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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세 Feb 03. 2021

그림그리는 방랑자가 세상을 견뎌내는법

4. 무기력

지금 어떤 사람이 길을 막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을 꼽아보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무기력”을 택할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괴로운 요인도 많고 어떤 일 하나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통계를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일단 많은 분들이 의문을 던질 것 같다.

다른 것도 있을텐데 굳이?

맞다. 사실 죽음의 문턱 앞까지 끌고 간 것도 비단 무기력 때문은 아닐뿐더러 당시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일이 있었다. 또 무기력 하다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길 택하는 것도 어딘가 앞뒤가 안맞는다.
차고 넘치는 것들 중, 왜 무기력이었을까. 안믿으실 분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일벌이기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천한 뒤 값진 결실을 냈을 때의 쾌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벅차다. 물론 나 혼자서 하는 프로젝트도 여기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이번 해에 그림책과 여기서 발생하는 다른 굿즈 사업도 내보고 싶다면 이에 맞는 기획을 짜고 실행에 옮긴다. 또 이 과정이 잘 마무리 되면 한단계 더 나아가기도 한다. 비단 한 프로젝트를 끝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부가적인 기회도 종종 접하고.


나는 앞서 설명한 이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즐기는 편이다. 갈무리 된 후에는 스스로 돌아보면서 어떤 부분을 보완해 다음에 더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을지 피드백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이걸 또 주변에 있는 동료들과 같이 나누면 나는 더 단단해지고 넓은 사람이 된다. 이런 활동을 정말 좋아하는데 난데없이 무기력이라는 요소가 침입하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평균적으로 1년에 프로젝트를 상-하반기씩 나눠 두번정도 하는데, 호르몬의 장난에 놀아나게 되면 한 번을 실행하는 것조차 너무 버겁거나 1년을 송두리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날린다. 다행히 운이 좋아 그랬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요즘 증상이 더 악화 되면서 그럴 위기에 처한 상태이기도 하다.

또 악재는 한꺼번에 같이 온다고, 복잡한 송사에 휘말리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진다. 특히 작은 고모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급격히 나빠진 컨디션 때문에 아예 밖에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으니 기침을 했을 때 받게 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대중교통은 엄두도 못냈었다. 가깝거나 조금 걸리는 곳은 걸어가거나, 이동수단이 필요한 거리면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무기력 증상이 더 심해지니 여기서 더 나아질거란 기대도 들지 않아 병원을 무작정 피하기도 했다. 혼자서 내린 무리한 결론은 결국 나에게 더 안좋은 방향으로 돌아오고 나비효과처럼 파장은 더욱 커진다. 정신건강이 온전치 못하니 경제활동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하루종일 도피성 수면에 빠져있거나 아예 잠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사이클을 반복하니 더욱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진 거리두기 시기에 날 더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다.

코로나 블루의 시대에, 제정신을 갖고 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내 이야기를 언제까지고 들어줄 사람은 없다. 지자체 상담센터에 가서 하루종일 나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설 상담센터를 이용 하자니 비용이 너무 걱정된다. 차라리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정도로 멘탈이 강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서포팅이 대단하든, 경제적인 여유가 되든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난 이 두가지 중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았다.

좋지 않은 주변상황, 갈수록 더 최악이 되는 몸과 마음 건강상태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어쩌면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나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다. 한때는 소위 노빠꾸, 늘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됐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고. 단순히 고장난 내 호르몬의 문제로 치부 하기엔 어쩌면 그 이전부터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다른 원인도 있을텐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렇다할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작업을 할 도구도 망가진 상태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도 전혀 그럴 수 없어서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에 급하게 컴퓨터를 켜 자판을 두들겼다.

억겁과도 같은 진한 무기력감을 보낸 나날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고 30대의 첫 시작을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렇다 할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춥고 힘든 겨울과도 같은 시기를 어떻게든 버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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