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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의 거울, 나의 그림자

by 어슴푸레

-근 한 달 동안 너무 지쳐 보이세요. 많이 마르셨어요. 따님 말고 혹시 다른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뇨. 아이와의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기는 하지만. 글쎄요. 딱히요. 그냥 무겁고 무력해요.

-계속 이럴까 봐 그런 걸까요?

-지난주 초반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내 딸 내가 끌어안아야지 누가 끌어안아. 마음을 바꿨어요. 아이와 한번씩 폭발하면 아이가 저를 놓지 않고 수없이 물어요. 엄마 나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질리도록 물어요.

-그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하...... 그전엔 제발 좀. 몰라서 묻나. 답답하고 화나고 그랬어요. 이 상황에서 그걸 꼭 물어야겠어? 그런 생각. 근데 지난주에 아이가 펑펑 울며 물어보는데 아이에게서 제가 보였어요. 아, 넌 내 거울이구나. 넌 내 그림자구나.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반듯하게 크기 위해 버린 것들을 네가 그대로 비추는구나. 외면하고 억제하고 묻어버린 욕구를 해결하라고 이러는구나. 매일같이 종류를 달리해 나에게 뭔가를 사 달라거나 해 달라고 하는 건, 가난으로 윽박지르는 부모님이 무서워 물건 사는 걸 죄악시하며 살아온 나를 깨트리라고 그러는구나. 그래도 된다고 알려주는 거구나. 부모에게 사랑하냐고 한 번도 묻지 못했던 나와 달리 넌 용감하구나. 나의 카르마가 네게 윤회하고 있구나. 넌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그림자구나.


-따님은 그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어머님도 느끼시잖아요. 아이를 더 전적으로 믿으셔야 해요.

-오구오구 우리 딸. 너무 사랑해라기보다 그래 너 사랑한다. 마지못해 끌어안은 느낌이에요. 따님도 그걸 느끼기에 아닌 거 같은데? 재차 확인하는 거예요.

-어머님, 아버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시지만 개방적이라기보단 보수적인 쪽에 가까우세요. 물 흠뻑 주듯이 충분히 주셔야 해요. 달라고 달라고 떼를 쓰면 항복하듯 찔끔 주고 찔끔 주고. 아이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어요.

-재능이 출중한데 그림이 그리고 싶다고 하면 무리해서라도 비싼 학원 보내 주실 거잖아요?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두 분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고 자꾸 막으시면 안 돼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해 봐야 그 속에서 경험도 쌓이고 뭐가 좋고 나쁜지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요. 이제 가지가 나오려고 하는데 쳐내면 될까요?

-아드님 과외비 얼마 쓰세요? 지금 그 돈 따님에게 안 들잖아요. 엄마가 이 정도까지 지원해 줄 수 있다 상한을 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쓸 수 있게 해 주세요. 목마르지 않게요.

-우리 세대는 코스프레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문화예요. 그걸 해서 생길 온갖 나쁜 것들을 미리 걱정하지 마시고. 왜 하고 싶어하는지 아이 마음에 집중해 보세요.

-따님이 하고 싶다는 것들이 위험하거나 나쁜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수용해 주세요. 꾸미는 거 좋아하고 세 보이는 거 좋아하는 것. 그 마음이 아이에게 왜 일어나는지에 관심을 두세요.

-어머님이 원하는 건 아이가 반짝거리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의 행복이잖아요. 아이가 행복해하는 걸 하게 해 주셔야죠.


지난 한 달. 수백 번 수천 번 다짐을 해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여지없이 터졌다. 넘어가고 눈감아주던 지점은 나 여깄어, 방심 마. 매복 지뢰처럼 숨어 느닷없이 폭발했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든 건 스스로 얼마나 별로이고 형편없는 사람인지 매순간 직면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넌 나의 거울, 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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