선이 있나? 에 대한 자체 검열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여행이 이런 일들로 인해서 멈추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들 ‘이불 밖은 위험하다’라고 한다.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과 불행에 우리는 늘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간다. 빌런이 언제 등장할지 예측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무섭다고, 위험하다고 우리는 이불속에 꽁꽁 숨어 있지는 않는다. 위험이라는 강력한 필터를 켜고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해서도 안되고 그 누구도 믿어서도 안된다. ‘나’라는 섬에 갇혀 살아야만 안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빌런이 하는 짓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거나 싸워 이기겠다는 호기로움은 아예 부리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 앞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 여자’는 여행으로부터 도망치지는 않았다. 내 삶에서의 비겁한 도망이 아니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이었다. 즉 병법 중 하나인 삼십육계 줄행랑을 펼친 것이다. 우주영웅은 아니어도 전략은 늘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