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의 먼지가 되고 싶습니다.
꽤슨생의 직장생활 수칙 1
나는 먼지 같은 존재를 지향하지만
단지 바람일 뿐. 모든 것은 학교에 온 첫날 어긋나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울지 않아요. 울지 않습니다.”로 통했다. 내 이름 석 자는 몰라도 “왜 있잖아, 그 ‘울지 않아요’ 했던 그 선생님 말이야.”라고 하면 설명 끝. 먼지처럼 존재감 없게 살기는 애초에 글렀다. 이 예상치 못한 전개라니. 이 글은 ‘내참, 돈도 몇 푼 못 벌면서 내 인생 산뜻하게 꼰’ 내돈내산 후기.
우리 학교는 학년부 체제라 같은 교무실을 쓰지 않으면 서로 이름이나 얼굴을 모른 채로 1년을 보내기 십상이다. 중원에는 1도 관심이 없고, 재야에 묻혀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나 같은 먼지지향형 인물에게 딱 좋은 구조. 그러나 첫날의 그 일 덕분에 다 글렀다. 종종 뜻밖의 순간에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것이었다. “쌤, 나도 쌤 때문에 울었잖아. 나도 같이 울었어요.”
물론 우리 반에 초특급 얼간이 한 명과 안쓰러운 못난이 한 명, 그리고 경거망동 패거리가 다수 포진해 있어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덕분에 어차피 ‘7반 담임’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긴 했다. 그리고 초여름의 어느날, 정확히 출근 시간에 교무실에 발을 들인 2인조 고부 시스터즈가 학교를 세 시간 동안 뒤집어 놓고 간 덕분에 ‘불쌍한 7반 담임’으로 한번 더 오르내렸다. 그래 가만히 있고 싶어도 가만히 놔두지 않더라. 물론 그 환장의 시스터즈는 나를 가마니로 봤고.
해가 바뀌고 교무실 구성원이 달라졌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으니 바쁜 와중에도 어쨌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이 말하길 “우리집 아이들은 학교에 못 가서 친구가 없는데, 당신만 교우 관계가 좋아지네.”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2년째 같은 교무실을 쓰고 있는 오선생님은(오해 말기. 말 그대로 오선생님일 뿐입니다.) “쌤, 작년에 교무실 왕따였잖아요. 자발적 왕따.”라고 했다. 말 한 마디 나눌 시간 없이 수업만 하고 애들만 지도했다며. 그럴 수밖에. 말했듯이 나는 ‘그 유명한 7반’ 담임이라 쉬는 시간마다 말로 뼈 때리느라 바빴다.
등교 주간 중 어느날, 옆자리 쌤이 말했다. “아, 애들이 등교를 하니까 쌤이랑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네요. 쌤 얘기 들으며 빵빵 터지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데.”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쌤, 그런데 작년에 왜 울었어요? 무슨 힘든 일 있었어요? 사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올해 보니까 전혀 아닌데요?”
히잉, 또 나왔네 또 나왔어 그 얘기.
그러니까 지난해 2월. 전 교직원 연수 첫날. 모두가 원을 그리며 둘러 앉아서 소감을 이야기하던 시간에. 그 낯선 얼굴들과 마주 앉아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부담스러우면 패스를 해도 되는 그 유연한 자리에서,
“저는 사직이 꿈이에요. 그런데 사직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으로, 그만큼 이 자리에서 노력을 해본다면 또 어떨까 싶어서 망설여지는 거죠. 네, 지금은 그만둘 수 없어요. 통장이 더 다니라고 하거든요. (눈물 질질) 그런데 저는 교사 자리가 버거워요. (눈물 질질) 울지 않아요, 울지 않습니다. 네 울지 않아요. 저는 괜찮아요. (눈물 질질) 모르면서 다 아는 척, 학생을 다 이해하는 척, 사랑하는 척 하기가 힘들어요. (눈물 질질) 울지 않아요. 울지 않습니다. 부족한 제가 교사로 서도 되는지 자신이 없어요. (눈물 질질) 울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오늘 선생님들을 뵈니 이전의 학교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환대 받는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힘을 내보고 싶어요. (눈물 질질) 울지 않아요. 울지 않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흐흐흑”
뭐 이랬어요. 이럴 거면 패스를 하든가, 울거면 말을 말든가, 말을 할 거면 울지를 말든가. 울면 운다고 말을 하든가. 눈물 질질 짜며, 밝은 목소리로, 경쾌하게 손사래를 치며 울지 않아요 울지 않습니다 하는 게 그렇게 특이한 거예요? 하지만 이런 고민은 누구나 하잖아요. 그렇죠?그러니까 선생님도 그만 눈물이 터져서 함께 운 거죠?
이것이 바로 ‘내참, 돈도 몇 푼 못 버는 일 하면서, 내 존재감을 어이없이 산뜻하게 방출한 이야기. 내돈내산으로 먼지가 아니라 먼지덩어리가 되어버린 후기. 교사 하기는 오늘도 어렵고,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달라진 것은 없고, 사실 나는 평생을 이렇게 살았고...